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에서 내렸다. 5분 남짓 걷자,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 맞은편에 2층 양옥집이 보였다. 3월1일 저녁, 대문은 닫혀 있고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담장 위 녹슨 철조망 뒤로 보이는 1층과 2층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대문 옆 경비초소에 경찰 1명과 의무경찰 3명 등 4명이 교대로 24시간 경계를 섰다. CCTV 4대가 주인 없는 집을 지켰다.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이다. ‘금남의 집’은, 대선을 처음 준비하던 2002년에야 출마 이벤트 격으로 처음 개방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누구도 쉽게 드나들지 못할 때 최순실씨만 무사통과했다. 최씨 어머니 임선이씨가 이 집 계약을 주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지 않는 한 박 대통령은 이곳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통합’이냐 ‘분열’이냐의 갈림길이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닉슨 대통령의 작별 사진이다. 1974년 8월9일 그는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며 백악관 직원들에게 인사한 뒤 헬리콥터에 올랐다. 그도 “나는 사기꾼(crook)이 아니다”라며 마지막까지 버텼다. 하지만 닉슨은 결자해지했다. 그의 고별 기자회견은 미국을 하나로 묶었다.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대통령) 의무를 완수하고 싶었습니다. 가족들도 만장일치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은 어떤 개인적인 고려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닉슨은 또 말했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견딜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온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대통령과 온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의회가 필요합니다.” 닉슨은 통합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우리들 모두는 이 나라의 발전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 힘을 합쳐 공통의 약속을 확인하고, 새 대통령이 모든 미국인을 위해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웁시다.”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면 박 대통령은 곧바로 청와대에서 짐을 빼야 한다. 이때 박 대통령에게 마지막 고별사를 허하자. 그에게도 결자해지할 기회를 주자. 고별사마저 ‘저’ ‘그’ ‘그러니까’만 반복하거나 흰소리를 하면, 이번 호부터 전혜원 기자가 본격적으로 맡은 팩트 체크 지면에서 낱낱이 검증할 것이다. 박 대통령도 분열의 언어가 아닌 통합의 언어로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이 고별사는 최순실씨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썼습니다”라는 농담으로 고별사를 끝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정치인의 유머는 때로 극단적 대결 상황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봄에도, 여름에도 광장이 나뉘어선 안 된다. 선택은 이제 박 대통령 자신의 몫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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