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2011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에 먼저 SOS를 쳤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아랍의 봄이 여러모로 신경 쓰였다. 당장 러시아에 민주화의 물결이 밀려들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만약 시리아에서 민주혁명이 성공한다면 오래된 우방 하나를 잃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대개 권위주의 체제가 들어선 러시아의 우방이 모두 함께 흔들릴 수 있었다. 옛 소련 국가인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까지 위험했다.

러시아는 2005년 시리아가 옛 소련 시절 무기를 구매하느라 진 빚 134억 달러 가운데 98억 달러를 탕감해줬다. 대신 러시아제 무기를 산다는 조건이었다. 시리아는 무기의 50% 이상을 러시아에서 공급받았다. 내전이 시작된 2011년 러시아와 시리아는 40억 달러에 이르는 무기 거래 계약을 막 체결한 참이었다. 내전이 일어나 시리아에서 정권이 바뀐다면 이런 계약이 휴지가 될 판이었다. 그렇더라도 미국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마당이어서 선뜻 군사개입을 하기는 어려웠다.

ⓒAP Photo2015년 10월1일 러시아 공군기가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주를 폭격했다. 전날 러시아는 온건 성향의 알누스라 반군이 장악한 도시 홈스를 공습했다.

러시아가 이런 고민을 할 때 고맙게도 알아사드 대통령이 SOS를 보낸 것이었다. 푸틴에게는 호재였다. 러시아가 원해서가 아니라 우방인 시리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마지못해 대테러전에 나선다는 형식을 갖출 수 있었다. 푸틴에게는 ‘국제 플레이’에 나설 기회였다.

2013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화학무기가 살포돼 주민 1700여 명이 사망한 시점부터 러시아는 본격 개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극악무도한 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받은 알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예상했다. 대규모 공습으로 내전을 끝내고 싶었던 미국으로서는 명분이 아쉬운 참이었다. 이라크 전쟁의 구실이기도 했던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으로 대공습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비쳤다. 날이면 날마다 서방 언론은 화학무기가 시리아 내전의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때 러시아가 조용히 나섰다. 2013년 9월 존 케리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사흘간 마라톤 회의를 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폐기였다. 시리아는 즉각 수용하겠다고 밝혀 고비를 넘겼다. 시리아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러시아가 게임 체인저가 된 것이다.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공식 명분은 이슬람국가(IS) 격퇴였다. IS는 러시아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IS에 옛 소련 출신, 특히 체첸 반군 전사들이 대거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수를 주도해 악명을 날렸다. IS 최고사령관인 아부 오마르 알시샤니가 체첸인이다. ‘붉은 수염의 오마르’로 불리는 그는 IS의 국방장관급이다. 그는 2008년 러시아군과 싸우다가 행방을 감춘 뒤 돌연 시리아에 나타났다. 체첸 출신은 러시아와의 전투 경험을 밑천으로 IS에서 승승장구했다. 푸틴 처지에서는 그런 자들이 위협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이 IS 대원들의 귀국 테러로 패닉에 빠진 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AP Photo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최대 7000명이 IS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무슬림이 많은 북캅카스 지역 출신과 체첸 출신 중에 러시아 국적자가 많았다.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 키르기스스탄 무슬림 성직자도 IS에 충성을 맹세하고 합류했다. 또 무슬림도 아니고 체첸과 상관없는 순수 러시아 출신의 가담자도 급증했다.

크림반도 합병으로 왕따당한 푸틴의 돌파구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에서는 대규모 시민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 유럽연합(EU)과의 통합을 둘러싼 갈등이 도화선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친러시아와 친서방으로 양분됐다. 푸틴은 2014년 3월 친러시아 지역인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국제무대에서 푸틴 자신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크림반도 합병 이후 푸틴이 국제적 ‘왕따’를 당하는 신세가 됐다는 점이다. 그때 푸틴이 돌파구로 삼은 게 바로 시리아 내전이었다. 세계가 모두 혐오하는 IS를 격퇴하는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한 것이다. 이는 미국과 첨예한 대립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IS 격퇴전을 펼치면서 독재정권인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함께 축출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2015년 유엔 총회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알아사드 퇴진을 주장하자, 푸틴은 “테러와 싸우는 정권에게 퇴각하라는 것은 실수”라고 비난했다. 2012년 5월 푸틴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공식 정상회담을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두 강대국 사이에는 냉기가 돌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까지 합병하자 양국 관계가 더욱 나빠졌다. 푸틴은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중동에서 미국이 엉덩이를 뺀 사이에 IS를 상대로 한 대테러전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빼앗은 것이다. 시리아는 ‘신냉전’의 진원지가 되었다.

2015년 9월30일부터 러시아는 시리아 공습을 시작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지상군 대신 공습 강화와 탱크 지원을 요청한 직후였다. 그는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동맹군(이란,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이 지상전을 맡을 테니 러시아는 공습을 늘리고 탱크와 필요한 군사 장비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푸틴은 즉각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에게 공습을 늘리고 신형 T-72 탱크와 모든 발사체를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전자장비 등을 시리아에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카스피해에 주둔한 러시아 함정 4척은 IS 목표물을 겨냥해 순항미사일 26발을 발사했다.

ⓒAFP2016년 12월19일 터키 현대미술관에서 경찰관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위)가 안드레이 카를로프 러시아 대사를 저격했다.

러시아 공군은 시리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러시아 군함이 발사한 칼리브르 순항미사일은 1500㎞를 비행해 시리아의 목표물을 타격했다. IS나 반군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화력이었다. 러시아는 기고만장했다. 푸틴은 “칼리브르 순항미사일에는 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다. 그러나 테러와의 싸움에서 그럴 필요가 절대 없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공격 개시부터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대다수가 반군 장악 지역인 이들리브로 날아갔다는 점이다. 단 한 발만 IS 장악 지역인 알레포 주의 알바브를 타격했다. 미국과 시리아 민주화 세력이 지원하는 온건 반군을 타격했다. 당연히 미국이 반발했다. 미국이 맹비난을 하자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권을 돕는 것이 테러를 격퇴하는 길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만 늘었다는 비판에도 러시아는 항상 “증거가 없다”며 부인했다.

러시아의 공습 이후 민간인 사상자는 더욱 늘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지난해 10월 러시아 공군이 첫 공습을 벌인 2015년 이래 민간인 사망자가 3800명이나 발생했다고 밝혔다. 특히 시리아 북부의 제2도시 알레포의 피해는 참혹했다. 거의 매일 미사일과 통폭탄이 수십 차례 떨어져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 아동 10만명을 비롯해 25만명에 달하는 주민이 고립되었다. 병원마저 안전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알레포의 M10 병원에 통폭탄 2개, 집속탄 2개, 그리고 로켓 최소 1개가 떨어졌다. 병원의 관리책임자인 아부 라잔 박사는 BBC에 헬리콥터에서 통폭탄과 집속탄, 그리고 염소 성분이 들어 있는 폭탄이 투하됐다고 증언했다. 주민은 매일 밤 SNS에 작별인사를 하는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알레포의 인도주의 재난에 대해 논의했다. 프랑수아 들라르트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는 “프랑스와 동맹국은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큰 학살 중 하나로 기록될 사태를 맞아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라고 개탄했다.

이슬람 반러 감정 커지고 러시아 대사 피격도

현재 알레포 미디어센터에 남은 라제프 기자는 “이제 알레포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다음 세대가 지나도 러시아는 시리아의 영원한 원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푸틴은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 때도 반군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수도 그로즈니에 대량파괴무기를 동원해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알레포의 상황은 그때와 똑같다. 그런 무자비한 공격이 잔인한 체첸 전사를 키웠다. 알레포의 재앙으로 러시아가 이제껏 내세웠던 명분에 흠집이 났다. 국제사회가 푸틴을 대하는 눈길이 싸늘해졌다. 푸틴은 아랑곳하지 않지만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의 비난도 빗발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대학 학생인 와지드 씨(21)는 “알레포 사태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분노가 날로 커지고 있다. 예전에 이슬람의 적이 미국이었다면 이제는 러시아다”라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사달이 났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터키 경찰관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22)가 현대미술관 개막식에 참석한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를 저격한 것이다. 그는 카를로프 대사가 축사 도중 방심한 틈을 타 뒤에서 방아쇠를 당겼으며, 총을 쏜 뒤에도 도망가지 않고 대치하다가 현장에서 사살됐다. 러시아 대사를 저격한 뒤 그는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를 잊지 말라”고 외쳤다. 러시아는 테러의 또 다른 중요 표적지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제 푸틴은 시리아 내전을 좌지우지하는 ‘키맨’이 되었다. 앞으로 알아사드 대통령보다 푸틴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 판국에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 푸틴과 친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푸틴은 한발 더 나아가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중재자 구실도 자임했다. 살만 사우디 왕과 석유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협상도 했다. 과거 미국이 중동에서 했던 일을 푸틴이 도맡으려 한다. 그러나 중동에서 푸틴의 독주는 시리아 민간인들에게는 악몽이다. 시리아 내 공습 상황을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 에어워즈는 “러시아가 시리아 개입으로 거둔 전략적 이득은 모두 무고한 시민이 흘린 피의 대가다”라고 비난했다. 과거 미국이 갔던 길을 푸틴이 뒤따른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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