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 커졌다. 국민경선제를 도입한 더불어민주당이 2월15일 본격적인 선거인단 모집을 시작했다. 흥행이 호조세다. 모집 열흘째인 2월24일 현재 총 85만8132명이 선거인단으로 등록했다. 약 20만명에 달하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을 제외하더라도, 일반 시민 65만여 명이 제1야당 대선 후보를 직접 선출하겠다고 나섰다. 2012년 대선 경선 당시 모집한 선거인단 108만5000여 명을 넘어서리라 예상된다. 당내에서는 목표치였던 200만명을 넘어, 250만명까지 선거인단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250만명이면 전체 유권자 수(2016년 총선 기준 약 4200만명)의 약 6%에 달한다.

‘본선 같은 경선’이 현실로 다가오자 당내 빅3 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의 캠프가 분주해졌다. 각 캠프의 기본 전략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선거인단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후보가 직접 등장하는 선거인단 등록 안내 영상을 제작하고, 자원봉사단이나 외곽 조직을 통해 선거인단 등록을 독려하고 있다. 각 캠프도 ‘나를 지지해달라’는 표현 대신 ‘국민경선 선거인단에 참여해달라’는 메시지를 앞세운다.
 

ⓒ연합뉴스문재인 전 대표 캠프는 준비된 후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국민경선제의 승리 함수는 비교적 단순하다. 최대한 많은 지지자가 적극적으로 선거인단에 등록해 투표하면 된다. 문제는 ‘최대한 많은’이라는 기준이다. 2012년 대선 경선 당시 선거인단(모바일·투표소·재외국민 온라인 투표)의 투표율은 대략 56%였다. 이 투표율을 250만명에 대입해보면 약 140만명의 표심이 제1야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하게 된다. 과반 1위를 확보하려면 약 70만명이 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데, 정당의 단일 후보가 조직력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숫자다. 더욱이 이번 경선의 실제 투표율은 2012년보다 높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박근혜 게이트의 영향으로 적극 투표층이 늘었다. 일각에서는 투표율 70%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 대표 선출처럼 당원을 중심으로 당내 선거를 치를 때에는 조직표가 판세를 좌우한다. 그러나 이번 경선처럼 권리당원의 한 표가 일반 국민선거인단과 별 차이가 없을 경우 조직 동원의 효과는 무색해진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보통 의원 한 명이 가동할 수 있는 조직 규모를 2000명 정도로 계산한다. 당내 의원 100명이 한 후보에게 최대한 조직을 몰아준다고 가정해도 20만명에 불과하다. 아무리 조직을 끌어모아도 결국 ‘250만’이라는 숫자에 희석되고 만다”라고 말했다.

 

 

 

ⓒ안희정 캠프 제공안희정 충남지사 캠프는 다양한 성향을 가진 선거인단이 참여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위는 안희정 캠프의 선거인단 모집 홍보 영상.

 


같은 이유로 최근 논란이 된 조직적인 ‘역선택’ 역시 현실화하기 쉽지 않다. 박사모 등 보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역선택 제안이 올라온 것은 사실이나, 250만이라는 모집단에서는 일부 역선택이 전체 판세에 큰 영향을 끼치긴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도 “우리에게 불리한 역선택이 실제로 일어나더라도, 무의미한 숫자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안희정 캠프의 한 관계자도 “보수 세력이 많이 와해된 상황이라, 조직적인 역선택을 주도할 만한 단체가 별로 없다. 오히려 역선택 소식을 듣고 놀란 야권 지지층이 선거인단에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결국 경선을 대비하는 각 캠프의 전략은 본선과 비슷해진다. ‘공중전’이 중요해진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특히 공중전에 적극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에 비해 인지도와 지지율, 당내 조직세가 상대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주간 지지율이 올랐던 안희정 지사 캠프의 한 관계자는 “최종 선거인단이 200만을 넘길 경우 우리 쪽이 바람을 탈 수 있다.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온 직후 2차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얼마나 주목을 끄는지에 따라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1차 선거인단 모집은 헌재 결정 사흘 전까지다. 탄핵소추안이 헌재에서 인용될 경우 민주당은 곧바로 5일에서 10일가량 2차 선거인단을 모집한다. 이때 다양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 선거인단에 참여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게 안 지사 캠프의 구상이다.

젊은 세대와 호남 지지 센 문재인 후보가 유리

이재명 시장 역시 공중전을 벌일 무대를 확보하기 위해 정면 돌파에 나섰다. 당에 경선 주자 간 합동토론회를 확대해달라고 요구하며 ‘경선룰 협상 보이콧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2월24일 이 시장 캠프를 이끄는 정성호 선거대책본부장은 “예비후보 간 방송 토론회가 당초 헌재의 탄핵 인용 전 3회에서 1회로 축소됐다”라며 헌재 결정 이전에 후보 간 토론회를 2회 이상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 시장에게 방송 토론은 열세를 만회할 기회다. 달변가인 그가 방송 토론을 하면 ‘샤이 지지층’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 측의 이날 선언은 위기감이 드러난 장면이기도 하다. 그동안 ‘손가락 혁명군’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열성 지지층의 조직력을 중요시했지만, 미디어를 통한 인지도 확대와 지지율 반등의 계기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연합뉴스이재명 성남시장(가운데)은 경선 주자 간 합동토론회를 확대해달라고 요구하며 ‘경선룰 협상 보이콧 카드’를 꺼내들었다.

 


다른 두 후보에 비해 당내 조직력, 전국 인지도, 전체 지지율에서 앞서는 문재인 전 대표는 ‘준비된 후보’임을 강조한다.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는 “탄핵 국면에서는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준비된 후보를 인식시키는 게 곧 본선까지 이어지는 경쟁력이다”라며 선거인단 모집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문 전 대표는 박원순 사람으로 꼽히는 예종석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을 홍보본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2월2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자료(전국 1006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는 32%, 안희정 지사는 21%, 이재명 시장은 8%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이른바 ‘선의’ 발언으로 주춤하긴 했으나, 문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를 2주째 11%포인트로 유지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도 같은 조사기관의 전주 5%에서 8%로 상승해 추격 동력을 남겨두었다. 전체 지표만 보았을 때에는 아직 판세 변동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런데 국민경선의 특성과 여론조사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다소 다른 예측도 가능하다. ARS, 인터넷 등으로 선거인단에 참여하는 국민경선은 전체 유권자 대비 지역과 세대가 과잉 대표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야권에 호의적인 호남과 수도권 등에서 참여율이 높기 때문이다. 갤럽 조사에서 20·30·40대 지지율만 놓고 보면,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은 20대(19~29세)에서 41%, 30대에서 52%, 40대에서 39%로 각각 1위다.

반면 안희정 지사는 20대에서 12%, 30대에서 20%, 40대에서 22% 지지율을 기록했다. 경선에 적극 참여하는 연령대에서는 문 전 대표와 격차가 벌어진다. 호남에서도 문 전 대표는 43%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안 지사는 18%, 이재명 시장은 7%에 머물러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는 문 전 대표 60%, 안 지사 20%, 이 시장 11% 지지율로 여전히 문 전 대표가 강세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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