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느꼈다. 우파는 불만이 가득했다. 삽시간에 모든 게 무너지고 있다고 느끼는 듯했다. 자수성가한 TK 출신 강남 주민은 언론을 탓했다. 진보 언론만이 아니었다. 조선·중앙·동아와 종편이 ‘거대한 좌회전’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에게서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아주 오랜만에 평온한 명절이었다.

ⓒ시사IN 양한모

설이 지나고 어느 모임에 나갔다. 넓게 보면 진보 성향 모임인데, 개별적으로 다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달랐다. 한 가지 공통점은 언론에 대한 불만이었다. 대세론 지지자는 언론이 과도하게 경쟁 후보를 조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추격자 쪽은 그 반대였다. 흥미로운 건 이들 모두 각 언론과 특정 정치인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으리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는 진보 성향 언론도 포함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지향 아래 ‘언론의 중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중립이 뭘까. 100만명이 모인 집회는 100줄로 보도하고, 10만명이 모인 집회는 10줄로 보도하면 중립일까. 대선 후보들 불러다 1분씩 똑같이 발언 기회를 주는 게 중립일까.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뉴욕 타임스〉가 오바마 후보의 기고문만 싣고 경쟁자인 매케인 후보의 글은 휴지통에 내팽개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 언론이 이런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정치세력 간의 관계, 언론 내부의 권력관계까지 뜯어보며 언론을 품평한다. ‘제4의 권부’라던 언론이 대중에 의해 이렇게 감시당한 적은 없다. 가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다 보면 언론이 우리 사회에서 ‘불만의 용광로’ 구실을 한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일이다.

다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문제다. 같은 매체라도 자신이 지지하는 대상이 좋게 나오면 열광하고, 그 반대면 ‘기레기’라 비판한다. 거기에 어떤 흑막이 있으리라고 넘겨짚는 일도 예사다. 그리고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언론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위축된다. 그 결과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을 기사’만을 내보내려는 경향이 짙어진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개별 주체들의 압박이, 언론을 회색빛 중립지대로 몰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건 과연 좋은 일일까.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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