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새벽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마주치는 풍경이 있었다. 길게 늘어선 청·장년 남성들의 줄. 봉고차가 수시로 그 앞에 섰다가 떠나는 걸로 보아 인력 대기소에서 일감을 얻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행렬 같았다. 배낭을 메고 모자를 푹 눌러쓴, 엇비슷한 행색의 이 남성들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고개를 숙인 채 착실히 줄을 따라 움직였다.

ⓒ시사IN 양한모

눈이 오지 않았는데도 땅이 허옇게 얼 정도로 추운 어느 날 새벽이었다. 그날도 택시를 타고 같은 길로 퇴근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가 그 풍경을 보더니 혀를 찼다. “으이구, 저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밥 한번 얻어먹겠다고, 쯧쯧.” 무슨 말인가 싶어 “밥이요?” 하고 물었다. “저것들 저거 공짜로 밥 얻어먹겠다고 줄 선 것들 아냐.” 택시 기사는 그 행렬이 무료급식소로 이어진 줄이라고 설명했다. 일하기 위해 줄 선 이들 아니냐고 슬쩍 얘기했으나 기사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괜한 논쟁을 이어가기 싫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기사는 운전하면서 내내 대답 없는 손님에게 떠들어댔다. “아무튼 요새 젊은 것들은 아주 문제예요, 무조건 복지 복지 하면서 얻어먹을 생각만 하잖아.”

청년들의 ‘흙밥’을 취재하며 그 택시 기사가 떠올랐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청년들을 사회에서 도와주자는 이야기에 그는 “하여튼 젊은 것들이 일할 생각은 안 하고…”라며 또 핏대를 올릴 것이다. 그만 그런 게 아니다. 실제 흙밥 먹는 청년들은 어른들에게 숱하게 들었단다. “밥 한 끼 굶는다고 죽냐?” 그리고 더 슬픈 것은, 이 말을 청년들 스스로 내면화했다는 것이다. ‘나는 취직하지 못했으니 밥을 걸러도 돼’ ‘나는 성공하지 못했으니 맛있는 걸 마음 편히 먹을 자격이 없어’….

젊음이 더 이상 특권이 아닌 ‘착취의 명분’이 돼버린 우리 사회에서 흙수저 청년들의 밥상을 꼭 한번 조명해보고 싶었다. 성공과 미래를 위한 ‘임시 정거장’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빛나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해야 할 청춘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대들은 충분히 먹을 자격이 있다고, 그걸 빼앗은 사회에서 다시 돌려받을 방법을 궁리해보자고.

상상 속에서 나는 그 택시 기사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그래요. 저 행렬이 무료급식 줄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라 해도 밥은 먹어야 일을 할 거 아닙니까?”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