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뒤 쏟아진 수많은 뉴스를 보면서 영화감독 니시카와 미와는 생각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 중에 그날 아침 크게 싸우고 집을 나선 이도 있지 않을까? 가족과 꼬인 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갑자기 이별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방송에 나오는 애틋한 미담보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씁쓸한 사연이 어쩌면 더 많지 않을까?

그리하여 “해묵은 앙금을 털어내지 못한 채 이별로 끝나고 만 불행”의 후일담을 상상하기 시작한 감독. ‘아내 장례 치르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자신이 스스로 당혹스러운 남편’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겉으로 의연한 척해보지만 속으로는 하나도 의연하지 않은 남자.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면서 정작 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에 홀로 남은 남자. 그가 아내 없이 보낸 첫 사계절을 소설 〈아주 긴 변명〉으로 먼저 썼다. 그리고 이내 같은 제목의 영화로 직접 만들었다.


남자 이름은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 성공한 소설가이자 방송인이다. 아내가 단짝친구 유키와 떠난 여행길에 함께 사고를 당한 뒤 동승자의 유족끼리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유키의 남편 요이치(다케하라 피스톨)가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다. 아직 어린 두 아이를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 보인다. 사치오가 호의를 베푼다. 요이치가 일 나간 사이 아이들을 봐주기로 한다.

물론 순수한 호의는 아니다. ‘아내를 떠나보낸 소설가 이야기’로 책을 써보라는 출판사의 제의가 있었다. ‘아내 몰래 바람피우던 소설가가 아내가 죽는 순간에도 다른 여자와 잔 이야기’를 쓸 수는 없으므로 사치오에겐 요이치네 가족이 필요했다. ‘아이를 키운 적 없는 남자가 죽은 아내 친구의 아이들을 돌보는 이야기’라면 좀 팔리는 책이 될 터였다.

의도는 불순했으나 시간은 정직했으니, 자기밖에 모르던 남자가 자기 아닌 사람들과 어울린 그 시간이 사치오의 삶에 정직한 흔적을 남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본 그 시간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충분히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비로소 돌아보게 된다. ‘어쩌다 어른’이 된 남자가 서서히 ‘제대로 어른’이 되어간다. 내내 겨울일 줄 알았던 삶에 그렇게 봄이 찾아온다.

2006년 〈유레루〉를 연출하고 2009년 〈우리 의사 선생님〉을 연출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유난히 섬세하고 특별히 성실한 이야기꾼이다. 곱씹을수록 단맛이 더해지는 맛있는 밥처럼, 어서 삼키고 싶은 이야기보다 오래 마음에 머금은 채 자꾸 곱씹고 싶은 이야기를 짓는다. “타인을 유심히 관찰하기보다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라는 감독의 고백은 곧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니시카와 미와의 영화를 볼 때면, 스크린 속 그들을 그냥 관찰하기보다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감독은 섬세하고 성실한 이야기꾼

가령 이런 순간이다. 사치오가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힘들게 비탈길을 오르는 두 번의 장면. 그때 내가 떠올린 건 정이현 작가의 자전거 이야기다. “가만히 서 있는 자전거 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중심잡기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일단 올라타. 그 다음엔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하라고. 그러다 보면 중심은 저절로 잡히게 마련이야(〈사랑의 기초(연인들)〉 중).” 비틀대는 그의 자전거 덕분에 비틀대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가만히 세워둔 삶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한 나의 ‘아주 긴 변명’이 더욱 궁색해 보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어느 때보다 ‘제대로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