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초, 배우 김명민의 팬덤은 일대 소란을 겪었다. 차기작을 고르던 김명민이 검토하고 있다는 신작의 시놉시스가 어딘가 탐탁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개발의 광풍이 전국을 휩쓸던 1970~1990년대 건설 현장을 배경으로 맨주먹으로 일어선 한 남자의 성공담”이라는 시놉시스 한 줄 요약은 어딘가 불온해 보였다. 건설회사 사장이었던 이명박을 일약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만들고 정계까지 입문하게 만든 KBS 〈야망의 세월〉 (1990)과 지나치게 닮아 보인 게 문제였다. 하필이면 YTN, 연합뉴스, KBS, MBC가 각각 친MB 성향의 낙하산 사장이나 이사장을 맞이하며 언론과 방송사의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던 시절이었다. 드라마의 방영 예정 시기 또한 때마침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가뜩이나 KBS 〈수상한 삼형제〉(2009)가 시위대를 비난하고 진압 경찰을 옹호하는 내용을 반복해서 방영해 방송가의 노골적인 정부 편들기 움직임마저 의심되던 마당에, 정직하게 일해서 성공한 건설회사 사장의 일대기가 만들어진다고 하니 사람들이 움찔한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SBS 화면 갈무리SBS 〈자이언트〉는 한국의 폭력적인 개발사를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드라마였다.
김명민의 팬들은 정권을 찬양하고 개발독재를 긍정하는 드라마에 김명민이 출연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모았다. 한 인터넷 포털에서는 김명민의 출연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다. 디시인사이드 김명민 갤러리에서는 이런 작품에 김명민을 캐스팅하려 든 몰지각한 제작진을 성토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줄을 이었다. “돈과 권력의 부정한 거래가 빈번히 오가고 그 결과 부실 공사가 횡행하는 업계의 부조리 속에서, 불의에 맞서 싸우며 양심과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내면서도 성공하는 주인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우리 모두가 안타깝게 기다리는 이상적인 기업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담당 PD의 간곡한 해명에도 여론은 바뀌지 않았고, 김명민은 다른 작품 촬영 일정과 겹친다며 주연 자리를 고사했다. 담당 PD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문제의 드라마는 개발독재 시기의 논리를 온몸으로 체화한 채 늘 권력의 편에 서서 이권을 쥐려고 했던 사악한 군 출신 자본가 조필연(정보석)과, 그에게 정의로운 방법으로 복수하기 위해 한평생 이 악물고 달려온 이강모(이범수)가 주인공인 드라마, SBS 〈자이언트〉(2010)였으니 말이다.

대중의 의심은 주로 ‘대통령 고무 찬양’ 의혹에 집중되었지만, 강모의 모델이 이명박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 이후에도 여전히 〈자이언트〉를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힘과 이권의 논리 위에 국토의 폭력적인 개발이 이루어진 그 시절에도 반칙을 하지 않고 정직한 방식으로 성공한 건설기업인이 있었을 거라는 가정 자체가 한국의 기업사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법했다. IMF 관리 체제와 그 이후 점점 심해진 소득 양극화에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사람들은 ‘국민 성공시대’를 약속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오래지 않아 그게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산업재해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노동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 〈카트〉, 철거민의 억울함을 그린 영화 〈소수의견〉(맨 위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의 검역 기준을 대폭 완화하며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는 것”이라 말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고통 분담은 함께했는데 과실은 회생에 성공한 기업이 독식하고 노동자 대중에겐 불안정한 일자리만 돌아갔던 ‘IMF 극복’의 서사를 떠올렸다. 위험 분담은 ‘값싼’ 고기를 먹어야 하는 ‘일반 시민들’이 하고, 그로 인한 수출시장 개방의 과실은 기업들에게 돌아가는 기업 중심의 언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게 자신이 경험한 샐러리맨의 신화를 가능케 해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정작 당선 직후 국민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대하는 그것에 가까웠다. 반(反)기업 정서는 갈수록 높아만 갔다.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 모델로 한 조필연

한국의 폭력적인 개발사를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과정을 근사하게 해낸 〈자이언트〉였지만, 그조차 실존 인물만으로는 해낼 수 없었다. 유인식 PD가 “아직까지도 우리 모두가 안타깝게 기다리는 이상적인 기업가의 모습”이라고 말한 바 있듯,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을 모델로 삼은 조필연과 달리 이강모는 그 모델이 없었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경실련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관행이니 이권이니 다 마다하고 양심적으로 성공한 기업가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분이 한참 생각하더니 ‘못 찾을걸요’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강모는 모델이 없다. 그냥 (중략)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싶다(유인식 감독 ‘강모가 이룬 것이 정말 승리일까’, 〈텐아시아〉 2010년 12월9일 기사).”

〈자이언트〉가 그려 보인 서사에 함께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던 이들은, 동시에 한국 사회 어딘가에 강모 같은 선량한 자본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대신 다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자본가들, 우리 사회 크고 작은 조필연들을 향해.

조필연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 중 백혈병을 얻어 사망한 황유미씨와 그 유가족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은 〈또 하나의 약속〉(2014)에도 있었고, 일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정당한 대가와 존엄을 되찾기 위해 까르푸와 이랜드리테일과 맞서 싸운 노조의 이야기를 다룬 〈카트〉(2014)와 JTBC 드라마 〈송곳〉(2015)에도, 재개발 이익을 노리는 토건 마피아들의 수익 사업에 국가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동참했다가 사망 사고를 불러일으킨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소수의견〉(2015)에도 있었다. 조필연이 그랬듯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정치권력과의 결탁이나 공권력의 동원, 언론 플레이로 묻어버리는 이들. 이들은 심지어 영화가 개봉할 때 자사 직원의 입을 빌려 영화에 대한 악평을 남기기도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한 뒤 삼성전자는 자사 블로그에 홍보팀 부장의 명의로 글을 올렸다. “예술의 포장을 덧씌워 일방적으로 상대를 매도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외압설까지 유포하며 관객을 동원하고 80년대에나 있었던 단체관람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영화가 아닌 투쟁 수단으로 변질된 것 아닌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물론 댓글 난에는 기업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이들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정직한 자본가가 한 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간절히 찾았던 〈자이언트〉의 절박한 희망이 배신당하는 순간, 우리는 삼성이라는, 까르푸라는, 이랜드리테일이라는, 삼성물산, 대림건설, 포스코건설이라는 이름의 조필연들이 우리 삶을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부끄러워하고 청춘들의 자아실현을 독려하는 공간으로 묘사된 지 20년 만에, 한국의 시민들은 자본과 기업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기자명 이승한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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