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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투철한 공적 의식의 사사로운 통치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비선의 결정 사항을 비서실이 정책으로 만들고 내각은 집행만 하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정책 결정의 경로가 엉터리였다. 엉뚱한 보고를 받고 와서 담당자도 아닌 참모에게 지시를 내렸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7년 03월 22일 수요일 제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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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파면이 확정되고 4시간여가 지난 3월10일 오후 3시께,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삼성동 사저로 이동하지 못한다. 입장 발표도 없다”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탄핵 반대 집회가 격렬해지면서 사망자까지 나온 시점이었다. 지지자들의 분노가 갈 곳을 잃고 타오르던 와중에도, 박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에 따라 지지자를 달래고 갈등을 봉합하는 마지막 공적 책임을 외면했다. 박근혜 시대를 압축하는 키워드는 공공성의 파산이었고, 파면된 날마저도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는 그 시대를 끝내는 장면으로 잘 어울렸다.

묘한 역설은 여기서부터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공 의식은 겉보기에 남다른 데가 있어 보였다. 정치 이력 내내 그에게는 ‘국가관이 투철하고 사사롭지 않다’는 이미지가 따라다녔는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당했을 때 “휴전선은 괜찮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이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만들어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 직후의 빠른 승복 역시 사사롭지 않다는 이미지를 강화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해 가족 간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공공 의식을 강조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이후, 헌재의 대통령 대리인단 변론이나 광장의 탄핵 반대 집회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논변은 이런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 주머니에 1원 한 푼 챙긴 적이 없는 청렴한 지도자다!” 이 말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거짓으로 확인된 바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정말로 제 주머니에 챙긴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비슷한 정서는 본인도 강조했다. 지난해 11월4일 2차 대국민 사과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저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해 가족 간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라고 말했다. 사익 추구를 원천봉쇄했다는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녀는 자신의 공적 자의식에 강한 확신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근혜 게이트 이후 드러난 사실을 보면, 박근혜 시대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사사로운 통치의 시대였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출범 당시 청와대 비서관 35명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사사롭게 출발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대표되는 비서실 통치가 예견되던 정부여서 비서관 인사 비공개 조치는 사실상 노골적인 공적 검증 회피였다.

장관들의 ‘적자생존(잘 받아 적어야 생존한다)’

이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비선의 결정 사항을 비서실이 정책으로 만들고 내각은 집행만 하는’ 공적 프로세스의 총체적 붕괴를 보여주었다. <시사IN>이 단독 입수해 연속 보도했던 ‘안종범 업무수첩’은 분명한 증거다. 2016년 3월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야당 의원 두 사람을 콕 찍어 총선 ‘낙선운동’을 지시한다.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한 중대한 공공성 훼손이다. 계통도 엉망이었다. 이 지시는 안종범 경제수석을 통해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에게 전달되도록 되어 있다.

ⓒ시사IN 윤무영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내용을 보면 청와대는 업무 계통이 엉터리였다.

2016년 3월2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자가줄기세포는 안전성이 입증됐다. 임상실험 진입 장벽을 낮춰라”라는 지시를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내린다. 자가줄기세포의 안전성 문제는 과학계에서 확고한 결론이 났다고 보기 어렵다. 정책 결정의 경로도 엉터리다. 의료정책의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내용을, 업무 책임자도 아닌 경제수석에게 일방 지시했다. 의료정책 전문가로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조정수석을 지냈던 김용익 민주연구원장은 “업무 계통이 엉터리다”라고 말했다.

2016년 10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선제타격이 통일의 기회가 되고, 북한 리스크가 낮아지면 투자 유치 효과가 있을 수 있다”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다. 북한 선제타격론이라는 고도의 안보 이슈가 투자 유치 문제로 다뤄지는 것도 독특하지만, 이 지시가 왜 안종범 당시 정책조정수석에게 내려졌는지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대통령이 어디서인지 모를 곳에서 엉뚱한 보고를 받고 국가안보실장도 아닌 정책조정수석에게 지시하는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 12권에 등장하는 ‘VIP(대통령)’ 지시 사항 중 상당수가 이런 식이었다. 안종범 수석은 자신의 보직과 거리가 먼 업무를 마치 개인 집사처럼 지시받았다.

통치의 공적 경로여야 할 내각은, 청와대 참모들의 지시를 단순히 수행하는 사적 통치의 말단 집행조직으로 전락했다. 국무위원으로서 국정의 공동 책임자인 각 부처 장관들은 ‘적자생존’(잘 받아 적어야 생존한다)이라는 야유를 받는 ‘예스맨’들로 채워졌다. 보수 진영에 인맥이 넓은 윤여준 전 장관이 들려준 에피소드다. “블랙리스트 파동 진원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조윤선 장관이 부임해서 간담회를 할 때다. ‘위에서 부당한 지시가 와서 조직이 동요하는 문제가 많았으니 막아달라’는 건의가 나왔다고 한다. 조 장관이 ‘나는 여러분들을 보호하러 온 사람이 아니고 지시를 이행하러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더라. 그 말을 들은 문체부 사람들이 이 장관을 믿다가는 자기들까지 큰일 나겠다고 딱 감을 잡고, 없애라고 한 증거를 다들 갖고 있다가 그걸 모두 특검에 넘겼다고 한다.”

통치자 박근혜에게는 ‘국가관이 투철하고 사사롭지 않다’는 이미지와, 공적 통치 프로세스에 대한 철저한 무시라는 현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했다. 8대2로 쪼개진 탄핵 찬반 여론은 대체로 이 모순을 반영했다. 15~20%를 유지했던 탄핵 반대 여론은 박 전 대통령의 ‘사사롭지 않다’는 이미지를 강조하며, 본인 주머니로 1원 한 푼 받은 증거가 없다는 대목을 되풀이해 내세운다. 공적 통치 프로세스가 붕괴했다는 현실은 탄핵 반대 집회에서 외면받았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사로운 지시를 충실히 따랐던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부터).

특히 박 전 대통령 본인이야말로 자신이 ‘국가관이 투철하고 사사롭지 않다’고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다. 2월27일 헌법재판소에 서면으로 제출한 ‘피청구인 대통령 의견서’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저는, 정치인의 여정에서, 단 한 번도 부정과 부패에 연루된 적이 없었고, 주변의 비리에도 엄정했습니다. 최순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일 역시, 제가 사전에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엄하게 단죄를 하였을 것입니다. (…) 지금껏 제가 해온 수많은 일들 가운데 저의 사익을 위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저 개인이나 측근을 위해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거나 남용한 사실은 결코 없었습니다.”

3월10일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므로 탄핵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기각하면서 이렇게 쓴다.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청구인이 최서원 등이 운영하는 회사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실은 증거에 의하여 분명히 인정된다. 대통령으로서 특정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권한을 남용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므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등 위배에 해당함은 변함이 없다.” 그 결과가 대통령 개인의 사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통치의 공공성이 무너진 것은 별개로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탄핵 반대 집회, 박근혜 대리인단, 그리고 박 전 대통령 본인은 이 차이를 모른 척하거나, 정말로 구분하지 못했다.

헌재의 파면 결정 직후, 청와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충격에 빠졌다. 헌재 결정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박 전 대통령은 이정미 재판관의 전원일치 파면 결정을 듣고 일부 참모에게 전화해 사실관계를 재확인하기까지 했다고 알려졌다. 파면 결정을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듯한 박 전 대통령의 대응은 외부 관찰자의 눈에도 놀라운 장면이다. 공적 통치 프로세스를 그토록 무시하던 통치자가 어떻게 탄핵이 기각되리라고 그리도 당연히 확신할 수 있었을까.

백낙청 명예교수가 제안한 개념이 흥미로운 가설을 제공한다. 백 교수는 올해 <창작과 비평> 봄호에서 ‘이면헌법’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면헌법은 ‘빨갱이로 몰린 자에게는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관습헌법으로, 분단 체제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실제 헌법보다도 더 상위법으로 간주된다.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선 항의자들이 “군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면헌법으로 보면 완벽히 헌정적 원리에 맞다. ‘빨갱이’가 준동한 결과인 작금의 탄핵 사태를 바로잡는 것은 이면헌법의 명령이며, 이면헌법이 실제 헌법보다 우선하므로 내란 선동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국가는 진보·좌파적인 반대파를 ‘비(非)국민’으로 낙인찍고 국가 밖으로 밀어낸다.

ⓒ연합뉴스
20016년 11월2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총력투쟁대회에서 조합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근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로 기록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면헌법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다. 특검 공소장과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등에서 나타난 김기춘 전 실장의 세계관은 이면헌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2014년 6월1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김영한 업무일지는 기록한다. ‘이념 대결 속에서 생활-갈등 속에서 전사적 자세 지니도록’ ‘가치중립적 타협은 없다. 회색지대 없다.’

‘국가=우파=현 집권세력=박근혜’

특검 공소장이 밝힌 김기춘식 청와대 운영은 더 노골적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2014년 1월4일 김 전 실장은 수석비서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국회의원 시절부터 국가 개조에 강한 의지를 갖고 계셨다. 지금 형국은 우파가 좌파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 모두가 불퇴전의 각오로 투지를 갖고 좌파 세력과 싸워나가야 한다.’ 2013년 12월18일에는 ‘반국가·반체제적 단체에 대한 영향력 없는 대책이 문제다.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잡고 있다. 영화 <변호인>과 <천안함 프로젝트>가 그렇다. 하나하나 잡아나가자’라고 말했다.

김기춘 전 실장에게 국가란 곧 ‘우파=현 집권세력=박근혜’였고, 심지어 <변호인>과 같은 상업영화도 반국가·반체제·좌파의 힘을 보여주는 ‘국가 밖의 존재’였다. 헌법 정신과 맞지 않는, 위헌적 통치다. 하지만 ‘빨갱이로 낙인찍힌 대상은 비(非)국민으로 간주한다’라는 이면헌법에는 정확히 부합한다.

실제로 김기춘 전 실장은 자신의 ‘공적 의식’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한 업무일지의 메모에는 김 전 실장의 이런 발언도 기록되어 있다.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 “(청와대는) 명예를 먹는 곳. 모든 것을 바쳐 헌신.” 이는 김 전 실장이 나름대로 공적 자의식을 가졌던 증거다. 이런 공적 자의식의 소유자가 블랙리스트와 같은 반헌법적 통치를 지시했다는 사실은, 그가 충성했던 대상이 헌정 원리라기보다는 이면헌법의 원리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해서 박근혜 정부의 운영자들은 통치의 공적 프로세스를 붕괴시키는 노골적인 사사로움과, ‘국가관이 투철하다’는 공적 자의식을 모순 없이 조화시켰다. 진보·좌파·반대파를 ‘국가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이들에게는 전혀 사사롭지 않았다. 오히려 이면헌법의 원리에 따라 국가관이 투철하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의 운영자들은, 실제 통치 양태는 지독히 사사로우면서도 정작 투철한 공적 의식을 자부하는 기묘한 분열 상태로 빠져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에 대한 현실감각이 무뎌질 정도로 이 기묘한 분열 상태의 극단으로 치달았다.

ⓒ연합뉴스
14시간 동안의 피의자 조사와 밤샘 조서열람 및 검토를 마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와 차량에 오르고 있다. 2017.3.22
2016년 겨울의 광장은 이 분열 상태에 결정적인 제동을 걸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시민을 대표하는 구호는 “이게 나라냐!”였다. 공공성의 파산을 정면으로 추궁하는 구호다. 광장은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요구와 구호의 집합소였으되, 박근혜 정부의 통치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사사롭다는 점만은 사실상 만장일치가 이루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 투철한 국가관의 외피로 보호받지 못했다. 광장의 주권자들은 박근혜 정부 운영자들의 기묘한 분열 상태를 폭로해 사사로운 민낯을 드러냈다.

이면헌법은 광장의 존중을 전혀 받지 않았으며 국가의 공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대한민국 헌법이 광장의 무기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면헌법과 대한민국 헌법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광장과 여론의 추이는 분명했다.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자가 이면헌법의 수호자를 훌쩍 뛰어넘는 다수파였다. 3월10일 헌재가 추인한 것은 이 충돌에서 확인된, 대한민국 헌법이 이면헌법에 우선한다는 승리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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