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절대 출입할 수 없는, 순도 100% 여자의 이야기만 담은 그림책이 있다. 마르잔 사트라피의 〈바느질 수다〉 속 여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여자들이 차려준 식사를 대접받고 낮잠을 자러 들어가는 남자에게 굳이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무능한 남자들의 손발을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피곤한 수고를 감수하는 대신 그들이 빨리 퇴장할 수 있게 돕는다. 그렇게 여자들만 남은 공간에는 오랜 수다가 머무른다.

여성의 권리 보장이 취약한 나라라고 알려진 이란 여성들은 다른 나라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녀성에 집착하거나 결혼에 매달리는 행동은 가부장적 관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사회든 여성의 지위를 제멋대로 결정해온 건 남자들이다. 성형수술에 대한 관심, 첫날밤에 대한 걱정 따위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녀들이 무식하거나 여권 신장에 아무 관심이 없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바느질 수다〉에 등장하는 이란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사랑받는 외모를 가지려 애쓰다가도 엉덩이를 이식한 가슴에 좋다고 입을 맞추는 남편을 조롱한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무당의 말을 듣고 엽기적인 차를 제조하는 반면, 유부남과 하는 연애야말로 잃을 것 없이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순수한 쾌락인 것처럼 말한다.

〈바느질 수다〉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보석은 아까워도 순결 따위로 우는 건 좀…”

붓질 몇 번으로 대강 그린 듯 단순하면서도 유려한 흑백 그림은, 온갖 시시콜콜하고 속된 이야기들에 형형색색 활기를 입힌다. 저자인 마르잔 사트라피는 만화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이면서 동시에 관찰자인데,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화끈한 주인공은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다.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가 됐지만 젊은 여자들보다 편견에서 자유롭다. 자신의 속물근성을 숨기지도 않는다. 가령 남편과 하룻밤을 보내고 이혼을 당한 이웃집 젊은 여자는 자신이 더 이상 순결하지 않다고 눈물까지 흘린다. 젊은 여자는 또 하객들에게 선물로 받은 보석을 남편에게 모두 빼앗겼다며 통곡한다. 참다못한 마르잔 사트라피의 이모는 야멸차게 쏘아붙인다. “보석이 아까워서 우는 건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그깟 순결 따위로 우는 건 좀…. 결혼해서 이혼까지 했으니 처녀가 아닌 건 당연한 거 아냐? 이제 아무 상관없이 네가 원하는 남자랑 자도 되잖아!”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마르잔 사트라피의 이모는 손가락으로 자기 음부를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 미터기를 단 것도 아니고!”

〈바느질 수다〉 속 여자들은 끊임없이 수다를 나누지만 정작 바느질은 하지 않는다. 바느질만 없는 게 아니라 여자들의 수다에는 위계도 없고, 질서도 없다. 대신 남편이 그 수다에 눈치도 없이 끼려고 하면 “당신은 상관 말고 낮잠이나 자요”라며 밀쳐낸다. 여자들의 수다는 저마다의 모양으로 알 수 없게 수놓아진 퀼트 이불처럼 시작도 없고 딱히 완성도 없다. 만들다 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누더기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불은 덮었을 때 비로소 포근하다고 느낄 수 있다.

기자명 송아람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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