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0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점심에 잔치국수를 먹었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 식당 메뉴였다. 국회 탄핵 소추위원인 그는 이날 오전 11시 헌법재판소(헌재) 심판정에 있었다.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진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91일 동안 탄핵 소추위원으로 활동했다. 헌재는 3차례 준비 기일과 17차례 변론 기일을 열었다. 박 의원에게 헌재 탄핵 심판 과정을 물었다.

 

ⓒ시사IN 조남진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소추위원으로 활동하며 3만2000여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검토했다.


탄핵이 인용됐다.

소추위원단은 모두 헌재 청구인석을 지켰다. 현장에 앉아서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하는 선고 요지를 듣는데 긴장되어 손이 차가워졌다. 그래도 내심 5개로 정리된 탄핵 사유가 다 인용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탄핵 소추 앞부분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자유 침해’ ‘세월호 생명보호 의무 위반’ 3가지 사유가 기각됐다. 이정미 대행의 “그러나”를 들을 때마다 손에서 땀이 났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안도가 됐다.

헌재 결정문의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나?

헌재 재판관들은 박 전 대통령이 반복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생명보호 의무 위반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정말 아쉽다.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다시 있어도 안 되고 흔한 일도 아닌데, 최고 통치자에게 적극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석해야 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해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이 있지만, 미진했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특별히 신경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헌재는 대통령 쪽에 사실 입증 의무를 적극 요구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굉장히 답답했다. 막판에 대리인단이 동영상 하나를 제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늦게 도착한 증거라고 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는데 정작 영상은 견인하는 장면이었다. 그뿐 아니라 재판부는 대리인단이 낸 7시간 관련 소명 자료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보강하라고 했는데 대리인단이 제대로 못했다. 4월16일 당일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는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 내역은 내지도 못했다. 다른 통화기록도 헌재가 요구했지만 내지 않았다. 확실한 건 하나다. 저쪽에서는 의혹에서 벗어날 만한 자료가 없었다.

 

 

 

 

검찰이 헌재로 넘긴 3만2000여 쪽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변론에 참석했다.

사실 처음에 수사기록을 보는 게 쉽지 않았다. 헌재에서 워낙 보안을 강조하다 보니, 권성동 위원장이 법사위원장실 캐비닛 한곳에만 기록을 뒀다. 평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만 볼 수 있게 했다. 심지어 복사·메모·사진 촬영도 안 되었다. 보고 있으면 옆에서 보좌진이 몇 페이지를 읽는지 적어갔다. 그런데 대통령 대리인단이 변론에서 증인신문을 할 때 수사기록을 줄줄 읽었다. ‘수사기록에 이렇게 쓰여 있는데 맞느냐?’는 식이었다. 대리인단이 시간을 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덕분에 내용 파악에 도움이 되었다(웃음).

증인은 모두 25명이 나왔다.

다들 면면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어 차은택 감독은 “최순실이 지난해 초, 2018년 내 남북통일을 확신했다”라는 등 증언을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통일 대박’ ‘북한붕괴론’ 같은 정권 차원의 철학과 정보를 최순실씨와 같은 민간인들이 공유했다는 뜻인데, 정말 소름이 돋았다.

이영선 경호관은 헌재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정말 앞뒤도 안 맞게 무조건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했다. 이 경호관은 최순실씨 휴대전화를 닦아준 이유에 대해 “경호원으로서 몸에 밴 습관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그 이야기에 다른 경호원들이 정말 분노했다고 하더라. 경호의 제1원칙이 건네준 물건을 받지 않는다는 거라고 한다.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경호관은 검찰 압수수색 직전에 대포폰에서 번호 하나를 지웠는데, 실수라고 했다. 그래서 제가 해봤다. 실수로 딱 한 번호만 지워보려고. 안 되더라(웃음).

마지막에 대통령 대리인단에 변호사 등이 추가로 합류하는 등 화력이 대단했다.

절차의 정당성이나 공정성을 훼손하고 싶은 거다. 처음부터 재판을 하던 변호사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 이상하니까, 새로 합류한 변호인들이 그 역할을 했다. 최후 변론할 때는 더 이상 승패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실체적 사실관계나 증명 정도 등 법리를 다투는 게 아니었다.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재판관이 부정적 생각을 하게 하는 용어 선택과 태도를 보였다. 결국 지지층을 향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리인단에 새 변호인들이 합류한 게 탄핵 재판의 변곡점이었나?

맞다. 2월9일이 그때다. 2월7일까지는 헌재가 피청구인(대통령) 대리인단에 끌려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계속해서 피청구인 대리인단 쪽의 무리한 증인 신청을 받아줬다. 국회 대리인단이 문제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여론도 반응했다. 이후 헌재 태도가 바뀌었다. 안 나오는 증인은 직권 취소했다. 계속 안 나오면 추가 기일도 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때부터 피청구인 대리인단 쪽 전략이 바뀌었다. 지연 전략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걸로 추정된다. 이후 새 변호사들이 합류했다.

김평우 변호사가 압권이었다.

글로 김 변호사의 말을 보는 것과, 실제로 듣는 건 정말 다르다. 헌법재판소 홈페이지를 가면 영상을 볼 수 있다. 한번 보면 감이 확 온다. 국회 소추위원단과 헌재 재판관을 위협하고 겁주고 비아냥댔다. ‘아스팔트가 피와 눈물로 물든다’ ‘내란이 일어난다’ ‘미안하게 됐다’는 식이었다.

이전까지는 서석구 변호사가 주목받았다.

서 변호사는 1월5일 2차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국회의원 234명의 결정이 틀렸다는 근거로 ‘다수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예수·소크라테스’ 등을 인용했다. 그때 국회 대리인단이 재판장에게 제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권성동 위원장에게 “전체적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대리인단의 발언을 그냥 하게 놔두는 것도 우리 쪽 전략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리인단은 ‘탄핵소추안 정보를 찾을 수 없게 숨겨놨다’는 식으로 거짓말도 했다.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뿐만 아니라 기사에서도 전문을 볼 수 있다. 사실 변호사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행동이다. 게다가 그런 말을 재판부가 아닌 방청석을 바라보며 한다. 재판부가 몇 번이나 주의를 줬는데도, 몸은 카메라를 향한다. 심지어 그 말을 집회에 나가서도 하더라. 의도가 있다.

어떤 의도라고 보나?

탄핵 인용은 끝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형사재판 절차가 남아 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 검찰이 일부 건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하고 또 재판에서도 일부 무죄가 나오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박 전 대통령은 그 부분만 강조하며 ‘정말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 정부가 ‘거짓으로 정권을 빼앗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자유한국당도 버틸 언덕을 마련할 수 있다.

 

기자명 김은지·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