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문학동네 펴냄
몇 개월 전 무료 제공된 전자책 〈젊은 작가의 책〉(문학동네, 2016)에 수록된 황정은의 인터뷰를 읽다가 폭소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문학 속 인물 가운데 누구라도 될 수 있다면 누가 되고 싶습니까?” 황정은은 이렇게 답한다. “문학 속 인물이라뇨. 그런 것이… 되고 싶겠습니까?”

정말 그렇다. 황정은 소설집 〈아무도 아닌〉에 수록된 여덟 편 속 인물 중 나는 아무도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벌인 사건도 아니면서 수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실은 수습할 만한 위치도 아니면서 죄책감을 갖는 ‘나 같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분명 내 잘못이 아니긴 한데, 정말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걸까. 내 몫의 책임은 없는 걸까. 그런 질문들 때문에 밤새도록 뒤척이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 있었다.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문장은 서늘하고 인물은 불우한데 그 안에 깃든 마음을 외면하기 어렵다. 누군가 내게 문학의 쓸모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문학이 드러낸 인간의 다양한 결 덕분에 우리는 낯모르는 서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된다고. 나는 그렇게 층간소음을 나누고 사는 아파트의 이웃을 생각하고, 백화점 판매원과 마트 캐셔가 보내는 시간을 새삼 더듬어본다. “사는 게 다 그렇지”라고, “만사가 그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각자의 사연이 하나하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황정은은 수치와 모욕을 일상으로 당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주고 말할 입을 준다. 그것도 아주 근사하게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록작 여덟 편 중에서 네 편이 주요 문학상 수상작이다. 문학상이 곧 작품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책을 덮으면서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상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여덟 편 모두에 주고 싶다. 황정은이니까.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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