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안종범 업무수첩’ 관련 증거 채택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의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1월19일 박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에서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헌재가 채택한 증거는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 아니라 증언과 진술이다. 업무수첩 원본은 헌재에 제출되지 않은 만큼 위법 수집 문제는 형사재판에서 판단해야 한다”라고 기각 취지를 설명했다.
전날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은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17권 가운데 11권에 대해 위법하게 압수됐다며 이의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이날 강 재판관은 “수첩 압수는 외관상 적법 절차를 따랐기에 현 단계에서 위법 수집 증거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대법원 판례를 봐도 위법 수집 증거에 따른 2차 증거가 무조건 증거능력이 없는 것 역시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1월20일 최순실·안종범 등에 대한 형사재판에서도 ‘안종범 업무수첩’은 모두 증거로 채택됐다.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2015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청와대 회의 내용뿐 아니라 ‘VIP’로 표시된 박근혜 대통령 지시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탄핵심판 변론기일 때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두고 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대통령 대리인단은 날선 공방을 벌였다.
지난 1월16일 열린 5차 변론기일,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안 전 수석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해당 수첩에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고, 경우에 따라 관련자 연락처도 쓰여 있고, 이는 박 대통령에게 직접 들은 내용을 그대로 요약해서 적고 나중에 추가된 내용은 없죠?” 안 전 수석은 “네”라고 대답했다. 다급해진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해당 수첩에는 증인(안종범) 생각을 적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 (생각을) 기재할 수도 있고, 모든 내용이 대통령 말씀은 아니죠?”라고 되물었다. 안 전 수석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대부분 박 대통령이 직접 불러준 걸 정리했다. 지시 사항이 아니더라도 (박 대통령이 내게) 알고 있으라고 말한 것을 적기도 했다. 불러주는 내용을 굉장히 빨리 말해 첨삭할 여유는 없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한 번 더 물었다. “대통령 스타일이 모든 걸 세세하게 적어주고(불러주고) 챙기고 그런 스타일인가?” 안 전 수석은 “맞다”고 답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재단 관련 사항까지 세세하게 관심을 보이는 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냐’라며 박 대통령의 관련성을 최소화해보려는 대리인단 질문에 안 전 수석은 “통상 스타일이어서…(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업무수첩을 문제 삼을 때마다, 안 전 수석의 대답은 대리인단의 바람과 정반대로 나왔다.
안종범 전 수석, “첨삭할 여유는 없었다”
헌재에 출석한 안 전 수석은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의 업무수첩 내용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지 않았다. 업무수첩에는 단어만 암호처럼 나열된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면 ‘현대차 30억+30억 60억, CJ 20~50억 30+30억’이라 쓰인 ‘7-24-15 VIP-①’ 메모에 대해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물었다. 이에 대해 안 전 수석은 “대기업 총수 개별 면담에서 정해진 출연금 액수였고, 대통령이 먼저 만난 현대차와 CJ가 30억원을 말해 다른 업체도 그에 준하기로 해서 이후 업체는 숫자를 쓰지 않았다”라고 말한 검찰 조사 때 진술을 확인해주었다. 박 대통령이 재단 출연을 명분으로 대기업 총수들에게 일괄적으로 액수까지 정해서 돈을 내라고 한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더라도, 박 대통령의 깨알 지시가 기록되어 있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와의 독대 전후 지시부터 미르와 K스포츠재단 의혹이 불거지자 허위 진술·증거인멸 지시, 국정교과서 관련 지시 등이 꼼꼼하게 쓰여 있다(〈시사IN〉 제487호 커버스토리 전체 기사 참조).
헌재가 안종범 업무수첩 증거 채택에 대한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면서, 안종범 업무수첩은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스모킹 건’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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