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부터 전국 대학생 2520여 명이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 각자 학교 식당을 찾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낀 이들은 식당 배식원과 세척원 등으로 변신했다. 그렇게 자투리 시간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임금을 식권으로 받았다. 그리고 기부했다.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한 장 두 장 모인 식권 1만9000여 장은 3000원 내외의 밥조차 사먹기 부담스러운 대학생 1900여 명에게 전달됐다. 대학생 봉사단체 ‘십시일밥’이 한 일이다. 이 단체가 내건 모토는 ‘나의 공강 한 시간이 내 친구의 밥 한 끼로’이다.

십시일밥을 창립한 이호영 전 대표(27·한양대 졸업생)에게 어른들은 종종 “왜 대학생들 밥까지 도와줘야 하나?”라며 딴죽을 걸었다. “대학생은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밥 사먹을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라는 비판이었다. 학교 식당에서 친구가 비운 식판에다 밥을 ‘리필’해서 먹는다는 가난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처음 활동을 구상했다는 이호영 전 대표는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밥 한 끼 마음 편히 먹기 힘든 친구들이 주변에 분명 많을 거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십시일밥 제공대학생 봉사 단체 ‘십시일밥’의 활동 모습.
예상이 맞았다. 단기 프로젝트로 한양대에서 출발한 십시일밥은 높은 수요 때문에 3년째 전국 29개 대학으로 퍼지며 ‘끝’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는 식권 판매대에서 십시일밥 봉사를 하면서 청년들의 생생한 ‘흙밥’ 실태를 자주 목격했다. “학교 식당 스낵 코너에서 라면과 밥 한 공기를 사면 1800원이다. 당연히 많은 학생들이 별미로 가끔 사먹는다. 그런데 학기 내내 매일 그것만 사먹는 친구를 봤다. 라면이 좋아서 그러지는 않을 것 아닌가.”

십시일밥에 참여한 봉사자들이 친구들에게 제공해준 것은 단순한 ‘밥 한 끼’가 아니다. 십시일밥 수혜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답변자 중 66%가 “식권을 받지 않았더라면 추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수혜자들은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인 만큼 실질적인 공부 시간을 확보’(80%)했고, 또 ‘식권을 받아 아낀 돈을 자기계발·학습비 등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썼다’(83%). 청년들에게 밥은 곧 ‘미래’였다.

십시일밥은 대학 내의 작은 민간단체다. 대학생들이 서로를 돕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이호영 전 대표도 한계를 명백히 인식했다. “십시일밥을 시작할 때부터 목적은 ‘이슈 레이징’이었다. 밖에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친구들이 밥을 못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라도 이렇게 돕고 있습니다. 학교와 정부, 사회가 이 문제를 알고 해결해주십시오.’”

대학이 부유해질수록 학생들은 배고파진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에 배고픈 학생이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수익의 원천’이다. 대학 내 외식업체 등 외부업체 입점률이 이를 방증한다. 대학교육연구소가 2015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대학에 입점한 일반·휴게 음식점은 310곳에 달한다. 아워홈·신세계푸드·GS리테일 등 대부분 대기업 계열 외식 사업체다. 대학은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멋들어진 건물을 지어 목 좋은 곳에 이런 업체들을 입점시킨 뒤 매달 임대료를 받는다. 지난해 전국 196개 사립대학이 임대사업과 같은 법인 수익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2조9817억원. 그 돈은 결국 ‘소비자’인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대학이 부유해질수록 학생들은 배고파진다.

다행히도 일부 국립대학 몇 곳은 그래도 학생들 밥을 챙긴다. 전남대·서울대 등에서 실시하는 ‘1000원 식사’가 대표적이다. 2월23일 저녁 6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식당은 방학인데도 저녁 식사를 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식당에 들어오는 학생 대부분은 B코너로 향했다. A·B·C 코너 가운데 B코너 메뉴는 가격이 단돈 1000원이다. 이날 메뉴는 카레라이스와 부추무침·샐러드·김치였다. 밥과 반찬 리필도 가능하다. 서울대학교 박여진 영양사는 “그나마 지금 방학이라 한산한 편이지, 학기 중에는 700명까지 길게 줄을 선 적도 있다. 서울대는 학교가 넓어 각기 가까운 식당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1000원 식사 시행 이후에는 먼 거리의 단과대 학생들도 일부러 찾아온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시사IN 신선영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부담 없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2015년 6월부터 ‘1000원 식사’를 시작했다. 2월23일 저녁 서울대 학생회관 식당에서 학생들이 식사하고 있다.
서울대는 2015년 6월부터 1000원 식사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건강한 대학 생활을 하며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처음에는 아침 식사에 한했다가 지난해 3월부터는 저녁 식사까지 확대했다. 한 끼 식사 단가 2200원 가운데 1200원을 학교발전기금에서 충당해, 지금껏 16만여 끼니를 1000원에 제공했다. 아침과 저녁 식사 모두 시행한 지난해 기준으로 2억여원 남짓한 예산이 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복지 지출에도 학생들 만족도가 높았다. 서울대 학생처 장학복지과 최명선 주임은 “어떤 학생들은 등록금 동결에 비견될 만큼 자신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이라고 하더라”며 학생들의 만족도를 전했다.

‘1000원 식사’는 서울대에 앞서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처음 실시했다. 2015년 4월부터 전남대는 매일 본교 식당 두 곳, 여수캠퍼스 식당 한 곳에서 단가 2000원짜리 아침 식사를 학생들에게 1000원에 제공하는 ‘건강밥상’ 사업을 시작했다. 역시 학교발전기금에서 그 재원을 충당했다. 전남대 학생과 하성림 후생팀장은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들이 밥 세끼를 다 사먹으려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라는 걱정이 이 사업의 출발이 되었다. 아침만이라도 학교에서 도와주면 학생들의 생활에 활력도 주고 밥값 부담도 줄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전남대의 이 ‘1000원 식사’는 서울대에 이어 지난해 4월 부산대, 9월 충남대 등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반가운 이런 대학 식복지 정책의 혜택은 ‘우리 학생’들에게만 주어진다. 전남대, 서울대 등에서 1000원으로 밥을 사먹을 수 있는 자격은 모두 ‘재학생’으로 제한돼 있다. 학생 카드가 없는 일반인은 제 가격을 내야 한다. 학내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가성비 최고’라고 소문난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의 학생 식당은 지난해 2월부터 외부인 출입을 아예 막았다. 점심시간마다 타 대학 학생들을 포함한 외부인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정작 재학생들이 줄을 서다가 밥을 먹지 못하거나 외부에서 밥을 사먹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는 이유였다.

배고픈 학생들에게 눈 한번 꿈쩍 않는 대다수 대학들에 비하면 이들 대학의 ‘우리 학생’ 밥 챙겨주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혜택을 받는 ‘우리 학생’들은 우리 사회 청년의 극히 일부이다. 더구나 이른바 ‘흙수저’가 ‘1000원 식사가 지원될 만큼 학교발전기금이 충분한’ 대학에 들어가는 일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학교 밖 가난한 청년 혹은 가난한 대학교의 학생은 배가 고파도 기댈 곳이 없다.

대안은 ‘우리 학생’이 아니라 ‘우리 청년’을 위한 건강한 밥상이다. ‘젊다면 누구나’ 양질의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먹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으로 청년 식사권 운동을 벌이는 시도들도 미약하게나마 우리 사회에서 생겨났다. 그 가운데 하나가 1인 가구 청년 식생활 연구모임 ‘끼다(끼니를 다함께·facebook.com/ggida.lab)’의 활동이다. 끼다는 또래의 청년 이웃을 초대해 식사를 차려주는 집밥 프로젝트 ‘우야식당’(〈시사IN〉 제461호 사람in ‘집나간 집밥의 반란’ 기사 참조)에서 발전한 단체다. 1인 가구 식생활 실태 조사와 노량진·신림동 고시촌 등지에서의 ‘하루 한 끼 건강하게 밥 먹기’ 캠페인, 식생활 일지 작성 모임 등 서울 청년들의 식사 문제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리고 있다. 끼다 모임지기 해영씨는 “돈 없이 갑자기 사회로 내던져진 청년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건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할 공적 영역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끼다 제공‘희망토’는 청년의 농업 접촉면을 넓혀 청년이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경험하도록 한다.
대구에서 도시농업 운동을 펼치는 ‘희망토(facebook.com/localfoodhopesoil)’ 강영수 이장은 청년 식생활 문제를 풀기 위해 농장과 청년들 사이 네트워크를 제안한다. 잉여 농산물 나눔에서 시작해 농업교육·체험활동을 벌이는 등 청년들의 ‘농업’ 접촉면을 넓히면서 강씨는 청년들이 ‘제대로 된 먹을거리’에 대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몸이 상한 청년들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다. 청년 문제라 하면 취업이나 창업만 얘기하는데 그렇게 돈 벌어서 뭐하나? 결국은 잘 먹고 살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먹는 것에 대해 한번이라도 고민을 해보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끼다 제공1인 가구 청년 식생활 연구모임 ‘끼다’가 나누는 도시락.
끼다와 희망토는 각각 서울시·대구시와 함께 청년 식생활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끼다는 지난해 서울시 청년허브 연구사업 중 하나로 ‘청년 독립생활자 식생활 실태에 관한 조사 연구:밥, 잘 먹고 있나요?’를 진행했다. ‘부족한 시간과 제한된 여건으로 청년들의 식사가 매우 부실하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시에 청년 대상 푸드셰어링, 공유부엌, 건강키트 사업 같은 정책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희망토는 대구시 청년정책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대구 청년 밥상 설문조사를 벌이고 청년들이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받도록 유도하는 ‘건강 스탬프’ 도입을 제안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청년 ‘식사권’은 곧 청년 ‘건강권’이다. 희망토 강영수 이장은 “각종 신체검진이 이루어지는 고등학교에서 졸업한 뒤 취업해 직장 건강검진을 받기까지 20~29세 청년들이 건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요즘 청년들의 부실한 밥이 건강 사각지대 시기의 건강을 망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흙수저 밥상을 뒤집어엎어라”

학생들과 대학 그리고 활동가들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지만, 청년 식사 문제는 근본적으로 청년들의 부족한 ‘수입’을 해결하지 않고는 풀기 어렵다. ‘수입 없음→아르바이트→시간 없음→준비 실패→취업 실패→(다시) 수입 없음’으로 빙글빙글 도는 고리(왼쪽 그림) 안에서 밥은 청년들에게 굶고 때우고 견뎌야만 하는 장애물이 돼버렸다. 이 악순환 구조를 끊자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대안으로 모색하는 것이 바로 ‘청년수당’이다. 바우처 제공 등의 항목별 간접 지원이 아닌, 사용처가 비교적 자유로운 현금 지원 방식의 청년수당은 청년들의 식사권 증진에도 대안이 될 수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일본의 대학 시간강사 구리하라 야스시가 쓴 책 〈학생에게 임금을〉(서유재 펴냄)에 따르면 일본 한 대학 식당에서 판매하는 ‘후쿠시마 정식’이 대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대학생들이 방사능 걱정에 둔감해

서도, 특별히 후쿠시마 살리기 운동에 공감해서도 아니다. 그 풍성함에 비해 아주 싸기 때문에, ‘식욕이 왕성하고 가난한 학생들이 한번 먹게 되면 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생임금’ 도입을 주장하는 구리하라 야스시는 이렇게 썼다. “확실히 할 것은, 대학이 가난한 학생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이 녀석들은 화내지 않는다고. 나는 이렇게 말해두고 싶다. 후쿠시마 정식 곱빼기를 뒤집어엎어라. 참지 않아도 된다. 학생임금을 쟁취하여 제대로 된 식사를 하자.”

‘끼다’의 모임지기 해영씨는 사회는 물론 청년들 스스로도 너무나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것도 유예한 채, 모두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며 살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현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미래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희망토 강영수 이장도 사회가 청년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곰곰 생각해보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러잖아요,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 그런데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아무거나 먹으면 안 돼요. 지금 참으면서 성공하라고만 하지 말고, 먼저 제대로 된 밥을 주고서 취업을 하라든 창업을 하라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많은 대학, 지방자치단체, 활동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청년들의 ‘식사권’을 돕는 동시에, 흙수저 밥상을 눈앞에 둔 청년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주문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흙수저 밥상을 뒤집어엎어라. 참지 않아도 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