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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전문가의 쌀 고르는 노하우

김진영 (식품 MD)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2월 17일 금요일 제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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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떡국이야?” 밥 대신 떡국을 차린 아침 밥상을 본 윤희의 외침이다. 윤희는 아침에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원칙이 철저하다. 새벽에 눈 뜨기 싫어서 가끔 “내일 아침엔 빵 어때?” 하며 살살 꼬이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다. “빵은 밥이 아니야. 밥하기 싫어?” 그래서 아침마다 밥을 한다. 그것도 돌솥밥으로.

등교 시간이 오전 8시30분까지라 적어도 6시30분에는 일어나야 아침밥을 차릴 수 있다. 교육청에서 오전 9시 등교를 권한 지 꽤 오래됐지만 학교장 재량으로 8시30분 등교를 고집하는 학교가 여전히 꽤 있다. 아침에는 밥을 원하는 윤희를 위해 뜨끈한 온수 매트에서 등을 떼고 일어나 쌀을 씻는다. 보통 쌀은 30분 이상 물에 불리라 하지만 나는 한 번 씻고 10분 이내로 쌀을 불린다. 먹는 쌀이 다르다 보니 불리는 시간이 짧다.

집에서 먹는 쌀은 주로 밀키퀸, 백진주, 골드퀸 3호 같은 품종이다. 이런 품종이 생소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쌀은 이른바 ‘반찹쌀계’ 쌀이다. 멥쌀과 찹쌀의 성질을 반반씩 가지고 있다. 쌀의 전분은 아밀로스와 아밀로펙틴 두 가지로 나뉘는데, 아밀로스 함량이 적을수록 입에 쩍쩍 붙는다. 아밀로스가 없는 것이 찹쌀이고, 17~20% 정도 든 것이 우리가 주로 먹는 멥쌀이다. 추청, 신동진, 고시히카리 같은 품종이 있다. 우리 집에서 쓰는 반찹쌀계 쌀은 밥 짓기가 어려워 물이 많으면 밥이 떡이 된다.

ⓒ김진영 제공
나는 밥 지을 때 돌솥밥을 쓴다. 전기밥솥은 아내만 사용한다. 아내한테 돌솥밥을 강요하면 간이 가출한 남편으로 취급받는 세상이다. 우리 집 요리는 내 담당이니, 내 간은 뱃속에 잘 있다. 솥밥의 장점은 먹을 만큼만 밥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전기밥솥에 밥을 넉넉히 해두면 편할지는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밥맛이 떨어진다. 우리 집에서는 돌솥과 가마솥 두 개를 번갈아 쓰다 지금은 돌솥만 사용한다. 가마솥 누룽지가 맛있기는 한데 관리하기가 힘들어 지금은 싱크대 밑에서 녹슬어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전기밥솥이냐 솥밥이냐가 아니다. 밥맛을 결정하는 것은 밥 짓는 도구가 아니라 쌀이다. 밥맛이 열 냥이면 쌀이 아홉 냥이다.

우리는 쌀을 살 때 본능적으로 가격부터 본다. 그런 다음 산지가 어디인지 본다. 얼추 선호하는 지역의 쌀과 가격이라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연다. 이렇게 쌀을 사면 수십만원 넘는 최신형 밥솥도 소용없다. 밥이 잘 되는 것과 밥맛이 좋은 것은 다르다. 밥맛까지 좋게 하는 밥솥 기술은 아직 없다.

밥맛 좋은 쌀을 고르는 비법이 있다. 먼저 포장지를 본다. 품종 표시에 ‘혼합미’라 표시되어 있으면 무조건 패스! 추청, 고시히카리, 신동진, 일품 등의 이름이 있으면 서류 전형 합격. 그다음은 도정 날짜다. 아무리 좋은 쌀도 도정 일자가 보름 이상 지나면 밥맛이 떨어진다. 구매 날짜와 가까운 쌀을 고르면 면접까지 합격이다. 포장 용량은 가능하면 10㎏ 이내를 권한다. 포장 뜯고 한 달 내내 먹으면 도정 날짜가 아무리 빨라도 소용없다. 노하우는 별것 없다. 전문가인 나도 쌀 구매할 때 품종과 도정 날짜만 본다. 지역은 보지 않는다.

밥맛이 열 냥이면 쌀이 아홉 냥

쌀을 씻고 가스레인지 불을 켠다. 처음에는 불을 약하게 한다. 처음부터 센 불로 하면 돌솥에 실금이 생기고 나중에는 끝내 갈라진다. 5분 정도 가열되면 중간 불로 조절한다. 밥물이 끓으면서 쌀알 사이로 보글보글 올라온다. 옅은 밥 향이 퍼진다. 반찬 한두 가지를 만들기 시작하는 타이밍이다. 뜸 들이는 시간까지 두 가지 정도 볶고, 끓일 수 있다. 구수한 밥 내음이 집안 전체로 퍼지면 뚜껑을 닫을 때다. 처음부터 뚜껑을 닫으면 안 된다. 밥물이 넘치면서 밥맛이 빠지거니와 넘친 밥물 때문에 가스레인지가 지저분해진다. 잠시 반찬 만드는 동안 돌솥이 뚜껑 사이로 가쁜 숨을 내쉬면 불을 끈다. 불 끄는 시간에 따라 누룽지의 두께가 달라진다. 뜸 들이는 10~15분 사이에 달걀찜 같은 간단한 반찬을 마무리한다.

윤희는 반찬투정은 해도 밥투정은 잘 안 한다. 다만 내가 전날 과음해서 아침을 못 차렸을 때나 출장 갔을 때는 예외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는 “엄마가 밥하면 질어, 그것도 무지” 하고 투덜댄다. 술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설 때마다 뒤통수에 대고 윤희가 한마디 던진다. “아빠, 아침밥 할 정도만 마셔!” 술 마시지 말라고는 안 한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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