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리아, 그림자, 극장. 연극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단어들이 있을까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본 사람들은 오필리아를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작품 안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물이지만 가장 비극적이고 억울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자 역시 신비하고 매혹적입니다. 연극과 영화와 인생이 모두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극장. 도대체 극장 안과 극장 밖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인생일까요?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은 제목부터 흥미를 확 끌어당깁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당연히 오필리아입니다. 그런데 〈햄릿〉의 주인공 오필리아가 아니라 그냥 주인공 할머니 이름이 오필리아입니다. 그녀의 부모는 오필리아가 태어났을 때 아주 유명한 배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오필리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배우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필리아는 이상하리만치 목소리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연극을 사랑한 그녀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대사를 잊지 않도록 무대 옆의 작은 상자 속에서 대사를 불러주는 일을 했습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미하엘 엔데 글·프리드리히 헤헬만 그림, 문성원 옮김, 베틀북 펴냄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미하엘 엔데 글·프리드리히 헤헬만 그림, 문성원 옮김, 베틀북 펴냄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미하엘 엔데 글·프리드리히 헤헬만 그림, 문성원 옮김, 베틀북 펴냄
세월이 흐르고 오필리아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극장 말고도 영화관이 생기고 텔레비전이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볼거리도 많아졌지요. 사람들은 연극을 보려면 대도시로 갔습니다. 결국 오필리아 할머니가 평생 일한 극장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오필리아 할머니는 텅 빈 극장에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대 위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림자는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림자는 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정말 무대에 아무도 없다면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걸까요?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의 첫 장면은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오필리아 할머니가 작은 나무 상자 속에 다소곳이 앉아 인자하고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림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작가 프리드리히 헤헬만은 오필리아 할머니의 모습을 아무런 미화 없이 너무나 대담하고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사실 많은 그림책 속에서 노인의 모습은 미화되어 표현됩니다. 많은 작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듯 늙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주름진 얼굴이 빚은 아름다움

헤헬만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나머지는 흐리게 표현했습니다. 처음에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독자에게 오랜 세월과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머금은 미소는 그 오랜 세월과 슬픔을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놓습니다. 마치 어떤 이의 늙음에 찬사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헤헬만은 빛과 그림자만으로 환상을 만들어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을 더욱 자극합니다. 표지가 처음엔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헤헬만의 그림은 독자들의 상상력만 자극할 뿐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주 놀라운 그림입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환상적인 이야기인데 신기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오필리아 할머니는 모든 그림자를 기꺼이 받아주는데 끝내 하숙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제 마음에는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그녀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행복한 삶은 1등이 되거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오필리아 할머니를 내쫓은 사람들이 아니라, 평생 작은 상자 안에서 배우들에게 대사를 불러준 오필리아 할머니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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