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오랜 세월 정치의 영역에서 공란으로 존재했다. 프랑스 혁명의 불씨를 댕긴 장 자크 루소는 ‘천부인권’을 말하면서도 여성을 배제했다.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중략) 단 하나, 여성은 예외다. 여성에게는 인권이 없다. 그러므로 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으며 정치에 참여시켜서도 안 된다.”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 설 수 있는 자리는 단두대뿐이었다.

한국은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며 제도적 평등을 보장했다. 그러나 투표권은 권력을 나누기보다 독점하는 데 사용됐다. 정치권력은 오랜 시간 남성의 몫이었다. 각국의 성 평등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 격차 지수’를 보면, 2016년 한국은 144개국 중 116위에 그쳤다. 여성은 교육성취도가 높은 반면, 경제 참여 기회가 낮았다. 무엇보다 정치적 권한 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평소에는 보수와 진보로 노선을 달리하는 여성단체들도 여성할당제 같은 공직선거법 개정 문제에서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결정적 다수(critical mass)를 만들어야 한다.’ 즉, 조직 구성원 중 적어도 30%를 여성으로 채우자는 주장이다.
 

ⓒ시사IN 조남진

박근혜라는 ‘여성 정치인’의 존재에 대한 질문도 여기서 시작된다. 여성이 정치를 하면 ‘여성 정치’인가? 고위 공직자 및 기업 임원의 여성 비율이 매우 낮고(‘유리천장’이 두텁고) 성별 임금격차는 37%로 OECD 국가 중 1위인 한국에서 여성이 국가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다. 여전히 ‘여성’을 생물학적 범주로만 이해하는 사람이 다수임을 고려하면, 2012년 ‘최초 여성 대통령’ 탄생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 평등’이 이뤄진 것처럼 착각하게 했고, 정치를 성별로만 환원하는 오류를 범했다.

시계를 2012년 그해로 돌려보자. ‘여성’은 박근혜 캠프의 핵심 선거 전략으로 동원되고, 작동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애초 박 전 대통령은 “약해 보인다”라는 이유로 이를 마뜩잖아 했다. 2007년 당내 경선 당시에도 여성을 부각하는 전략에 부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은 자신의 의견을 뒤엎는 기획이었다. 2012년 10월28일, 박근혜 후보는 “여성 대통령만큼 큰 변화와 쇄신은 없다”라고 선언한다.

새누리당은 진보 진영의 어젠다인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자신들의 보수적 인상을 바꾸는 전략 중 하나로 사용했다. “정치 선진화를 세계에 선포하고 국격과 국가 브랜드가 달라지는 것(유정복 당시 직능총괄본부장)” “대한민국에서 3·8선 빼고 마지막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정현 당시 공보단장)” “여성 대통령은 그 자체가 양성평등과 여성 권익을 위한 의미 있는 이정표(김무성 당시 총괄선거대책본부장)” 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또한 박 후보에게 제기되는 비판을 ‘여성 전체에 대한 폄하와 동일한 것’으로 다루면서 책임과 답변을 무마했다. 박 후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 “여성 전체를 부인하는 발언(이정현 공보단장)”으로 뭉뚱그렸다. 검증은 피해갔다. 1997년부터 거르지 않고 열렸던 시민사회단체 주최 토론회인 ‘대선 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는 박 후보의 거부로 무산됐다. 김은희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연구위원은 “젠더가 보수 정치의 기회주의에 활용되고 정치적으로 전유됐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마치 젠더의 이해관계인 것처럼 포장됐다”라고 평가했다(2013년 1월30일 국회 토론회).
 

ⓒ사진공동취재단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는 ‘여성’을 핵심 선거 전략으로 동원했다.

그렇게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는 박 전 대통령 차지가 되었다. 박정희와 육영수라는 가족의 후광을 등에 업은 채였다. 박 전 대통령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정치를 하기보다는, ‘남성이 용인할 수 있는’ 여성 리더십(이른바 ‘명예 남성’)으로 정치를 해왔다.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3월3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 앞에 붙는 ‘여성’이란 말을 떼야 할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여성 정치 지도자가 그녀의 삶에 관계된 남자들 때문에 최고의 지도자 자리에 올라간다. 그 자체가 가부장제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의 실패가 여성의 실패는 아니다

‘여성 대통령’의 실패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녀의 계급적 기반이 주목받을 터였다. 그 자신의 공과보다 아버지가 대통령쯤 되는 ‘다이아몬드 수저’여야 여성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될 가능성이 높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형 국기 문란 사건의 ‘주동자’가 된 지금은 “거봐, 여자는 안 돼”라는 여론으로 귀결된다. 남성이 모든 남성과 여성을 대표하지 않듯, 여성도 모든 여성과 남성을 대표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한 사람의 실패는 손쉽게 여성 전체에 대한 비하로 이어졌다. “앞으로 100년 내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라”던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은 이를 정확하게 뒷받침한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의 말마따나 여성의 행동은 ‘성별만으로’ 쉽게 환원된다. 남성은 보편적 정치 주체로 간주되기 때문에 개별 남성 정치인의 행동은 전체 남성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도 ‘역시 남자라서 안 돼’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았다. “성차별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여성의 존재를 그들이 직접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성 역할’로만 제한하는 규범과 제도다(〈낯선 시선〉, 교양인, 2016).”

박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여성혐오’를 해소하려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용하고 부추겼다. 그녀를 대통령으로 세운 ‘남성 정치’ 역시 이를 거들었다. “내가 남자다운 편이어서 약한 여자를 보면 지켜주고 싶다(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유영하 대통령 변호인)” “법관이라면 약한 여자를 편들어야(김평우 대통령 대리인)” “여성 대통령에게 미용 시술 의혹에 대해 물으면 결례(김기춘 전 비서실장)” 같은 식이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지난 1월25일 정규재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해명하며 “여성이 아니면 그런 식으로 비하를 받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라는 공적 지위를 지운 채 여성이라는 성별을 부적절하게 동원했다. 권인숙 교수(명지대)는 “여성은 대통령의 공적 역할을 무책임하게 수행해도 되는 존재로 폄하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주역인 촛불 시민들은 지난 4개월 동안 광장에서 각종 논란을 거치며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중이다. 광장은 “여성, 여성 정치인, 여성 대통령으로 환원된 혐오의 언어들이 뒤섞인 페미니스트 정치의 각축장”으로도 기능했다. 김은희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연구위원은 이 지점에서 ‘최초 여성 대통령’의 성과를 찾는다. 박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정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끄집어냈고, ‘어떤 여성과 연대할 것인가’를 마주하게 했다(〈그럼에도 페미니즘〉, 은행나무, 2016).

대중에게 여성을 대표하는 이름은 오랫동안 미스코리아였다. 그 자리를 ‘여성 대통령’이 대신한 것이 아주 나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계간 〈창작과 비평〉(2013년 가을호)에서 “오히려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젠더 정치의 지형이 등장할 수 있다”라고 평가하며 정치, 특히 진보 진영이 여성이라는 기호를 적극적으로 전유할 것을 주문한다.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여성’을 이유로 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그의 말을 돌려주는 걸로 충분하다. 실패한 여성 대통령을 가진 경험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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