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의 정확한 초연일은 모른다. 1595년 1월30일 극단 ‘챔벌린 경의 사람들’이 커튼 극장에서 베로나의 연인들에 관한 연극을 공연할 거라는 기록을 기준 삼아 이날을 초연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무대에 오른 게 언제였는지 정확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초연일만 불투명한 게 아니다. 기록을 보다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작품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오리지널이 아니다. 원형을 따지자면 8세기에 출간된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실린 ‘피라모스와 티스베’ 설화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베로나를 배경으로 삼아 업데이트한 건 비첸자 출신의 루이지 다 포르토의 업적이다. 줄리에타와 로메오라는 이름과 카퓰레티와 몬테치라는 가문의 이름, 로렌조 신부, 마르큐지오, 테발도, 줄리에타의 정혼자, 유모 같은 등장인물까지 죄다 루이지 다 포르토의 공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발코니 장면은? 두 연인이 창문을 사이에 두고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장면은 루이지 다 포르토 때부터 있었지만, 발코니라는 개념 자체가 영어에 편입된 건 셰익스피어 사후 2년 뒤의 일이다. 아마 후대의 첨삭이었을 것이다.

ⓒ이우일 그림

오리지널이야 아무러면 어떠랴. 수많은 소설과 연극들도 설화를 기반으로 재창작되었다. 그러면 평은 어땠을까? 〈햄릿〉과 함께 셰익스피어 생전 가장 자주 무대에 올라간 인기 레퍼토리였음에도 평단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평균 결혼연령은 20세였는데 극 중 줄리엣의 나이는 고작 13세였으니, 비평가들은 어린애들이 만난 지 5일 만에 사랑 타령 때문에 죽어버리는 막장극으로 보았던 것이다. 비극은 캐릭터가 지닌 그 본연의 결함에 기인해야 한다는 서구 연극의 전통과는 달리, 운명의 장난질 때문에 모든 사달이 일어나는 극의 구조도 비평가들은 단점으로 보았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최초의 비평은 1662년 평론가 새뮤얼 피프스가 남긴 것이다. 얼마나 가혹한지 보라. “내 평생 본 모든 연극 중 이게 최악이었다.” 인기는 좋지만 당시 비평가들은 시큰둥한 막장극으로 본 것이다(어쩐지,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집필했던 김순옥도 롤모델이 셰익스피어라고 한 적이 있다).

후대 영문학자들을 열광케 한 변주와 파격이 곳곳에

이 작품의 진가는 세월이 지나면서 재발견된다. 셰익스피어는 등장인물마다 대사의 형식을 달리 짜주는 섬세함으로 후대의 영문학자들을 열광케 했다. 생각해보라. ‘약강 오보격 무운시(약강 음절이 시 한 줄에 다섯 번 나타나는 각운이 없는 시)’로 노래하는 코러스와 설교풍으로 대사를 치는 로렌스 신부, 부모가 정해준 정혼자에게는 격식을 갖춰 이야기하면서도 로미오에겐 본질을 묻기 위해 단음절 단어들로 말을 건네는 줄리엣, 과장된 이탈리아식 소네트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늘어놓던 로미오의 장광설, “당신은 날 사랑하시나요” 따위 단도직입으로 끊어내는 줄리엣의 명쾌한 언어의 충돌 등 영문학자들의 환희에 찬 비명이 여기까지 들린다. 전형적인 희극의 분위기로 이어지다가 머큐시오의 죽음으로 갑자기 엄청난 서스펜스를 품은 비극으로 굴러 떨어지는 롤러코스터 같은 전개는 어떤가? 당대에는 별 인정을 받지 못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 사후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오늘의 초라함에 어깨를 떨구곤 한다. 왜 내 노력은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가. 왜 세상은 내게 그릇된 이름을 씌우고 손가락질하는가. 하다못해 내가 좋아하는 저이는 왜 세간의 평이 영 별로인가. 세상은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고, 그때마다 우리의 나약한 무릎은 땅에 떨어진다. 그러나 무릎이 흙바닥에 갈릴 것 같은 날이면, 좌절하는 대신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도 당대의 평가는 영 별로였다는 걸 떠올려보자. 심지어 셰익스피어는 당대 최고의 작가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정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궤도를 따라 돌며 매월 변하는 달처럼 변덕스러운 세간의 눈에 신경 쓰지 말고, 기품 있는 당신 자신의 인정을 찾자. 세간이 장미를 장미라 부르지 않는다 해서 그 달콤한 향기가 어디 가겠는가.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