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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국민 누구도 유엔을 믿지 않는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유엔은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의 특사 파견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내전에 개입했다. 하지만 실효가 없었다. 오히려 구호자금이 알아사드 독재정부 측을 통해 지원되었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2월 17일 금요일 제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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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6년 동안 유엔은 무기력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전쟁 종식을 위해 전 세계 70개 국가가 모여 ‘시리아의 친구들’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유엔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꾀했다. 그러나 유엔은 내전이 나고 1년이 넘도록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쟁이 곧 끝나리라고 오판한 것이다. 2012년 3월10일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및 아랍연맹의 공동특사 자격으로 시리아에 파견되었다. 아난 특사가 제안한 평화안 6개 항은 2012년 4월12일까지 유엔 감시 아래 교전을 중단하고, 교전 지역에서 정부군과 중화기를 철수하며, 인도적 구호활동을 위해 매일 2시간씩 휴전한다는 내용이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아난 특사를 환대하는 척하면서도 시위대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반정부 세력은 유엔의 휴전안에 회의적으로 돌아섰다. 시리아 홈스의 시민활동가 하디 압둘라 씨는 “탱크가 마을을 공격하고 저격수가 여성과 어린이를 조준 사격하는 상황에서 무슨 대화냐”라고 말했다.

결국 휴전 시한은 끝났고 양측의 전투는 다시 시작되었다. 반정부 세력 안에서는 유엔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실질적인 휴전안이 아니라 전시용·면피용이었다는 것이다. 코피 아난 특사의 휴전안이 실패한 후 유엔은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유엔 결의안을 안보리 표결에 부쳤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AP Photo
2012년 3월10일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유엔 특사 자격으로 시리아를 방문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아난 특사는 평화안 6개 항을 제안했다.

유엔이 시리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중재와 구호. 앞서 코피 아난 특사의 실패를 시작으로 중재는 제자리걸음이다. 구호도 만만치 않다. 시리아 정부군에 포위된 몇몇 지역에서는 식량과 생필품이 바닥나 주민이 고통을 받았다. 시리아 남부 다라 주에 사는 가정주부 사라 씨(41)는 “우리 아이들에게 신선한 토마토와 빵과 치즈만 먹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라며 흐느꼈다. 그녀가 사는 마을에는 100여 가구가 넘게 고립되어 있다. 정부군에 의해 봉쇄된 이 마을은 전기와 물은 물론 아이들 분유나 의약품도 부족하다. 정부군이 완전히 고립시킨 마을은 주로 반군이 장악했던 지역이다. 이런 지역은 유엔 구호팀의 접근조차 어렵다.

유엔이 시리아 정부기관 258군데 지원

지난해 12월부터 수도 다마스쿠스에 물 공급마저 끊겼다. 와디 바라다 상수 시설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유엔은 이 상수원 오염으로 다마스쿠스에서 550만명이 식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반군이 상수원을 공격했으며 와디 바라다를 완전히 되찾을 때까지 공습을 멈추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군은 반군대로 시리아 정부군이 상수원을 폭격해 오염되었다고 주장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얀 에겔란트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은 “(한쪽이) 일부러 파괴했을 수 있다”라며 진상 규명을 위해 다마스쿠스 북쪽에 있는 와디 바라다 협곡 상수원을 방문하려 했지만 시리아 정부가 허가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은 충격이었다. 유엔 구호자금 수천만 달러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제재를 받는 알아사드 대통령 측을 통해 시리아에 지원되었다는 것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유엔 기구들은 미국과 EU의 제재 리스트에 있는 시리아 정부 부처들과 기업인을 통해 구호자금을 보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알아사드 정권 국방부의 통제를 받는 시리아 국립혈액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500만 달러(약 56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시리아 전역에 100여 개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시리안 아메리칸 메디컬 소사이어티(SAMS)’ 관계자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시리아 국방부는 혈액은행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활동가들과 의료진들이 목숨 걸고 봉쇄 지역 야전병원으로 (혈액과 의약품 등) 보급품을 몰래 들여오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보급품 밀반입을 감행한 의료진과 활동가들이 고문당하거나 살해되고 있다”라고 탄식했다.

유엔은 이 밖에도 5400만 달러(약 604억원)를 시리아 정부기관 258군데에 지원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의 부인 아스마 알아사드와 사촌 라미 마크루프가 세운 자선단체도 유엔 기금의 수혜자이다. 아스마 알아사드는 미국과 EU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인물이다. 더구나 마크루프는 조세 회피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 명단에도 올랐다. 유엔은 시리아의 농업 관련 정부 부처에도 1300만 달러(약 145억원) 이상을 주었다. 시리아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무스타파 씨(52)는 “시리아 모든 농부에게 물어보라. 그런 자금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유엔은 최소 400만 달러(약 45억원)를 시리아 정부가 운영하는 연료 공급 업체에도 지원했다. 이 업체 또한 EU가 제재 대상에 포함한 곳이다.

ⓒAP Photo
2016년 9월 유엔 구호 차량이 시리아에서 폭격당하자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은 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고 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 당시 유엔에서 일했던 샤이크 씨는 유엔이 르완다 청문회를 열었던 전례를 들어 이번 시리아의 경우도 청문회를 통해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국제 인도주의 구호단체 73개는 유엔이 ‘시리아 정부가 수많은 주민의 구호품을 박탈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고 항의한 바 있다.

유엔 자체가 무력 공격을 받는 사건도 벌어졌다. 2016년 9월19일 알레포 인근에서 잠정적으로 휴전이 종료된 직후였다. 시리아 북부 오룸 알쿠브라 지역 국도에 트럭 31대가 줄지어 가고 있었다. 유엔과 시리아·아랍 적신월사(SARC)가 호송하는 구호 차량이었다. 트럭에는 몇 달간 지속된 포격으로 고통을 겪는 알레포 주 오룸 알쿠브라 지역 7만8000명에게 제공할 구호품이 실려 있었다. 주로 아이들을 위한 긴급 음식과 환자용 의약품,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담요들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트럭이 폭격을 당했다. 18대가 전소되고 운전자 등 20명 이상이 숨졌다. 이날 숨진 사람 가운데는 오마르 바카랏 적신월사 소장도 있었다. 적신월사는 우리의 적십자사와 같은 조직이다. 이 사건은 전 세계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유엔은 시리아 휴전 종료가 발표된 지 불과 몇 분 만에 유엔 구호물품 차량을 공격한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라고 비난했다.

구호 차량에 비인도적 폭격을 한 주체는 누구일까. 미국 정부는 러시아 폭격기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처음 구호 트럭 공습이 있은 뒤 이들을 도우려고 도착한 구조대를 겨냥한 폭격이 또 한 번 있었다. 이는 러시아군과 시리아 정부군의 전형적인 공격 패턴, 단시간에 수차례 공습하는 ‘더블탭(double-tap)’이다. 미군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해당 지역 상공에 러시아 Su-24 전폭기 2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 전폭기들이 차량을 공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강하게 부인했다. 오히려 러시아는 구호 차량 공격이 시리아 반군이나 미국 측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옥신각신하면서 시리아 내전을 종식할 열쇠로 기대를 모았던 미국과 러시아의 휴전 협상조차 무위로 돌아갔다. 피해 당사자인 당시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은 해당 사건을 담당할 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딱히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날 사고로 죽은 이들과 구호품을 받지 못한 시리아 주민만 억울할 뿐이다.

ⓒReuter
2016년 9월19일 시리아에서 유엔과 시리아·아랍 적신월사의 구호 차량이 공습당했다.

시리아 내전은 현대사에서 보기 드물게 복잡하다. 초창기 정부군과 반군이 대립하다 러시아와 미국이 끼어들고 IS까지 극성인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유엔 처지에서야 할 말이 많겠지만 시리아 국민에게 유엔은 ‘그저 말뿐인, 폼만 재는 조직’일 뿐이다. 홈스에서 유럽으로 피란 온 아미드 씨(27)는 “시리아 국민은 아무도 유엔을 믿지 않는다. 내전이 길어진 이유 중 하나가 유엔이 적극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유엔의 구호자금이 알아사드 대통령 측근에게 흘러간 사실도 시리아 국민에게 많이 알려졌다. 그리스로 피란 온 사이드 씨(32)는 “독재자를 유엔이 도와주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니 알아사드가 버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비판을 유엔 내부에서 모를 리 없다. 이번에 새로 취임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 후 첫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에서 “너무도 많은 시간과 자원을 허비했지만 전쟁을 방지하지는 못했다”라고 자기반성부터 했다. 포르투갈 출신인 구테흐스 총장은 지난 10년간 유엔 난민기구(UNHCR) 최고 대표를 지낸 전문가이다. 유엔은 지난해 12월 뉴욕 본부에서 총회를 열고 시리아 내전 전쟁범죄 조사단 발족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찬성 105개국, 반대 15개국)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유엔이 시리아 전쟁범죄 책임자를 기소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한 것은 내전 발발 6년 만에 처음이다. 유엔은 이 결의안을 동력으로 삼아 전쟁범죄를 정밀 조사할 계획이다.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이다.

“시리아 국민은 아무도 유엔을 믿지 않는다”

지난 1월23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내전 이후 처음으로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평화 협상에 나섰다. 이날 회담에는 시리아 정부와 반군 대표, 회담을 중재한 러시아·이란·터키 대표, 스테판 데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 특사 등이 참석했다. 미국은 카자흐스탄 주재 대사를 참관인 자격으로 파견했다. 물론 회담 첫날에는 서로의 견해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각자의 대기실로 돌아가 중재국을 통해서 서로 ‘~라 전해라’ 하는 식으로 소통했다. 하지만 시리아 반군과 정부군이 한자리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적이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정치적 해결은 (2월에 예정된) 제네바 협상에서 찾아야 하며 아스타나 회담은 이를 위한 중간 단계다”라고 말했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한 작은 실마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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