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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간 ‘벼락 정치’하고 떠난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귀국 후 기대했던 '컨벤션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1일 1구설’로 지지율이 빠졌다. 21일 동안의 행보를 복기해보았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2017년 02월 17일 금요일 제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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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2일 귀국. 2월1일 불출마 선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반풍’은 21일 만에 멈추었다. 2014년 한때 30% 후반대까지 치솟았던 반 전 총장의 대선 지지율은 불출마 선언을 하기 직전에 10% 초·중반대로 주저앉은 상태였다. 반풍이 ‘무풍’이 되기까지 21일간의 행적을 되짚었다.

반기문 전 총장의 귀국을 앞두고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렇게 평했다. “도착 후 첫 7시간과 첫 7일이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때의 활동과 발언이 설 명절 민심과 겹쳐 대선 승리의 관건이 될 것이다”(1월12일자 <내일신문>).

1월12일 귀국 당일, 언론이 ‘반의 귀환’을 주목했다. 도착 후 몇 시간 동안 벌어졌던 일은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귀국 직전에 동생과 조카가 뇌물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귀국 연설에서 반 전 총장은 “이제는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 교체다.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어서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드는 데 분명히 제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연설 후에 반 전 총장은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공항철도를 타고 귀가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스텝이 꼬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언론의 관심이 모였는데, 공항철도 무인발권기 앞에서 헤매다 1만원권 두 장을 넣으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편의점에서 무심코 프랑스산 생수를 사려다 한 참모의 조언으로 국내 생수로 바꾸는 장면도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정치 교체’라는 메시지보다 이런 실수가 더 부각되었다. 첫날의 해프닝은 ‘1일 1구설’의 시작이었다.


반기문 캠프 측은 귀국 이후 음성(고향)·봉하마을·팽목항·천안함기념관·518국립묘지 등 전국을 누비는 광폭 행보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1월13일 국립서울현충원 방문 때는 미리 써온 쪽지를 베껴 방명록을 쓰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1월14일 고향 음성의 꽃동네를 찾았을 때는 누워 있는 환자에게 죽을 먹이고 턱받이를 본인이 착용한 게 구설에 올랐다. 이날 묘소를 참배할 때 촬영된 영상 때문에 며칠 뒤에 ‘퇴주잔 마시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청년 실업 문제 해법으로 ‘인턴 확대’를 거론해 국내 실정을 모른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일 위안부 합의 환영’ 논평에 대해 묻는 기자들을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로 “나쁜 놈들”이라고 하거나 청년들을 향해 ‘정 일 없으면 해외봉사라도 하라’는 식으로 발언한 것도 이 일주일 안에 벌어졌다. 귀국 후 일주일이 ‘1일 1구설’로 뒤덮인 꼴이 되었다.

귀국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문재인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귀국 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 시기에 발표된 리얼미터의 일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귀국에 따른 컨벤션 효과(정치적 이벤트 후에 나타나는 지지율 상승)는 미약했다. 오히려 귀국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설 전까지 지지율이 빠지는 추세를 보였다(위 표 참조). 지지율 하락 추세와 더불어 캠프 내 외교관 그룹과 친이계 정치인 출신 그룹 사이의 갈등도 불거졌다.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언론에는 ‘반반 행보’ ‘오락가락 행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정당정치에 대한 이해가 없고, 대선 준비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이런 지적은 반기문 전 총장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1월16일 경남 김해에서 기자들과 만나 했던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이 없어서 손바닥으로 땅을 긁고 있다.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돈이 얼마나 있겠냐. 금전적인 것부터 빡빡하다.” 돈 문제 때문에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일었다.

개헌·촛불 민심 등 잇따른 말 바꾸기 논란


또 이날 반 전 총장은 ‘대선 전 개헌은 어렵다’고 밝혔다. 그런데 1월23일 KBS 인터뷰에서는 ‘대선 전에 개헌을 했으면 좋겠다’고 견해를 바꾸었다. 개헌을 매개로 여러 정치 세력이 모이는 ‘빅텐트’를 통해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려는 시도로 읽혔다. 이후 반 전 총장은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등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1월31일에는 개헌추진협의체를 제안하고 나섰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날의 메인 메시지는 개헌 관련 제안이었는데, 엉뚱하게 ‘촛불 민심이 약간 변질됐다’는 발언을 덧붙여 이 말이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후보 자신이 메시지 관리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귀국 직후 촛불시위를 ‘성숙한 민주주의의 표현’이라고 했다가 말을 바꾸었다는 비판까지 따라붙게 만들었다.

그다음 날인 2월1일 오후 3시30분에 반기문 전 총장은 국회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바른정당·정의당 대표를 만난 직후였다. 불출마 선언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로 정치 교체 명분이 실종되었다. 일부 정치인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혔다. ‘정치 교체’를 내세우면서도 현실 정치인과 손잡고 세력을 규합하려 했던 반기문 전 총장은 정치권 비판을 끝으로 21일간의 대선 주자 행보를 마쳤다. ‘반풍’이 사라진 자리에 ‘반(反)정치’ 발언만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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