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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영장 논란과 현직 판사의 제안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여전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논란을 계기로 한 현직 판사가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신뢰 회복을 위해 사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차성안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2월 16일 목요일 제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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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1월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등 관련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1월26일 재판을 마치고 보니 카카오톡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내가 페이스북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인용해 언론이 보도를 했다. 일부 기사는 ‘이재용 영장 기각 비판’ 등의 낚시질에 가까운 선정적 제목을 달았다. 지인들이 걱정스레 알려주었다. 내가 올린 글에는 이재용 영장 기각의 찬반을 논한 내용이 전혀 없다. 기자 이름을 확인해 부랴부랴 연락을 취했다. 자신이 쓴 기사 제목과 달리 인터넷판 제목이 잘못 나갔다면서 바로 수정을 하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이재용 영장 기각에 관한 의견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 영역이다. 다만 개별 판사에 대한 신변 위협과 유언비어 유포는 그 한계를 벗어난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 영역 YES. 신변 위협과 유언비어 유포는 NO.” 내가 원래 글에 쓴 표현이다. 다만 나는 글에 “구체적 사건에 관한 의견 제시는 적절치 않아 자제”한다고 명시했는데, 왜 그랬을까. 선정적 인터넷판 기사 제목을 새로 단 누군가가 클릭 수를 올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탓도 크다. 글을 너무 어렵게 썼다. 평소 법관으로서 사법제도 개선에 관해 시민과 소통을 지나치게 소홀히 한 탓도 크다. 이 글을 통해 만회해보고 싶다.

이재용 영장 기각을 둘러싼 논란은 뿌리 깊은 사법부 불신의 반영이다. 사법부의 불신은 숙명인가? ‘재판엔 항상 지는 쪽이 있다. 진 쪽은 법원을 원망하니 사법부 불신은 피할 수 없다.’ 이런 패배론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민 절반 이상이 사법부를 신뢰하는 여러 사법 선진국은 뭐란 말인가. 절반은커녕 절반의 절반의 신뢰도 얻을까 말까 한 한국 사법부는 뭐가 문제일까? 뿌리는 암울한 역사로 인해 권력과 금력에 맞서 소수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선배 법관들의 업보다. 이런 업보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자성은 부족했고, 재판제도를 선진화하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약했다. 법원의 사법 시스템을 하나하나 바꿔가면서 ‘우리 사법부가 이렇게 바뀌었으니 신뢰해달라’고 해도 신뢰를 얻기 힘든데, 너무 뻣뻣했다. 불신의 눈초리에 대해 ‘억울하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항변하는 데만 익숙했다. 항변에는 능하고, 자성과 개선에는 인색했다.

ⓒ연합뉴스
1월2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법원장의 사무 분담 독점구조 깨뜨려야


이재용 영장 기각 논란을 계기로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바꾸어야 할 시스템은 무엇일까. 첫째, 영장·뇌물·선거 전담재판부 재판장 등을 정하는 사무 분담을 법원장이 독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예를 들어 정치인·재벌의 뇌물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재판부나 부패전담(뇌물, 정치자금)재판부 등 몇 개 형사재판부로 몰린다. 이 재판장을 누가 맡을지 서울중앙지방법원장 혼자서 정한다. 법원장이 성향 등을 가려 그에 맞는 사람을 영장전담이나 형사합의 등 요직에 꽂는다는 의혹이 생기는 이유다. 대법원장이 법원 전체에 적용되는 전문재판부 관련 규정 등을 정하는, 사실상 권한과 모든 법원장을 임명할 권한을 가지다 보니 의혹은 대법원장에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법원 내에서 이런 의혹은 적은 편이다. 기수별로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은 판사, 속된 표현으로는 기수별 ‘에이스’로 잘나가는 이들 대부분이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전담재판부나 형사합의재판부를 채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 밖에서의 의혹은 적지 않아 보인다. 사무 분담 등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법원의 사무 분담과 배당 기준 등을 법원장 혼자가 아니라, 선거로 뽑은 8~14명 정도의 판사로 구성된 판사회의 운영위원회에서 정하도록 하자. 한국이 주로 참조한 대륙법계 관료법관 시스템을 가진 독일 법원의 사무분담위원회를 모델로 했다. 독일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판사에 대한 근무 평정·사무 분담 등 인사권을 가진 법원장들을 모두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구조도 바꿔보자. 그런 시스템이 일선 판사가 민감한 사건 판결을 할 때 대법원장·법원장의 눈치를 볼 수도 있다는 의혹을 낳는 면이 있다. 객관적 기준에 따라 일정 기수 이상 판사가 번갈아가며 법원장을 담당하는 순번제나 법관이 선거로 법원장을 뽑는 선거제도도 고민해보자. 주민선거제 등도 논의될 수 있는데, 미국 일부 주의 판사 선거처럼, 지역 유지가 법원장 선거 결과를 왜곡할 우려가 크다. 이 부분은 지역에서 특히 기승을 부리는 금권선거의 획기적 개선과 함께 장기 과제로 고려하자. 우선은 일선 법관 전체가 참여하는 선거로 작동 중인 독일식 법원 내 민주주의 장치를 참고하자.

ⓒ연합뉴스
1월2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둘째,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제도가 문제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 형사합의재판부, 기타 중요 재판부를 맡은 이력이 있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부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다. 차관 대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려고 민감한 사건에서 눈치를 볼 수도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 대법원이 제시한 해결책이 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제시된 지방법원·고등법원 이원화다.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을 이원화해, 지방법원·고등법원 판사로 경로를 나누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고등법원 판사가 순차로 맡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당시 일선 판사 77.7%의 지지를 받았다. 이 외에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에 탈락한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전관 변호사로 개업해 전관예우 논란을 부르는 것도 차단해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자는 계획이었다.

2011년부터 5~6년 동안 잘 시행해왔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는 지방법원 부장판사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는 폐지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1~2년 전부터 대법원·법원 행정처가 이원화 제도의 사실상 폐기 수순을 의견 수렴도 없이 진행한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선 법관의 비판에도 이런 기조는 강화됐다. 지난 2월 정기 인사는 절정에 달한 듯했다. 고등법원 판사에게 보장했던 같은 법원 근무 등을 철회해 지방법원으로 내려보낸다고 한다. 지난 2월 법원장에서 복귀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원로법관으로 지명해 1심 지방법원으로 빼내는 원로법관제도를 마련했다. 이는 경륜 있는 법관을 통한 1심 강화라는 홍보성 기사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원로법관제도 도입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자리가 5개가량 확보되었다. 지방법원 부장의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도의 폐지는 이제 다음 대법원장의 의중에 달렸다는 평가도 있다. 이원화처럼 사법부 신뢰에 핵심이 되는 제도는, 교체되는 대법원장 의중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도록 법원조직법 등 법률에 명문화해야 한다.

셋째, 법원 홍보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참여재판도 큰 문제다. 최순실 사건 등 중요 사건을 다루는 일정 범위의 형사재판에 국민참여재판을 의무화하자.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 결과에 강제력을 부과해 판사도 따르게 하자. 지금은 피고인이 신청해야만 국민참여재판을 하는데 신청이 미미해 사건 수가 매우 적다. 유죄 평결 때 중형이 예상되는 뇌물 등 중요 사건일수록, 피고인이 ‘바보’가 아닌 한 신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판사가 배심원 평결에 반드시 따를 필요도 없다. 국민참여재판을 형사단독재판까지 전면 확대하는 것이 무리라면, 형사단독재판에는 법관 1명과 시민 참심원 2명이 동등한 1표를 갖는 독일식 참심제도 검토해보자. 최순실 사건 등 중요 사건을 국민참여재판 등으로 처리하면, 판사가 정치·재벌 권력 눈치를 본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워진다.

마지막으로 ‘전화 변론’ 문제다. 정치권·재벌과 담당 재판부 사이의 부당한 압력이나 사전 교감·전관예우 등에 대한 의혹의 가장 큰 원인이다. ‘전관 변호사·친인척·지인·동료 판사·직원이든 이런 전화 변론 시도는 드물기도 하거니와, 있더라도 거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기록 잘 봐달라, 원칙대로 해달라, 억울함이 없게 해달라”는 전화 변론 시도에, 결론에는 영향이 없다는 생각과 자기에 대한 ‘평판’ 악화의 염려 때문에 야박하게 바로 “부적절한 방식이니 끊겠습니다”라고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법원 문화를 반성한다.

부정청탁금지법(이른바 김영란법)으로 전화 변론 시도 자체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형사소송 규칙 등에도 전화 변론을 규제하는 규정이 추상적이나마 생겼다. 판사가 바로 부적절함을 알리고 전화를 끊어도 평판 악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최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제11호 권고의견에서 전화 변론 등 일방 소송 당사자와의 의사소통 내지 재판기일이 아닌 법정 밖의 변론에 관한 구체적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의 입법례를 주로 참조한 것인데, 소송의 실체적 내용이 아닌 소송 절차에 관한 긴급 사항에 한해 매우 좁게 예외를 인정했다. 예외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일방 당사자와의 의사소통 사실과 내용을 또 다른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법원 내부는 나아지고 있지만 의혹이 지속된다면, 법관윤리 규정과 형사소송 규칙에 금지되는 전화 변론 등의 범위·대응 절차를 명문화하자. 부정청탁금지법의 ‘부정청탁’ 개념도 사법부의 전화 변론에 특화된 법률 조항을 신설해 명문화하자. 법관윤리 규정, 형사소송 규칙, 부정청탁금지법의 규정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윤리위 권고는 권고일 뿐이라 판사에 따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혹조차도 없애보자.

사법부의 지방분권화 필요


이 외에도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사법 선진국의 2~3배인 과도한 판사 1인당 사건 부담으로 일어나는 5분 재판의 현실을 극복하고, 충분히 경청하고 토론하는 15분·30분 재판을 만들고 싶다(<시사IN> 제421호 ‘5분 재판에 대한 근본적 반성은 없고…’ 기사 참조). 그래서 판사의 사회적 지위 하락에 대한 일부 법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관 대폭(2~3배) 증원을 주장했다. 빈곤층·서민이 주로 겪는 소액재판은 더 사건이 폭주한다. 평균 5분도 들어주지 못하는 현실도 개선 가능하다.

월 10만원 혹은 몇십만원인 생계급여나 국민연금 급여 등을 부당하게 박탈당할 경우, 소송 비용 부담 없이 법원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독일의 사회법원도 내 관심사다. 법원 소송 절차상 시각·청각·지체·발달 장애인 등에 대한 사법 지원 절차 개선도 중요하다. 전관예우 문제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한 평생법관제 정착에 대한 고민도 있다. 나는 법관 재임용제도, 대법관 임기제를 없애 모든 법관의 평생법관 정년제를 도입하는 ‘유인책’에도 관심이 많다.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사법부의 지방분권화도 고민해야 한다. 지역별 법관 선발, 근무지 고정 및 사무 분담 장기화를 통한 전문성 확보도 일선 판사들과 함께 모색 중이다.

법관과 시민이 소통해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찾아보자.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 공정성의 외관을 유지해야 하는 법관으로서, 이것이 내가 이재용 영장 기각 논란에 대해 던지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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