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 희생자 기념관을 찾았다. 1941년 12월7일 아침, 선전포고도 없이 들이닥친 일본군의 공습으로 미국은 군인 2300명을 포함해 총 34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태평양전쟁 도발 75년 만에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진주만을 방문한 아베는 ‘정상 국가’의 원수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사죄와 반성을 생략한 애도를 표명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전쟁의 상처가 우애로 바뀔 수 있고 과거의 적이 동맹이 될 수 있다”라는 말로 일본 총리를 감쌌다. 이런 의례는 정녕 낯선 것이 아니다.

우익이 창궐하는 나라마다 역사수정주의라는 추문이 뒤따르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역사수정주의를 떠벌리는 우익의 지향은 나라마다 다른데,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통째로 부정한다. 이들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조선과 타이완에 근대화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이 동아시아에서 벌인 전쟁은 서구의 식민지 지배를 물리치기 위한 ‘아시아 해방전쟁’이었다고 자찬한다.

ⓒ이지영 그림
나카노 고이치의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AK커뮤니케이션즈, 2016)는 점증하는 오늘의 일본 ‘보수화’를 ‘우경화’라고 정정하면서, 역사수정주의가 일본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구조를 캐고 있다. 지은이는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경화가 한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며, 최근에 생겨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정치적 좌표축이 오른쪽으로 옮겨지는 경향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과거 약 30년 동안의 세계적 조류라고 할 수 있다. 우경화 현상은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신우파(New Right)는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정권을 잡은 1979년,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이 된 1981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일본 총리가 된 1982년부터 냉전 시대 말기를 이끈 새로운 유형의 보수 정치가를 지칭하면서 사용되었다. 신우파가 생겨나면서 자동적으로 구우파(Old Right)라는 사후적인 명칭을 얻게 된 원래의 우파는 케인스주의(Keynesi anism:정부의 개입과 시장의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이론)를 포용하며 국민 통합이나 계급 간 타협을 중시했다. 반면 신우파는 전통적인 가치 규범이나 사회질서 복권과 같은 국가주의 행보를 취하면서, 기업과 시장 중심의 규제 완화 및 감세 정책을 펼쳤다.

“한국은 건방지고 중국은 괘씸하고 북한은 위험”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물과 기름 같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신우파 통치 엘리트와 글로벌 기업 엘리트의 이익을 상호 보완해준다. 기업과 시장의 보호자인 신우파 정부는 “글로벌화로 생활이 어려워진 일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나 노동자들”을 회유하고 “파워 엘리트와 일반 시민 사이를 점점 벌어지게 하는 계급 격차로부터 주의”를 돌리게 하기 위해, “타국과의 긴장관계를 이용하여 내셔널리즘에 불”을 붙인다.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 이주노동자나 무슬림이라는 불쏘시개를 발명하기 전에, 일본의 신우파는 사회 양극화를 메워줄 역사수정주의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서 일본의 우경화라는 주제로 한 차례 강연을 하기도 했던 나카노 고이치는 그날의 강연을 푼 〈일본 정치의 우경화〉(제이앤씨, 2016)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영향으로 워킹푸어(working poor)가 생겨나고 한편에서는 그들이 내셔널리즘적인 언설, 배외주의적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에 매혹당하는 겁니다. 전통적인 전후 냉전기의 보수는 국민을 통합하기 위하여 빈민 노동자나 지방에 보조금을 주어 어느 정도 돈으로 해결하고자 했고, 그것으로 일체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
나카노 고이치 지음
김수희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펴냄
글로벌 경제가 되어서 개혁할 필요성이 부상하자 ‘돈은 주지 않겠지만 일장기로 감싸줄 테니까 긍지를 가져라. 당신은 일본인이니까’라는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건방지다. 중국은 괘씸하다. 북한은 위험하다’라는 식으로 부추겨 일체감을 확보하려 들었습니다.” 조선인 ‘군 위안부’, 난징 학살,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 등에서 일본 정부의 전향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은 여기에 있다.

나카노 고이치가 일본 신우파의 역사수정주의 기저를 신자유주의와 연동했다면, 고케쓰 아쓰시의 〈우리들의 전쟁 책임〉(제이앤씨, 2013)은 그 연원을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뒤의 미국 군정(1945년 10월2일~1952년 4월28일)에서 찾는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석연치 않게도 일본의 전쟁 책임을 면죄해주었다. 흔한 상식은 미국이 일본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한 제도 개혁과 인적 청산에 착수했으나,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헛된 수고가 되었다고 말한다. 즉 아시아에 점증하는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 일본을 아시아의 반공 기지로 만들어야겠다는 미국의 궤도 수정이, 전쟁을 일으킨 일본 보수주의(군국주의) 세력을 협력자로 다시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표준적인 해석은 애당초 미국이 일본군 통수권자인 천황(일왕)을 전범으로 기소하거나 천황제 폐지를 강행하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무색해진다. 미국 군정은 일본 보수주의의 근간을 보호하는 것이 최고의 반공 전략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고케쓰 아쓰시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은 ‘미·일 경제군사 동맹’만이 아니라, 아시아에 대해 똑같은 역사 해석을 공유한 ‘미·일 역사인식 동맹’으로 맺어져 있다. 일례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태평양전쟁’으로 축소해서 부르는데, 이 호칭에는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민족이 같은 시기 일본에 대항해서 싸웠다는 것을 지워버린다. 일본은 타이완·조선의 식민지배와 중국·동아시아를 침략했던 자신의 죄과를 보이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미국 군정이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했던 이 호칭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미·일 안보가 역사부정론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라면서, “일본이 지금까지 과거에 침략한 국가들과 화해되지 않는 요인으로 미·일 안보라는 존재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30일, 우여곡절 끝에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 대사와 부산총영사를 본국으로 초치했고, 아베 총리는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일 양국 정부가 책임을 갖고 합의를 실시해가는 게 중요하다. 이에 역행하는 건 건설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한국 언론은 아베의 전화 통화를 ‘고자질 외교’라고 비아냥댔지만, 이 글 서두에서 오바마가 확인해주었듯이, 일본과 역사인식 동맹으로 맺어진 미국이 역성을 들어줄 편이 어디일지는 뻔해 보인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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