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경선제도 변천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 정창교 관악구청 정책실장이다. 그는 당직자 시절(2002년 새천년민주당 정세분석국장,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에 국민참여경선·모바일 투표 도입 등의 아이디어를 냈다. 실무자로서 제도 도입 과정과 논란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공직 후보를 선출하는 데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의 공천권을 개방하자는 아이디어가 민주당에서 처음 나온 것은 2001년 말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집권당이었지만 그야말로 ‘선거 위기’ 국면이었다. 2001년 10월25일 재·보궐 선거 세 군데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대세론’이 퍼졌고, 김대중 대통령의 권력 누수 현상은 가속화했다. 민주당 내에서 ‘쇄신’ 요구가 터져나왔고, ‘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위원장 조세형·이하 특대위)’가 꾸려졌다. 특대위는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대의원들로만 대선 후보를 뽑을 경우, 무난히 패배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강했다. 당시 민주당의 대의원 구성은 호남·중장년·남성에 치우쳐 있었다. 타개책으로 제안된 제도가 국민참여경선제였다.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큰 갈등 없이 합의에 이르렀다. “워낙 당이 어려워 이대로 가면 정권을 빼앗긴다는 위기감이 강했다. 지지율이 높고 당내 다수파였던 이인제 후보 측도 대세론을 믿고 불리할 게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제도 도입에 반대하지 않았다(정창교 실장).”
 

ⓒ시사IN 자료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오른쪽)가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었다.


2002년 민주당의 16대 대선 후보 경선은 대의원(20%), 당원(30%), 일반 국민(50%)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했다. 당시 국민 선거인단은 공모 신청을 받고 추첨하는 방식이었다.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의 변화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3만5000명을 추첨으로 뽑는 국민 선거인단 모집에 190만여 명이 신청했다. 이렇게 도입된 국민참여경선은 ‘노무현 바람’으로 이어졌다. 국민참여경선은 그해 정치권의 ‘히트 상품’으로 꼽혔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초로 모바일 투표가 도입되었다. 세계 어느 정당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모바일 투표는 선거인단 등록 뒤 선거 기간에 전화가 오면 투표를 하는 자동응답전화(ARS) 방식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지역 경선 선거인단·모바일 선거인단(90%)과 일반 국민 5000명 대상 여론조사(10%)로 경선을 치렀다. 2002년 경선과는 달리 선거인단 신청을 하면 추첨 과정 없이 모두가 투표를 할 수 있었다. ‘동원의 최대화’를 위해서였다. 이 경선에서는 모바일 선거인단을 따로 모집했다. 23만여 명이 신청하고, 17만여 명이 투표했다(투표율 74.3%). 투표소 투표율이 16.19%에 머물렀던 점과 비교하면 모바일 투표의 편리성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당시 ‘모바일 투표’ 아이디어를 낸 정창교 실장은 “영국의 노동당, 보수당도 당내 선거에서 ‘우편 투표’를 활용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 직접·비밀투표에 어긋날 수 있다는 논란이 있지만 편리성을 우선한 것이다. 편리성 측면에서 한국은 모바일 투표가 적합하다고 보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모바일 투표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모바일 투표는 직접·비밀선거의 침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갖고 있다. 대리투표 등의 위험성도 있다. 정당으로부터 선거관리 사무를 의뢰받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모바일 투표가 선거의 4대 원칙에 부합한지 여부가 결론 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 위탁을 할 수 없다’고 회신한 바 있다. 기술적 오류 가능성 또한 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모바일 투표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참여의 편리성’을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각 캠프는 모바일 투표가 아닌, 다른 지점에서 세게 붙었다. 경선에서 일반 선거인단, 모바일 선거인단, 여론조사를 활용하기로 했는데, 여론조사 비중이 최대 논란거리였다. 손학규 후보 측은 여론조사 비중을 높이기 원했고, 당내 지지 기반이 강했던 정동영 후보 측은 반대했다. 옥신각신 끝에 여론조사 비중을 10%로 정했다.

 

 

 

 

ⓒ연합뉴스2012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때는 대의원 득표에서 진 이해찬 후보(왼쪽)가 모바일 투표로 이겼다.

 


게다가 각 캠프의 선거인단 동원 과정에서 대리 접수, 명의 도용 등 불·탈법이 불거졌다. 선거인단 ‘박스떼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가 정동영 후보 측 지지자에 의해 도용돼 선거인단에 등록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손학규·이해찬 후보 측이 반발했고, 경선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나중에는 8개 지역 경선을 단 하루에 하는 ‘원샷 경선’이 치러지기도 했다. 대리 접수 등 지나친 조직 동원으로 얼룩진 경선이었다.

‘모바일 투표가 당내 표심을 왜곡한다’

참고로 이때 처음으로 치러진 모바일 투표에서는 손학규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앞섰다. 하지만 투표소 투표에서의 격차가 워낙 커 모바일 투표 결과에 관심을 두는 이가 많지 않았다. 또 손 후보 측은 여론조사 비중을 높일 것을 주장했는데, 막상 실제 여론조사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왼쪽 표 참조).

 

 

 

 

 


모바일 투표에 대한 논쟁은 2012년 민주통합당의 당내 투표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2012년 6월9일 전당대회는 모바일 투표에 대한 인식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 당 대표 선출에서 비주류의 김한길 후보가 대의원 투표에서는 앞섰는데 모바일 투표를 포함한 국민·권리당원 투표에서 역전당해 이해찬 후보에게 석패했다. 당심과 민심이 달리 나타난 것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쪽에서는 ‘모바일 투표가 당내 표심을 왜곡한다’는 주장이 강해졌다. 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국민중심론(모바일 투표 찬성)’과 ‘당원중심론(모바일 투표 반대)’으로 나뉘었다.

이런 대립은 2012년 대선 경선 룰을 정할 때에도 나타났다. 경선 규칙을 두고 문재인 후보 대 비문재인 후보들(손학규·김두관·정세균)이 대립했다. 문재인 후보는 모바일 투표를 앞세운 국민경선을 주장했고, 비문 후보들은 모바일 투표 축소 또는 폐지를 주장했다. 양자의 대립이 그나마 타협점을 찾은 게 바로 결선투표제 도입이었다.

당시 모바일 투표 관련 문제는 첫 순회 경선지인 제주에서 터져나왔다. 모바일 투표는 콜센터에서 선거인단에 ARS 전화를 거는 방식이다. 선거인단이 전화를 걸어 투표하는 방식에서는 공개투표·대리투표 가능성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당시 경선에서는 선거인단에 ARS 전화를 5회 걸어서 답을 안 하면 ‘기권’ 처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선거인단에게는 전화가 그만큼 걸려오지 않았다고 손학규·김두관 후보 측이 문제 삼고 나온 것이다. 또 ARS 투표에서 후보자를 선택한 뒤 음성 안내를 끝까지 듣지 않고 끊을 경우 무효 처리돼 결과적으로 기호 4번(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모바일 투표 논란이 커지고 일부 후보의 보이콧으로 합동연설회가 중단되는 등 경선이 위기에 처했다. 또한 모바일 투표 회의론도 커졌다.

 

 

 

 

ⓒ시사IN 조남진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오른쪽)는 투표소와 모바일 투표를 모두 이겼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모바일 투표와 관련해 큰 이견이 없다. 대의원들은 합동연설회 현장에서 하는 ‘순회 투표’에 참여한다. 당원·시민은 자치구·시·군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거나(투표소 투표), ARS 투표를 할 수 있다(모바일 투표). 재외 국민은 이메일로 인터넷 투표를 한다. 최다 득표자의 득표율이 50% 미만이면 1·2위를 두고 결선투표를 한다. 지난번 문제가 되었던 모바일 투표 사안은 보완되었다. 2012년 경선에서는 ARS 전화를 5회 발송하고도 못 받은 경우가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이럴 경우 스스로 ARS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아직도 투표 방식과 관련해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모바일 투표 신청자의 ‘위장전입’ 문제가 대표적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 경선 때는 선거인단의 개인정보를 신용정보회사로 보내 주소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돼 이번 경선에서는 2012년 때와 같은 검증이 불가능하다. 서울 거주 유권자가 주소지를 ‘광주광역시’로 입력해도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 개표 방식 등에 따라 위장전입 투표 결과가 시빗거리로 등장할 수 있다. 탄핵 인용과 대선 투표일 사이 기간이 60일로 짧아 단기간에 호남권, 충청권, 영남권, 수도권·강원·제주 순서로 4권역 경선을 치러야 한다. 개표 방식에 따라 호남권 경선에서 시비가 일 수 있다. 당규에 따라 전국 240여 곳에서 실시하는 투표소 투표를 첫 번째 시행하는 권역(호남권·광주)의 순회 투표 개표 때 발표하도록 돼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탄핵 인용과 대선 일자가 정해지면 개표 일정 등은 조정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모바일 투표자의 ‘위장전입’ 문제 해결 못해

2012년 민주통합당의 대선 평가에 참여했던 장우영 교수(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는 ‘모바일 투표는 경로의존적 맥락을 조성하며 민주통합당의 당직·공직 후보 선출 기제로 제도화되었다’고 분석했다(〈모바일 투표 쟁점과 평가〉에서). 한번 제도화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서 전체 유효 투표 가운데 모바일을 통한 투표 비중이 90%를 넘는다. 모바일 투표가 국민경선의 성패를 좌우했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선 경선 등에 국민을 참여시켜 ‘흥행’을 이어가려는 한 모바일 투표 제도는 유지되리라 보인다. 국민참여경선·모바일 투표 도입을 제안했던 정창교 실장은 “모바일 투표는 그 자체로 선악이 아니다. 선거 때만 사용할 게 아니라 일상적 의사 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 결국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과 정치 문화에 성패가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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