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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에 양은 밥상 파는 초콜릿 전문가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7년 02월 13일 월요일 제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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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만드는 사람에게 2월 초는 폭풍 전야다. 2월14일,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초콜릿 전문점 카카오봄의 고영주 대표(50)에게도 그렇다. 한때 1년 매출의 절반을 이날 하루에 벌어들인 적도 있었다.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할 때인데,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전쟁을 위해 결혼을 금한 왕을 피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몰래 결혼시켜준 성직자 밸런타인을 기리는 날이 2월14일이죠. 그날 그가 죽었거든요. 이날 연인뿐 아니라 이웃·친구·부모에게 꽃과 초콜릿을 건네면서 사랑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만 여성이 남성에게 고백하는 날로 인식되었어요. 알맹이인 초콜릿보다 화려한 포장이 중요해졌죠. 좀 씁쓸해요.”

초콜릿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밸런타인데이의 상술을 못마땅해하는 건 뜻밖이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다. 놀라운 건 카카오봄 매장에 전시된 난데없는 양은 상이다. 이제는 낡은 시골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동그란 양은 밥상 말이다.

ⓒ시사IN 조남진
벨기에 초콜릿 전문점 카카오봄의 고영주 대표

고 대표는 이번 밸런타인데이에 양은 밥상과 함께 초콜릿 선물을 건네자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동그란 식탁에 함께 모여 앉아 밥을 먹듯 2월14일을 서로 나누고 사랑하는 날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양은 상에는 벨기에 만화작가인 전정식씨의 작품이 그려져 있다. 전씨는 1970년 벨기에로 입양됐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 <피부색깔=꿀색>을 그렸다. 양은 밥상 하나에 참 많은 사연이 담겼다.

고영주 대표가 초콜릿에 눈뜬 건 벌써 20여 년 전이다. 1994년 벨기에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그곳에서 만난 초콜릿은 맛도 맛이지만, 문화적으로 달랐다.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초콜릿 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했다. 국내 1호 초콜릿 전문가의 탄생이었다. 2006년 홍대 앞에 카카오봄을 열었다. 좋은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초콜릿인 만큼 값은 비쌌다. 주위에서는 잘 안될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느덧 11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초콜릿의 본질을 생각하자고 말한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농산물이다. 카카오 열매를 따서 발효시킨 뒤 건조해서 유통시킨다. 우리가 콩으로 청국장을 띄우고 메주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 뒤에 수많은 노동력과 기술이 집약돼 ‘작은 보석’으로 탄생한다.

“좋은 초콜릿은 어쩌면 간단해요. 카카오버터와 카카오매스, 그리고 설탕만으로 이루어진 초콜릿이죠. 식물성 기름이나 합성 착향료는 쓰지 않아요. 좋은 초콜릿을 고르는 요령은 결국 좋은 음식을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우리에게 아직 선택의 폭은 넓지 않지만.”

이번 밸런타인데이에는 꼭 필요한 것만 넣은 ‘좋은 초콜릿’을 사람들에게 건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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