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유유 펴냄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다. 공부하라는 꼰대의 잔소리를, 그것도 ‘엑기스’만 담은 책이다. 초판이 세상에 등장한 시점은 1920년, 잔소리하는 어르신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부하신 신학자다. (여러 의미로) 환상적인 조합이다. 심지어 아내는 남편이 여가 시간에 지적인 시간을 갖도록 조력해야 한다는 정신 나간 주장이 담겨 있다. ‘노오력’하라는 무책임한 조언이 맥 빠진 흰소리로 치부되는 시대에 참으로 부적합한 교양서다. 어투와 문체마저, 선언적이며 명령조로 가득하다.

‘멘탈’이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따분할 수 있다. 자기 관리에 능숙하고,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조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전하는 조언은 크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마음에 균열이 있다면, 일상이 건조해 갈라지기 시작한 땅이라면 이 ‘정신 나간 글’은 꽤 빠르게 스며든다. 192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저자가 공부하는 분야(신학), 서구와 한국의 간극만 감안한다면 무척 멋진 책이다. 노력을 신파와 신화로 위장하는 사회가 문제지, 수양하는 삶이 죄가 될 필요는 없잖나. 점수(漸修:일정한 단계를 거쳐 수행하고 득도함)에 확신을 가진 한 어르신이 외친다. “이 길 맞아. 그러니까 기왕 지성인으로 살 거면 제대로 해 이것들아.”

목차만 살펴보면 ‘공부하는 삶을 위한 깨알 꿀팁’ 같지만, 오히려 공부라는 도구로 풀어내는 윤리적 지침처럼 읽힌다. 복닥거리는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지성을 업으로 삼든 그렇지 않든, 분명 중요한 일이다. 온갖 고담준론이 넘치지만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당연한 말’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가 개운해진다. 요즘처럼 세상이 시끄럽고 불확실할수록 휴가 보따리에 한 권 챙겨주고 싶은 책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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