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전라도 여행길에 들렀던 화순 운주사(雲住寺) 기억나지?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의 기묘한 탑들과 언제 누가 왜 만들었는지 제대로 기록조차 없는 불상들로 그득한 ‘천불천탑’의 절 말이야. 이 절은 황석영의 장편소설 〈장길산〉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이기도 해. 소설에서 천불천탑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일어서 싸우다가 화순 산골짝에 숨어든 노비들에 의해 지어지게 된단다.

“그들은 협곡 속에 숨어 살면서 미륵님의 계시를 들었다. 이 골짜기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룻밤 사이에 세우면 수도가 이곳으로 옮겨온다는 것이었다. …노비들은 새벽에 깨어 일어나 보성만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았다. 우리는 이곳에 서울을 세우리라고 미륵님께 서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시사IN 자료천불천탑으로 유명한 화순 운주사(雲住寺)는 황석영의 소설에서는 배를 몬다는 의미의 운주사(運舟寺)로 등장한다. 위는 운주사의 와불.

미륵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에 오신다는 부처님이야. ‘그분이 오시면’ 낡은 세상이 가고 새 세상, 즉 정토(淨土)가 열린다고 했지.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사람들은 미륵불을 찾았어. 우리의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고구려·백제·신라 간의 각축이 치열하게 벌어질 무렵 만들어진 거야. ‘미륵님이 오시면 이 난리가 끝나겠지’ 하는 마음이 엿보이지 않니. 후삼국의 혼란기에는 태봉의 왕 궁예가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자처하면서 위세를 부리기도 했지.

이렇게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복된 세상을 건설하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지. 유대인들은 지금껏 그들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언젠가 닥칠 예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믿지 않겠니. 그런데 아빠는 미륵 같은 절대적 존재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믿음이 좀 유별나다는 생각을 해. 걸핏하면 사이비 종교의 말세론과 그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하는 이들이 출몰하는 건 차라리 종교의 영역으로 치부할 수 있어. 난감한 것은 그 무엇보다 냉철한 사고가 필요하고 합리적으로 전후좌우를 따져 신중하게 결단해야 하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미륵의 이미지로 빠져들었고 결국 ‘그분’에 대한 맹목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는 사실이야.

해방 당시 조선과 그 주변에는 상당한 역량과 조직을 지닌 정치인들이 있었어. 오랫동안 중국 대륙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을 벌여온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고, 해방 전부터 일본 총독부와 행정권 이양 협상을 벌여왔던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의 여운형이나 불굴의 의지로 일제와 비타협적으로 맞섰던 공산당 지도자 박헌영, 그리고 국내 우익의 송진우, 김성수 등등 쟁쟁한 이름이 많았단다. 그런데 그들이 한마음으로 기다린 사람은 바로 이승만이었어.

‘외교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독립 투쟁 경력으로 보자면 이승만은 수십 년간 일본과 직접 부딪치며 싸웠던 사람들에게 명함을 내밀 처지는 아니었어. 한국 땅을 떠난 지 40년이 넘었고 한글보다는 영어 쓰기에 더 익숙했던 해외 정객이 어떻게 수십 년 조선의 독립을 위해 피땀 흘린 사람들보다 더 큰 기대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 최초의 미국 박사’에다 전 미국 대통령 윌슨과도 친교가 있었던, 즉 일본을 이긴 세계 최강 미국에서 알아주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큰 몫을 했어.

미국과 친한 이승만 (미국) 박사. 대통령이 된 뒤에도 한국 사람들은 이승만 박사라는 호칭을 버리지 못했고 이승만 또한 은근히 그 호칭을 즐겼다고 하지. 이 미국 박사의 위력은 여운형이 세운 건준 중심의 인민공화국도 이승만을 주석으로 모셨고, 골수 공산주의자라 하는 박헌영이 이승만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산당을 지도해주십사 청했다는 사실로 짐작해볼 수 있을 거야. 서중석 교수(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국외 소식에 좌익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낸 사실”이었지.

이승만 역시 그 이미지를 절묘하게 이용해. 공산주의라면 이를 갈고 그 때문에 미국의 호감을 산 인물이면서도 “나는 공산당에 호감을 가진 사람이다. 그 주의에 대해서도 찬성하므로 우리나라의 경제 대책을 세울 때 공산주의를 채용할 것”이라고 능청을 떨었으니까 말이야. “뭉치면 삽네다, 흩어지면 죽습니다(이승만의 귀국 연설 중)” 하는 그 모습은 얼마나 미륵 같았을까. 그 후 1950년대 내내 그의 이미지는 거의 국왕 수준으로 격상되고 ‘국부(國父)’는 기본, “예수나 석가처럼 아무런 사심 없이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살았다”(갈홍기 공보처장)라는 미륵의 경지에 이르러.

ⓒ연합뉴스건국준비위원회를 주도한 여운형은 이승만(가운데)을 주석으로 모시려 했고, 공산주의자 박헌영은 이승만에게 공산당을 지도해달라고 부탁했다.

4·19를 비롯해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한 한국 사람들이지만 또 기묘하게도 성숙하고 냉정한 정치적 판단을 통해 자신의 대표자를 선택하기보다는 원시적 이미지에 현혹되는 일이 잦았어. “민족의 영도자에 역사의 중흥주”(박정희 대통령 추모곡 중에서)에 기대거나 “정주영이 정도령이다”라는 봉건적 선동에 솔깃하거나 “MB(이명박 대통령)가 해주실 거야. (MB처럼) 부자 되세요” 하는 어이없는 주문이나 “아무개의 딸이니 아무개처럼 잘하겠지”라는, 소가 웃을 희망에 자신의 미래를 걸어버렸던 거지. 요즘은 ‘세계를 주름잡는 유엔 사무총장을 했으니 한국쯤이야’ 하는 얘기가 나와서 아빠는 망연자실 중이다.

미륵은 세상의 배, 백성은 배를 띄우는 물

이건 이른바 보수적인 사람들만의 폐단은 아니야. 한 정치인이기 이전에 나약하고 모자란 한 사람에게 모든 희망과 기대를 잔뜩 실어버리고, 그에 반대하거나 삐딱한 소리를 내는 사람 모두를 사납게 공격하는 ‘진보’들이라면 이 또한 시대를 잘못 만난 미륵 신앙인이지 않겠니. 아울러 수틀릴 경우 “모든 게 아무개 때문이야”라며 온갖 책임을 떠넘겨버리는 푸념 또한 결국은 ‘이 사람은 미륵이 아니었군’ 하는 저열한 실망의 산물 아니었겠니.

다시 황석영의 〈장길산〉 속 운주사(運舟寺)로 돌아가 보자. 노비들이 지성을 다해 돌을 다듬고 깎아 탑을 세우고 불상을 새기려는데 문제가 있었어. “몸집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어찌 알고 미륵님을 감히 새긴단 말인고.” 그러자 한 지혜로운 사람이 대답한단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미륵님이란 자네 아닌가. 자네 모양과 똑같은 이가 미륵님일세.” 미륵이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바로 미륵을 찾는 사람들 그 자체라는 얘기야. 그리고 누군가 왜 천불천탑의 절이 ‘배를 몬다(運舟)’는 뜻의 운주사냐고 물었어. 그에 대한 답은 이랬지.

“미륵님 세상이 배가 된다. 배는 물이 없으면 뜰 수가 없지 않느냐? 물은 우리 같은 천것들이고 만백성이란다. 우리 중생이 물이 되어 고이면 배가 떠서 나아가게 되는 게야.”

새로운 세상이라는 배는 미륵의 힘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별로 힘도 없고 기막히게 똑똑하지도 않고,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방울방울이 합쳐진 물 위라야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야. 미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혜성과 같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우리들 속에서 우리 형상을 따라 빚어지는 것이고, 우리가 그 코에 숨을 불어넣어야 숨 쉴 수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란다. 미륵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해.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머리와 손이 많아질수록, 그 의지가 굳으면 굳을수록 그 눈이 초롱초롱할수록 세상은 조금씩 새로워지게 되는 거란다. 그렇게 천불천탑을 쌓아가는 거란다. 올해 우리도 탑 하나쯤은 함께 쌓자꾸나.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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