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 문화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에서 2등은 순서로서 갖는 의미보다는 ‘1등이 아닌’ 모든 것을 가리키곤 한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을 탈 수 있었던 것도, 은메달을 따고도 죄송하다고 울먹여야 했던 올림픽 국가대표도 모두 2등의 의미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가리키는 문화적 지표였다.

1등도 못 된 이들에게는 무언가 더 기분 나쁜 오해가 하나 덧씌워지곤 했다.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이다. 유명한 1인자와 2인자의 이야기인 이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1인자인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질투하여 그의 죽음을 획책한 2인자로 그려진다(물론 실제와는 다른 픽션이다). 학교 괴담 중에는 전교 1등을 질투해서 죽이려 드는 표독스러운 2인자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학교가 서열에 의한 사회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게 한 장소이기 때문이리라. 1등이 아닌 이들은 모두 질투와 시기로 똘똘 뭉친, 독기 어리고 비열하고 표독하게 그려지거나 동시에 패배자라는 낙인을 받았다.

ⓒ이우일 그림
시대가 변하면서 2인자의 아이콘도 변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적어도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세대에서 2등의 아이콘으로 살리에리를 떠올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2등의 상징은 바로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다.

57%에 달하는 통산 승률과 폭풍처럼 몰아치는 스타일리시함을 겸비했던 인기 프로게이머였지만 양대 리그 결승전에서 늘 무릎을 꿇어야 했던 홍진호. 영원한 라이벌로 평가받던 ‘테란의 황제’ 임요환과 대결한 라이벌전에서 홍진호는 ‘삼연벙(벙커링이라는 테란 종족의 〈스타크래프트〉 전술로 세 번 연속 진 것)’이라는 희대의 참패를 당했다. 그 덕분에 완연한 2인자 이미지로 굳어버린 홍진호는 그 외에도 숱한 2와 관련된 현상들을 겪으며 당대 최고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상금을 받아도 2200만원, 기차를 타도 2호차 22번석을 받는 우연의 일치 끝에 그는 살리에리를 제치고 마침내 대중문화 속 2인자 대표 경쟁에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이마저도 2등이어야 맞는다는 반론도 있긴 하다.

99% 존재의 소중함을 증명해내다

살리에리에서 홍진호로 2등의 아이콘이 바뀐 것은 단순히 대표 인물의 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고전음악에서 e스포츠로 인물의 배경이 바뀌었고, 영화에서 게임으로 장르가 옮아왔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2등에 대한 이미지 변화다.

2등의 아이콘 홍진호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체육대회에서 자기 반이 종합 2위를 하자(이쯤 되면 2등도 과학이다) 실망하는 아이들에게 “야! 2등도 잘한 거야!”라고 소리친다. 2등의 화신이 던진 자조적인 개그 장면이지만, 1등 아니면 모두가 패배자라고 외치는 사회에서 2등의 아이콘이 외치는 이 소리는 일종의 선언이다.

과거의 살리에리와 달리 홍진호는 자신이 2등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한때 그저 극복 대상이기만 했던 2등이라는 자리는 홍진호에 이르러 굳이 벗어나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되었다. 혹독한 생존경쟁의 장이었던 e스포츠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홍진호라고 승부근성이 없었을까. 하지만 1등이 되고 싶은 것과 1등이 아닌 것이 상호 배제되는 개념은 아니다. 그는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패배자의 클리셰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영원한 2인자라는 콘셉트를 웃고 즐기며 가지고 놀아 이를 자신의 자산으로 삼아버렸다.

홍진호 시대의 2인자는 더 이상 전교 1등을 몰래 창밖으로 밀어 떨어뜨리지 않는다. 1등을 해야만 살아남는다고? 여기 내가 이렇게 2등으로 살잖아. 홍진호는 1등이 아닌 99%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승자독식 시대에 대한 저항이자 반대 논리가 되었다. 2월22일 ‘콩콩절’을 맞아 1등이 아닌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2등 그 자체로도 유의미함을 일깨워준 홍진호를 다시금 ‘두 번’ 생각해본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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