지난 3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한민국 언론! 과연 공정한가’ 토론회가 열렸다. 자신을 “‘우익 노조’인 MBC 공정방송노동조합 위원장”이라 소개한 이윤재 위원장은 탄핵을 “좌익 성향 언론으로 촉발된 국가 위기”라 규정하며 이 토론회에서 ‘해결책’을 찾길 바란다고 했다.

축사만 1시간가량 이어졌다. 첫 축사를 맡은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탄핵 과정에서 언론의 과장 보도와 오보, 가짜뉴스, 카더라뉴스 보면서 국민들이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박대출, 전희경 등 자유한국당 의원 10여 명이 참석했다. 정우택 원내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사회자가 “기념촬영을 먼저 하자”라고 제안했다. 정 원내대표는 기념촬영이 끝나자 자리를 떠났다. 축사가 끝날 때마다 참석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축사 후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최창섭 바른언론연대 대표와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균형 잃은 보도가 횡행해 언론인 출신으로서 부끄러운 시간을 보냈다”라며 그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와 ‘포털의 노예’로 전락한 언론을 들었다. 박 대통령이 언론 견제에 협조하지 않아 집중 포화를 맞은 면이 있으며, 열악한 구조 때문에 언론이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낸다고 했다. 강 의원은 또 “개헌 보도는 실종됐다”라며 “중국 사드 보복, 재벌 대책 같은 절체절명 현안에 언론들이 탄핵만큼 보도를 해준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제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한국경제〉 정규재 주필은 박근혜-최순실 보도를 ‘쓰레기 만두 사건’ ‘광우병 사태’ ‘메르스 사태’에 비유했다. 정 주필은 또 “대한민국 국민이 트럼프에 유독 적대적이었다. 언론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영국이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는지 진지하게 설명한 언론도 존재하지 않았다. 언론 전체가 무식해지며 SNS화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정 주필은 “탄핵에 반대한다는 언론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개탄하며 개인적인 어려움도 고백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한경(한국경제) 안에서도 주필 혼자 탄핵 반대론을 꾸준히 개진했을 뿐 우리 회사 조직 전체는 전혀 따라오지 않았다. 통제에 실패했다.” 정 주필은 “자유언론은 이제 거의 끝난 것 같다. 좌경적 세계관에 동참하지 않으면 언론 현장에서 축출될 수도 있다. 야권, 좌익 그룹으로부터 들어오는 언론 통제 압력을 방치할 경우에는 당한다. 소리 소문 없이 다 제거된다”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는 공영방송(KBS·MBC) 인사도 참석했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2년 반 이사장으로 있는데 최근 몇 달간 방송 행태를 보면 철저하게 공적 책임을 외면하기로 결심한 듯한 느낌 갖지 않을 수 없다. 언론 절반의 문제고 KBS도 책임 면치 못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언론관을 피력했다. “권력 견제는 정치인들이 할 문제지 방송은 그럴 힘이 없다. 정치인들이 하는 걸 정확하게 보도해서 여론이 민주적으로 일어나 정치인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공정성 타령에 휩쓸려 방송이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토론이 끝나고 이 이사장은 “권력 견제는 방송의 여러 기능 중 하나다. 공정성 떠들다 보니 방송이 교육과 교양 등 해야 할 일을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2006년 ‘친일 미화’ 논란을 일으킨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출간한 교과서포럼의 고문으로 임명 당시 뉴라이트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의 주장도 새로웠다. 고 이사장은 “우리 언론은 사회 혼란 야기하는 선전선동 매체로 전락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 애국 언론 역할이 중요하다”라며 자사 방송을 “애국시민들이 보는 유일한 공정방송”이라고 칭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3월10일 ‘보수 세력 광장으로 이끈 ‘태극기 집회’…“새 바람”’ 리포트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두고 “보수권 집회의 새로운 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탄핵 반대 집회가 격해져 사망자가 발생한 당일이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여야 7:6 정도로 바꾸고 사장 선임 때 특별다수제(3분의 2 이상)를 도입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두고 고 이사장은 “공정 방송 명맥을 유지하는 문화방송에게 재갈을 물려 특정 정치세력의 하수인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통진당을 추종하는 언론노조가 사실상 편성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KBS 막내 기자들이 쓴 반성문에 대해 ‘선동하지 말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KBS 성창경 공영노동조합 위원장은 자사 기자를 ‘중간 숙주’로 표현했다. 성 위원장은 “KBS 보수 체제 피를 바꾸기 위해 정연주 사장 때 특채를 해서 한겨레와 경향신문, 기자협회보 출신 기자 수십 명을 뽑았다. 그들이 중간 숙주 역할을 해서 지금의 좌파를 만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탄핵 보면서 언론의 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광풍적인 편파적 보도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KBS 조우석 이사는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라는 명분에 매달려 실수(오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과서에 쓰여 있지만 잘못됐다”라며 “언론이 너무 많다. 종편 4개 중 세 개 정도는 빼앗아야 한다. 종편을 한 군데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케이블로 돌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토론회라기엔 반론도, 논박도, 이의제기도 없었다. 토론 중간 중간 발언을 마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우석 이사의 발언 도중, 토론회 처음으로 ‘이의제기’가 나왔다. 한 교수는 “간단히 빨리 끝내고 다른 사람도 하게 해 달라”고 조우석 이사의 말을 끊었다. 두 시간 가량 진행된 토론은 “언론 좌경화로 (우리나라가) 제정 러시아와 월남의 전처를 밟게 됐다. MBC도 우경화를 확실히 하자”라는 MBC 이윤재 공정방송노동조합 위원장의 발언으로 마무리됐다.

기자명 전광준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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