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은 분명 영웅 소설이고 판타지 소설이건만, 관통하는 사조는 리얼리즘에 가깝다. 서로 사랑하고 배신하고 권력 다툼하는 수십명 주인공급 인물들의 앞날에 권선징악의 미덕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아, 이 사람이 주인공이구나. 앞으로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겠군’ 하고 방심하는 순간, 그 인물이 매우 가차 없이 죽는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출생의 비밀, 선정적인 장면, 느닷없는 죽음, 판세를 바꾸는 마법과 반전과 같은 막장 드라마 요소가 모두 등장하지만 〈왕좌의 게임〉이 그래도 고급스러운 스토리인 이유는 이 요소들이 매우 귀하게 쓰인다는 점이다. 남용되지 않고, 정교하고, 개연성 있게 자극적인 장치들이 배치됐다.
〈왕좌의 게임〉 한국어판은 원래 2000년에 나왔지만 드라마 방영 후 대거 유입된 새 독자들이 번역 품질 등을 따지는 통에 출판사는 지난해 7월 개정판을 출간했다. 여전히 번역에 흡족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왕좌의 게임〉 시리즈가 방영되지 않는 이 암흑기를 견디는 데에 이만한 텍스트가 없다. 원작 못지않게 방대한 ‘왕좌의 게임’ 나무위키(이용자 참여 백과사전)도 다 읽고 가계도와 지도까지 달달 외우고 나서 더 이상 할 게 없을 때 등장한 이 반가운 개정판을, 지난해 가을부터 매일 조금씩 아껴 읽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매 시즌은 항상 봄부터 시작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시즌 7은 오는 여름에야 방영된다. 겨울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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