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은 어떠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까?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과연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더 살펴보아야 한다. 선거공약은 주변 참모들이 만들어준 리스트에 불과할 수도 있다. 공약이 모두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 후보로서 어떠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졌으며 헌법에 기술된 인간의 핵심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지 검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검증을 회피하고 대통령이 되어 이 지경이 되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부산대 행사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특히 “미르·K스포츠재단도 사회적 대기업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 평창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 한 대담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21세기 통섭의 시대에 올바른 대화 자세라고 주장했다.

정치인은 투명한 어휘, 분명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부연설명이나 해명을 해야 하는 발언은 이미 잘못된 것이다. 안 지사 측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한 반어법적 발언이라고 했지만 이러한 설명도 틀렸다. 오히려 그는 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선의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책이 선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진심 또는 생각을 반영한 점이 분명하다.

안 지사는 이러한 자세가 21세기 통섭의 지성사에 부합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 학문의 경향이 지식 융합을 통해 창조적 사고를 이끌어내려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루트번스타인의 말처럼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라는 통합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수로 위장하고 헌법재판소 법정에서까지 태극기로 치장한 정치세력과 대화하기 위해 그들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말장난이거나 반대 세력에게도 굄을 받고자 하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의 발언이 말실수나 선거 전략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럴 수 있거나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 지사의 생각은 현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거나 착각하는 것, 아니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착오로 보인다. 이러한 정견으로는 집권을 하더라도 당면한 경제개혁, 재벌개혁, 정치개혁, 검찰개혁 등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연합뉴스

안 지사는 인간 행위를 심판하되 행위자인 인간의 생각은 심판하지 말고 선의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평범한 주장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이 드러난 것이 인간의 행위다. 결과적으로 행위를 심판하고 처벌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행위를 낳은 인간의 사고, 생각의 출발점을 확인하지 않으면 행위의 의미를 판단하기가 불가능하다.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하던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은 일베의 ‘폭식투쟁’도 그들의 의식을 살펴보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음식 섭취 행위에 불과하다. 그들의 의도는 언어도단이고 잔인했다.

정치의 요체는 조율 혹은 조정이지, 봉합이나 통합 아냐

정치적 이념은 속성상 대립 진영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정책은 이해득실이 갈리기 때문에 반대자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드물다. 여러 정당이 존재하는 것도 생각과 가치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안희정 지사는 대연정을 주장했다가 해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를 보면서 안 지사는 관념적 이론가 내지 허상을 좇는 정치 신인이 아닌지 혼란스럽다. 자기 길을 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넘나들면서 모두에게 예쁨받으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치의 요체는 상이한 정책 간의 조율 혹은 조정이지 모두를 아우르려고 하는 봉합이나 통합이 아니다. 헌법적 기본 가치를 외면하는 상대방과 마주 앉아 통합이나 협치를 말한다면 궤변이고 정치적 야합이다. 안 지사는 복지정책이나 대학 등록금 문제 등에서 개혁적 사고를 가진 정치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주장을 적잖이 했다. 문제의 핵심을 뚫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이에 더해 정치적 견해까지도 보수적인 유권자를 더 끌어들이기 위한 선거 전략을 계속한다면 많은 유권자들은 그를 책략적 정치인으로 의심하게 될 것이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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