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규칙은 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다. 당원이 아니라도 선거권이 있는 만 19세 이상인 국민은 누구나 선거인단 등록이 가능하다(국가·지방공무원 제외). 당원과 투표권 차등도 두지 않았다. 모든 표가 1표로 동등하게 처리된다. 민주당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25만명 안팎인데, 민주당은 국민경선 선거인단 신청이 최대 250만명까지 갈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이러면 사실상 정당 밖 국민이 후보를 결정하게 된다.
정당의 후보를 그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들어와서 뽑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재 민주당 투톱이자 본선 레이스 투톱은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예선이 곧 본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주자가 전체 대선판을 주도한다. 그중에서도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는 문 전 대표가 크게 우세하다. 그런데 만약 보수 성향 국민이 경선에 대거 참여해서 안 지사에게 몰표를 줘 후보가 바뀌는 결과가 나온다면? 국민경선 선거인단 모집이 시작된 이후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른바 ‘역선택’이라고 부르며 논란이 일었다.
역선택은 개념부터 애매해서 논란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용어다. 좀 더 의미가 정확한 용어는 ‘진심투표’와 ‘전략투표’다. 진심투표란 결과를 따지지 않고 그저 내가 진짜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당선권 중에서 내가 상대적으로 좋아하는 후보에게 전략투표를 할 수도 있다. 2002년 대선 막판, 노무현 대 이회창 대결이 초박빙으로 치닫자 권영길 후보 지지자 일부가 노무현 지지로 이동한 것이 전형적인 전략투표 사례다.
그 정당 지지자가 아닌 시민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국민경선제는 특히 전략투표의 배양소나 다름없다. 조석주·강인선은 2015년 발표한 논문 〈Open Primaries and Crossover Voting(국민경선제와 교차투표)〉에서 국민경선 상황에서의 전략투표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현재 민주당 경선 레이스 구도에 대입해보면 이렇다.
첫째, ‘타협’이다. 가상의 민주당 지지자 A가 국민경선에 참여했다. A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가장 선호하지만, 이 시장의 본선 경쟁력이 불확실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A는 본선에서 더 확실해 보이는 문재인·안희정 중, 이 시장과 이념적으로 더 가까운 문 전 대표를 고르는 것으로 ‘타협’한다.
둘째, ‘위험 대비’다. 가상의 바른정당 지지자 B는 이번 대선에서 어떻게 해도 자기 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 같지 않다고 느낀다. B는 민주당에서 문재인·안희정 둘 중 문재인 대통령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B는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안희정 지사에게 투표해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위험에 대비’한다.
셋째, ‘습격’이다. 가상의 자유한국당 지지자 C는 민주당에서 자신의 당이 상대하기 쉬운 후보가 선출되기를 바란다. 이에 C는 민주당 국민경선에 참여해서, 본선 경쟁력이 없으면서 경선에서는 승리가 가능해 보이는 후보에게 투표한다. 이로써 C는 민주당 국민경선을 ‘습격’한다.
‘넓은 의미의 역선택’은 부작용 아닌 본질
같은 전략투표로 묶이지만 셋의 작동 원리는 다 다르다. 셋 다 역선택일까? 좁은 의미로 보면, ‘습격’만이 역선택이다. ‘상대 당 국민경선에 들어가 경쟁력이 낮은 후보에게 표를 줘서, 내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의 승리를 돕는 행위’가 역선택의 좁은 정의다. 논문 공저자인 조석주 성균관대 교수(정치경제학)는 “습격은 기본적으로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를 고르는 것이다. 문재인·안희정 두 주자의 본선 승리확률이 상당히 차이 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야 ‘습격’이 등장한다. 지금이 그런 상황은 아니다. 현 상황에서 안 지사에게 몰리는 전략투표는 ‘위험 대비’일 것이다. 안 지사를 상대적으로 선호한다는 뜻일 뿐 그가 더 만만하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선택은 엄밀히 정립된 개념어가 아니어서 넓은 의미로도 쓰인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그들이 없었다면 선출되지 않았을 다른 주자를 지지하는 것까지 역선택으로 부르는 경향도 있다. 현재 지형에서,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만으로 경선을 치르면 문재인 전 대표의 후보 선출은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안희정 지사를 상대적으로 더 선호하는 ‘위험 대비’ 전략투표도 넓은 의미로는 역선택이다. 역선택을 둘러싼 용어상의 혼란은 이 두 차원의 정의를 뒤섞어버리는 데서 온다.
민주당에서 거론되는 역선택 방지 방안으로는 ‘여야 동시 국민경선 법제화’나 ‘선관위에 위탁해 이중등록자 걸러내기’ 등이 있다. 도입될 가능성을 떠나, 둘 다 본질적으로 경선 이중등록 방지책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처럼 “민주당 예선이 곧 본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도는 특수 상황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경선을 버리고라도 민주당 경선에 들어올 유권자가 대규모로 발생할 수 있다. 이중등록 방지책으로는 이들이 걸러지지 않는다.
‘넓은 의미의 역선택’은 국민경선의 부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논리는 이렇다. 유권자가 이념적 중도를 중심으로 봉긋한 산봉우리처럼 분포해 있다면, 당내 경선과 비교해 국민경선에서는 이념적으로 중도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이끄는 압력이 존재할 것이다. 당내 경선 상황에서는 없던 표가 그쪽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체로 그 당의 본선 승리 가능성을 높여준다. 당의 노선을 표가 더 많은 곳으로 옮겨주고, 원래 그 당에 관심이 없던 유권자를 끌어들이며, 결과적으로 당내 경선과 같은 후보가 선출된다고 해도 이 과정을 통해 후보를 더 널리 홍보하고 검증하는 효과가 있다.
이 이득을 위해, 정당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에게 후보 선출권을 개방하는 거래를 했다. 이 거래가 타당한지를 두고는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정치에 관심 있는 시민들도 의견이 크게 갈린다. 부당하다는 주장은 주로 고전적인 정당정치 이론의 지지를 받는다. 국민경선제는 정당이 사회세력을 당원으로 조직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다. 정당을 ‘선거 떴다방’으로 만들어 연속성과 책임성이 옅어진다. 고전적 정당정치 이론은 이런 단점을 강조한다. 반대로 이미 현대 정당은 사회 특정 영역에 뿌리내리는 정당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 정당, ‘공중에 뜬’ 선거 캠페인 정당으로 바뀌었으며, 국민경선제는 그 논리적 귀결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국민경선제를 도입한 이상 이익은 취하면서 위험부담은 지지 않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개방된 경쟁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러 유형의 전략투표는 국민경선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현실정치의 복잡한 맥락을 전부 쳐내고, 유권자들이 오로지 ‘진보와 보수’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선택하며, 자신의 이념과 가장 가까운 후보에게 투표한다고 단순 가정해보자. 정당은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두 개만 있고, 진보당 지지자와 보수당 지지자와 전체 유권자가 각각 〈그림〉과 같이 산봉우리 모양으로 분포한다고 가정하자(위 〈그림〉 참조).
이 〈그림〉의 왼쪽에 있는 진보당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려 한다. 지지층 평균 이념보다 더 진보적인 ‘a’, 지지층 평균에 가까운 ‘b’, 지지층보다 보수적이지만 전체 유권자 평균에는 더 가까운 ‘c’가 경쟁하고 있다. 만약 당내 경선이라면 ‘b’가 이길 것이다.
복잡한 상황, 정공법이 가장 전략적인 선택
하지만 국민경선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경선이 충분히 흥행한다면, 경선에 새로 들어오는 일반 국민은 진보당 지지자보다 더 보수적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b’보다 ‘c’를 더 선호한다. 이들이 ‘c’에 투표하면 ‘위험 대비’ 전략투표다. 당내 경선일 때보다는 ‘c’가 승리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높아진다. 얼마나 높아지는지는 유입의 크기에 일차로 달려 있다.
유입이 위협적일 경우 기존 지지자들은 ‘b’ 후보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국민경선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결집으로 반응할 것이다. 또한 ‘a’ 후보 지지자들도 ‘c’의 승리를 막으려고 ‘b’에 투표하는 타협을 택할 수도 있다. 유입된 ‘위험 대비’ 투표와 기존 지지층의 결집 투표가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 물론 ‘본진’에서 싸우는 기존 지지층이 대체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쉽다.
신규 유입된 보수적 투표자들이 꼭 ‘c’를 찍으라는 법은 없다. 이 보수적 투표자들은 자신의 당 후보 ‘z’의 승리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전체 유권자 평균에 ‘z’보다도 가까운 ‘c’의 본선 경쟁력을 두려워할 수 있다. 이 경우 이들은 진보적인 ‘a’를 찍을지 모른다. 전체 유권자 평균에서 가장 먼 후보가 ‘a’다. 역선택이다.
더 역설적인 상황도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의 생각에 보수적인 ‘z’가 ‘b’는 이기지만 ‘c’에는 질 거라고 믿는다면(이념적 위치만 고려하면 그런 결론이 나온다), 국민경선에 몰려가 ‘b’를 찍는 것도 역선택이다. ‘b’가 경선 승리 확률이 높으므로 역선택 대상으로 ‘a’보다 더 매력 있다. 그런데 ‘b’는 진보 유권자가 가장 선호하는 주자다. 진보 유권자의 선호와 보수 유권자의 역선택이 동일한 후보를 지목할 수도 있다.
이 끊임없는 전략적 주고받기의 연쇄 끝에 후보가 선출된다. 이 극도로 단순한 모형에서라면 ‘b’ 아니면 ‘c’가 후보일 것이다. 물론 후보 개인 경쟁력, 지지층의 결집 강도, 보수표의 유입 정도를 논외로 하고 모형에서 이념상 위치만 보았을 때 그렇다. 현재의 민주당 상황에 대입하면 ‘b’가 문재인, ‘c’가 안희정에 해당한다.
안희정 지사는, 그게 신념이든 전략이든, 국민경선이라는 무대에서 일단 제대로 된 자리를 잡았다. 후보 선정 규칙이 당내 경선이었다면 큰 의미가 없었을 자리가 ‘c’이지만, 오른쪽에서의 투표자 유입을 가정하면 해볼 만한 자리가 된다. 모형상의 ‘c’와 안희정 지사의 중대한 차이는, 지금 현실에서는 보수 쪽의 ‘z’ 후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충분히 경쟁력 있는 ‘z’가 있었다면 보수 유권자들은 ‘c’를 찍는 ‘위험 대비’ 전략투표를 더 주저할지 모른다. 그것이 자기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낮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구도에서 보수 유권자들은 ‘위험 대비’를 좀 더 홀가분하게 택할 수 있다.
진보적인 후보인 ‘a’는 이 모형에서는 승산이 없다. 그는 이 모형을 깨부수고 나가야 가능성이 열린다. 유권자 분포곡선 전체가 진보 쪽으로 크게 출렁이는 대형 사건이 터지거나, 소외되고 보이지 않는 대규모 유권자 집단을 새로 찾아내야 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시기가 지난해 연말의 촛불집회였다. 이때 ‘a’, 즉 이재명 성남시장은 문재인 전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오차범위 안쪽으로 따라붙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상황이 진정된 후에는 지지율이 크게 빠졌다. 최근 이 시장은 유능한 행정가 이미지를 내세워 신규 지지층 발굴에 도전하고 있다. 매우 어려운 도전이지만 이 시장에게 희망을 주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는 더 가운데로 가는 전략을 쓰지 않고 새로운 지지층을 발굴해 모형을 뒤흔들었던 후보가 두 명이나 나왔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다.
이 모형은 또 다른 한계도 있다. 〈그림〉은 각 주자의 위치와 그에 따른 전략적 조합만을 모형화한 것이어서, ‘b’를 차지한 문재인 전 대표의 개인 경쟁력을 과소평가한다. 실제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가 민주당 지지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문 전 대표가 차지한 진보 쪽 산봉우리가 그림보다 현실에서 훨씬 뾰족하다는 의미다.
이 결집력이 오른쪽에서의 ‘위험 대비’ 전략투표 유입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면, 국민경선과 당내 경선의 결과는 같아진다. 특히 현재 민주당은 지지율이 44%(한국갤럽 2월 4주차)에 달하는 최전성기다. 오른쪽에서의 ‘위험 대비’ 전략투표 유입이 얼마나 될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민주당 지지층이 워낙 두꺼워진 상태라 그에 대응해 ‘b’로 결집할 여력이 충분할 수 있다. 안희정 지사가 중도·보수 유권자 동원을 노골적으로 하다가는 오히려 문재인 결집 바람이 불기 쉬운 구도다. 결국 안 지사는 ‘b’에서 문 전 대표로 모여 있는 표를 최대한 분산해 나눠 가지면서, 당 지지층 밖 중도·보수 표의 유입도 끊이지 않도록 유지해야 승리의 가능성이 열린다. 모형으로 보면, “‘c’ 자리를 지키면서 ‘b’로 접근하는” 모순된 과제를 동시에 해내야 한다.
국민경선이라는 열린 게임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은 상대의 전략적 반응을 불러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역선택이든 위험 대비이든 한 차례의 전략이 전체 구도를 순식간에 허물어뜨리는 식의 전개는 가능하지 않다. 어떤 경우에 역선택은, 심지어 기존 지지층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를 향하기도 한다. 유권자 다수가 전략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이 복잡한 게임에서 기본 구도를 뛰어넘는 전략적 묘수가 등장할 가능성은 그래서 많지 않다. 결국 지지 기반을 최대한 넓고 깊게 다지는 정공법이 가장 전략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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