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어느 토요일에는, 자고 일어났더니 학교 기숙사에 있어야 할 사촌오빠가 우리 집에 있었다. 부스스한 몰골로 물었다. “오빠, 언제 왔어? 어젯밤에 수업 끝나고 왔어?” 사촌은 황당해했다. “뭔 소리야. 나 방학이잖아. 월요일부터 와 있었는데.” 매일 밤늦게 퇴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니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주말에도 바빴다. 사적인 일 때문이다. 결혼이 다음 달이다. 본격적인 결혼 준비가 시작될 때쯤 최순실 TF팀에 합류했다. 주중에는 이틀에 한 개꼴로 기사를 쓰고, 주말에는 모임을 2탕씩 뛰며 청첩장을 돌린다. 가진 건 체력밖에 없는 게 꽤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박근혜 게이트 취재는 공적 영역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을 추적한다. 반면 결혼 준비는 사적 영역의 미래를 그리는 일이다. 전자나 후자나 심란하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주변에 결혼 소식을 전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아이는 낳을 거야?” 대학에 입학하면 취업 방향을 묻고, 결혼 날짜 잡으면 출산 계획을 묻는다. 혼인신고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아득할 뿐이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 한 ‘워킹맘’이 일요일 출근 중에 숨지자,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임금 감소 없이 근로시간을 단축시켜주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결국 아이를 돌보는 건 오롯이 일찍 퇴근한 엄마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워킹맘은 육아에서 언제 퇴근할 수 있을까? ‘워킹파파’가 육아할 시간은 누가 보장해줄까? 육아도 노동이라는 사실과, 육아 노동을 여성이 전담한다는 현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가 실감났다. 이런 사회에서 인구 절벽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현 정권의 비리를 청산하는 것만큼 다음 정권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도 중요하다. 이번 대선에야말로 정책이 없는 후보는 배제하고, 정책이 부족한 후보는 비판하고, 정책이 훌륭한 후보에게 투표하자.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