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2004~2010년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북한 핵 개발 상황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요즘 그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노학자는 유사시 한반도에 ‘핵 재앙(nuclear catastrophe)’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미국 언론 기고를 통해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에 들어간 트럼프 행정부에 조언을 했다. ‘핵 재앙’ 방지가 북핵 정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 북·미 직접 대화와 대통령 특사의 평양 파견도 주장한다. 인류 최초로 핵폭탄을 설계한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을 지낸 뒤 현재 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헤커 박사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지난 1월12일자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북·미 직접 대화가 트럼프 행정부에 최선의 옵션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가 핵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정권과 대화해야 한다. 대화를 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북한과 잠재적인 핵 충돌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도 되는지 혹은 핵을 포기할 것인지는 훨씬 장기적인 문제다. 내가 볼 때 즉각적인 이슈는 우리가 지금 핵 위기에 처해 있으며, 핵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 재앙’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확실히 알 순 없지만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정말 위협적인 핵무기고를 건설했다. 북한은 아마도 20~25개에 이르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 원료를 확보했을 것이다. 북한은 계속해서 좀 더 정교하고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북한이 그런 강력한 핵 화력을 지닌 상황에서 내가 핵 재앙을 우려하는 까닭은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거나, 그들의 핵무기 보안과 안전에 문제가 생기거나, 북한 정권이 오판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한반도에 군사 충돌이 생겨서 긴장이 격화돼 핵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어떤 형태의 핵무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한반도에서 사용한다면 그게 바로 ‘핵 재앙’이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사용되거나 폭발하는 걸 막는 일이다. 그게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첫 목표가 되어야 한다.

ⓒ연합뉴스헤커 박사(위)는 먼저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그런 다음 감축시키고, 최종적으로 해체하자고 주장한다.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핵 시계가 째깍대고 있다”라면서 북한은 기존 핵무기 외에 해마다 6~8개를 추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내 추산은 플루토늄에만 근거한 게 아니다.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포함하는 것이다. 북한은 1년에 최대 한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한다. 하지만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는 불확실성이 많다. 고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우리가 아는 정보가 많지 않다. 추측하건대 북한은 아마 1년에 6개까지 고농축 우라늄 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북한은 매년 6~8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어디까지나 내 추산이다. 핵 위기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미국 본토에 미칠 수 있는 핵탄두 미사일을 개발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은?

북한은 현재 핵무기 20~25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및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미 간 합의 사항들을 어겨온 북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많다.

미국과 북한은 서로 신뢰할 만한 관계에 있지 않다. 합의에 금방 서명할 수는 있겠지만 신뢰를 구축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북한이 자신들이 서명한 많은 합의 사항을 위반하긴 했다. 어떤 것들은 미국이 파기할 것에 대비한 위험 방지 차원에서 그런 것도 있다. 예를 들어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북한과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외교관계를 맺기로 한 정치적 합의서)의 경우 미국이 약속한 만큼 이행 사항을 신속하고 완전하게 지키지 않았고, 그러자 북한은 방지책(hedge)을 만들어냈다. 미국을 속이고 농축우라늄 계획을 밀고 나간 것이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현대식 경수로 두 대가 건설되는 여러 해 동안 북·미 양국은 신뢰를 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신뢰하지 않고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오늘날 북·미 간에는 여전히 신뢰 관계가 없다. 북·미 양국이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 최소 10년은 걸릴 듯하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보다 미국과 북한이 직접 협상하는 양자회담을 주장하는 까닭은?

1994년 제네바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제네바 합의서가 도출됐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북·미 직접 대화를 권하는 주된 이유는 앞서 얘기했지만 핵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북한이 핵무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며 북한 핵 정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핵 사고를 막기 위해 북한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고 핵무기 안전대책을 어떻게 수립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이런 건 다자 협상으로 알아낼 수 없다. 북한과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한국과 중국도 포함해야 하고, 6자회담 참여국인 일본·러시아도 들어와야 한다. 결국은 다자간 협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핵 재앙을 막기 위한 의미 있는 협상을 이루려면 북·미 양자회담을 먼저 해야 한다.

북·미 대화가 잘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앞서 북한 측의 비핵화 다짐을 받을 필요는 없나?

그런 식의 접근은 내 우려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내 말은 당장 핵무기 사용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장기적인 과제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 우려가 너무 크니 어떤 전제 조건도 없이 지금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향후 협상은 궁극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하지만 비핵화는 향후 몇 년 동안 해결될 사안이 아닌 훨씬 장기적 과제다. 내가 주장하는 건 당장 북한과 협상하라는 게 아니다. 핵 재앙을 막기 위해 대화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도 교착상태에 빠진 핵 협상을 살리기 위해선 비핵화보다 핵동결 협상부터 진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고 8년 이상 주장해왔다. 먼저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halt)시키고, 그런 다음 감축시키고, 최종적으로 해체하자는 것이다. 내가 볼 때 ‘동결(freeze)’은 ‘중단’이라는 용어와 같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상황이 악화되는 걸 방지하는 것이다. ‘동결’ 혹은 ‘중단’이라고 할 때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나는 이걸 ‘세 개의 불가 원칙(Three No)’이라고 표현했다. 첫째, 북한이 추가로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고(No more bombs), 둘째, 지금보다 향상된 핵폭탄을 만들지 않으며(No better bombs), 셋째, 핵무기 혹은 핵물질을 수출하지 않는(No export of bombs or nuclear material) 것이다. 이런 원칙이 ‘동결’ 혹은 ‘중단’ 협상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한 미국 정부 측의 반응은?

내가 이런 방식을 8년 전 제안했을 때 미국 정부가 지지해주길 바랐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랬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협상 입지가 좋아졌을 것이다. 불행히도 여러 이유로 그러질 못했고, 결국 지금 우리는 훨씬 더 많은 핵을 지닌 북한과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제 막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에서 핵 충돌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직면한 과제는 오바마 혹은 부시 행정부가 맞닥뜨렸던 문제와 판이하고 따라서 접근 방식도 달라야 한다.

끝으로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에 들어간 트럼프 행정부에 충고할 게 있다면?

다시 말하지만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잠재적 핵 재앙도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협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북한에 득이 된다는 점도 이해시켜야 한다. 이게 트럼프 행정부에 주는 내 충고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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