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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했던 ‘카더라’, 지나고 보니 팩트더라

<시사IN>이 최순실씨의 사진을 최초 공개한 지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1379개 최순실 파일’을 하나하나 살피고 ‘안종범 업무수첩 400쪽’을 철저히 분석했다. 취재를 담당했던 특별취재팀 기자들의 뒷얘기다.

신한슬 기자 hs51@sisain.co.kr 2017년 02월 02일 목요일 제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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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마지막 주에 발행한 <시사IN> 제472호에 처음으로 최순실씨의 얼굴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 뒤 120일이 흘렀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리고 카메라를 노려보던 최순실씨는 구속기소된 채 특검 조사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직무 정지를 당했다.
지난 120일 뉴스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읽혔다. 뉴스가 막장 드라마를 넘어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보다 재미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주권자들은 기사를 찾아 읽고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매일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뉴스가 뉴스를 덮었다. 그래서 지난 넉 달 동안 박근혜 게이트를 쫓은 <시사IN> 기자들이 핵심만 가려 뽑았다. 기사에 쓰지 못한 이야기를 풀었다. 기자들이 보는 이 사건의 시발점과 변곡점, 그리고 전망까지 담았다. 솔직한 방담을 위해 별명을 사용했다. 이름은 이번 게이트 국면에 화제가 된 말에서 따왔다.

ⓒ시사IN 윤무영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맨 오른쪽)이 ‘1379개 최순실 파일’에 담긴 내용의 의미를 <시사IN> 특별취재팀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런저런그(그):헌법재판소(이하 헌재)와 서울중앙지법에서 최순실씨 관련 재판이 늦은 시각까지 연일 이어진다.
송구왕재용(송):1월16일 헌재에 나온 최순실씨가 검찰의 강압 수사가 너무 힘들다며 죽고 싶다고 했다. 법 앞에 평등한데 엄살이 심하다. 조사 시간이 길었던 것도 혐의가 많아서 아닌가? 변호사도 동석했고, 검찰 조서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검토했다고 들었다.
이모미안해(이):사실 검찰 수사가 만만찮다.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밤샘조사는 본인이 동의해야 할 수 있다. 결국 최씨가 동의해서 조사가 이뤄진 건데 이제 와서 자살 뉘앙스까지 풍기는 건 언론 플레이 같다.
참맑은영혼(참):최순실씨가 모른다고 하는 게 너무 많다. 증거가 명백한데도 무조건 부인한다. 심지어 태블릿 PC 속 ‘셀카’도 자기가 안 찍었다고 했다. 저러다 정유라씨도 자기 딸이 아니라고 말할 기세다(웃음).
송:어떻게 그렇게까지 모르쇠로 일관할까?
이:수사 초기만 해도 검찰 수사를 조정할 수 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여론이 지금처럼 뜨거울 거라고, 대통령이 탄핵될 거라고, 특검이 진격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관련 보도가 나온 뒤인 지난해 10월 초까지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증거인멸과 허위 진술을 지시했다. 즉,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씨나 이 사안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참:최순실씨 2차 공판 준비기일 때 검찰이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최순실씨 쪽 이경재 변호사가 인멸할 증거가 없다고 하니, 검찰이 되받아쳤다. “구속된 이들이 아직도 최순실씨를 무서워한다. 어떤 피고인은 복도에서 최씨와 눈이 마주치자 검사실로 뛰어 들어온 적도 있다.” 여전히 최순실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취재하며 접촉했던 최순실씨 주변인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최씨 집안일을 했던 이에게 익명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그는 “다 지나가고 최순실 일가가 적당히 형을 살다 나와, 다시 호가호위할 거라 생각하면 너무 무섭다”며 거절하더라.
ⓒ연합뉴스
2016년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 유출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참:
취재 중 만난 K스포츠재단 관계자도 그런 말을 했다. 최순실씨가 2~3년 징역을 살고 나와서 숨겨놓은 재산을 쓰면서 복수할까 봐 겁난다고 했다. 최씨와 일하다가 틀어져서 나가면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증언을 많이 들었다. 최순실씨가 ‘조폭’을 동원해 위협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그들의 이야기는 상상 속 공포가 아니다. 실제 겪은 일이다. 주변인 처지에서는 최순실씨 일가가 제대로 단죄받지 않을 경우의 두려움이 크더라. 그래서 한동안 입을 다물었고, 지금도 입을 다문 사람들이 있다. 내부고발자로 유명한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도 처음 검찰에 갔을 때는 ‘모른다’는 말만 했다. ‘박근혜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을 것이라고 보았다. 노승일 부장은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될 거 같다고 확신한 뒤에야 입을 열고 자료를 검찰에 제공했다.
송:취재하면서 직간접으로 접한 최순실씨는 어떤 사람 같았나?
그:다른 세계 사람! 지난해 10월 말부터 11월까지 ‘뻗치기(취재원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언론계 은어)’를 하며 최순실씨 건물이나 주변인 집을 찾아다녔다. 다들 장시호씨 얼굴조차 모를 때였다. <시사IN>이 단독 취재한 2014년 아시안게임 속 장시호씨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놓고선, 비슷하게 생긴 여자들에게 “장시호 혹은 장유진 아니냐”라고 묻고 다니기도 했다(웃음).
ⓒ시사IN 조남진
1월19일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검 사무실 건물 주변에 시민들이 응원글을 남기고 있다.
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줬던 정유라씨 초등학교 동창 아버지가 하는 회사 KD코퍼레이션 대표는 검찰에서 “최순실에겐 1000만원은 돈도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송:그래서 “2000만원은 줘야 한다”라고(웃음). 실제로 2000만원씩 2회, 1100만원 상당의 샤넬백을 선물했다.
송:최순실씨가 헌재에서 국회 소추위원들에게 언성을 높이면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게 충격이었다. 반성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정상 참작을 해줄지도 모르는데.
이:지켜보는 사람이 그 정도인데, 판단 주체인 헌재 재판관은 오죽할까. 대통령 탄핵 심판은 본인의 형사재판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다. 그런데도 뻣뻣한 태도로 모든 것을 부인했다.
그:그런데 최순실씨가 자기 재판에서 서증조사를 할 때 변호사 뺨치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최씨가 직접 증거 서류를 넘겨보다 변호사가 놓친 부분을 지적했다.
이:확실히 처음 재판받는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살면서 한번 가볼까 말까 한 법정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헌재에서도 ‘고영태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는 등 법조인처럼 말했다.
송:변호사가 한번 알려준 걸 잘 응용하는 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유리한 점을 잡아채거나 남의 약점을 공격하는 데 탁월한 것 같다.
ⓒ시사IN 신선영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야산에 있는 최순실씨 부친 고 최태민씨의 묘지.
이:
지금까지 나온 정호성 전 비서관의 녹취록 등을 보면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를 한 건 맞는 거 같다. 정무 감각은 있어 보인다.
송:그런 교활한 사람이 어떻게 이번에 딱 걸렸을까.
이:정권 잡을 때까지는 유능했던 최순실 일가가 막판에 탈탈 털렸다. 시작은 ‘정유라’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순실씨가 늦게 얻은 딸에게 무리수에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특혜를 주려다 일이 커졌다. 승마협회와 이화여대에서 구설이 시작됐으니까.
그:승마계 취재하다 들은 이야긴데, 정유라씨 대회를 보러 온 정윤회씨와 최순실씨의 태도가 대비됐다고 한다. 정씨는 승마장에서 조용히 지켜보다 가는데, 최씨는 안하무인이고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참:승마업계 관계자가 이런 말도 했다. 그런 엄마 밑에서 비호받으며 자란 정유라씨는, 말 타는 이들 사이에서 레벨이 다른 ‘귀족’이었다고 한다. 재벌 총수 가문인 양 행동했단다. 정유라씨는 다른 선수들과는 아예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송:이화여대 면접 때 정유라씨보다 점수가 더 높았던 지원자 두 명이 성적 조작으로 떨어졌다. 평범한 사람은 떨어졌을 때 ‘남이 더 잘했겠지’라며 속상하더라도 자신을 다독인다. 그런데 최순실씨 일가는 오로지 자기들이 이겨야 하고 이를 위한 특혜를 당연히 여겼다. 혼자만 다른 세상을 살려고 했다.
이:이번 취재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다. 취재 초기에 농담처럼 한 얘기가 나중에는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초기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여전히 가까운 사이인지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큰 뉴스였다. 최순실씨가 청와대 ‘보안손님’이라는 증언도 처음에는 ‘카더라’ 같아서 못 썼는데 나중엔 팩트였다. ‘설마?’ 했던 게 사실로 밝혀질 때가 많았다. ‘내가 이러려고 기자 됐나’ 자괴감 느끼고 괴로웠다.
송:국민연금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 관련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도 그랬다. 사실 맨 처음 든 생각은 ‘지나친 음모론은 경계해야겠다’ 정도였다. 삼성이 로비를 했다 해도 국민연금 관계자들에게 애국심에 호소하는 정도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는 했지만 박근혜·최순실씨와 삼성 간의 직거래 정황 증거가 상당하다.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1379개 최순실 파일’에도 직거래 관련 문건이 많이 담겨 있다. 이것이 대가성 없는 지원일까?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안종범 전 수석, 문형표 전 장관 등을 거친 지시와 실행이 있었다고 특검은 판단하는데, 이것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삼성은 명백한 증거가 나올 때마다 말을 바꿨다. 처음엔 정유라씨를 지원한 것 자체를 부인했다. 나중에 송금 내역이 나오자 승마협회 차원의 지원이라고 했다. 승마협회가 부인하자 승마협회 내분 때문에 선수(정유라)한테 직접 지원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지금 보니 모두 거짓말이었다. 삼성 고위 관계자가 기사 마감 직전에 전화해서는 1시간 동안 변명만 한 건데 시간 빼앗기고 마감도 늦어지고, 원망스러웠다(웃음).
이:이재용 부회장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확인했는데, 기사에 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 “어느 기업인이나 정부와 잘 지내려고 한다”라는 대목이다. 독대 자리에서 민원과 청탁이 오간다는 것을 어느 정도 당연시하는 뉘앙스로 들렸다. ‘김영란법’이 도입된 세상이다. 이런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승계와 연관된 민감한 사안이 걸린 시기였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박영수 특검팀은 유례없는 여론의 지원에 힘입어 진격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1월19일에는 특검 사무실로 꽃까지 배달됐고, 시민들이 응원 메모를 남겼다. 시민들의 응원 열기가 대단하다. 물론 특검 사무실은 보안 때문에 선물이 반입되지 않는다.
참: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이 거짓말을 하면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다. 이번에는 특검 요청 아래 국회가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전례를 보면 청문회 위증 고발이 들어오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가 필요해서다. 이번에는 달랐다. 여당이 분열하면서 1대4(새누리당 대 더불어민주당·바른정당·국민의당·정의당) 구도가 되어 가능했다.
송:김경숙 이화여대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만 했다. 교육부 감사 결과조차 부정했다. 오죽하면 감사관들이 청문회 도중 참고인으로 나와 “본인은 부인하지만, 그 외 다수 증인들의 증언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했다”라고 증언했을까.
참:결국 업무방해와 위증 혐의로 구속됐다.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너무 당당하게 했다.
그:정작 최순실씨는 그녀를 두고 ‘영혼이 맑은 분’이라고 했다.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의 증언이다. 물론 김경숙 교수가 최순실씨에게 너무 많은 청탁을 하자 나중에는 최씨가 ‘너무 욕심이 과하다’고 뒷말을 하기도 했다 한다.
참:최순실씨는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박헌영 과장에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웃음).
이:<시사IN>이 입수한 ‘최순실 파일’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노승일씨와 카카오톡에서도 “화합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정작 최순실씨는 사람을 쓰고 버리면서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렇게 버려진 사람들이 다들 가슴에 칼 하나씩 갖고 나타났다. 심지어 조카 장시호씨까지 최씨의 제2 태블릿 PC를 특검에 제출했다.
송:<시사IN>은 박근혜 게이트 관련 취재를 지난해 9월 말부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삼성과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사건의 파장이 미칠지 몰랐다. 취재할 게 적어도 걱정이고 많아도 괴로운 게 이번 사건이었다. 최순실 파일 1379개를 분석하고, 안종범 업무수첩 400페이지를 검토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자정 넘어서 퇴근했다.
그:박근혜 대통령이 첫 번째 대국민 사과를 하던 그 순간에도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최순실씨 태블릿 PC 보도가 국면의 변곡점이었다고 여겼지만, 정말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유출을 곧바로 인정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과거 패턴은 항상 되치기였다. 그래서 담화를 들으면서도 좀 멍했다. 그때부터 취재 경쟁이 더 심해졌고 기자로서 초조하고 조급해진 것도 사실이다.
참:처음에는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다. 취재를 하며 계속 궁금했던 게 풀리는, ‘돌파’의 순간이 오면 속이 시원했다. ‘뻗치기’를 하러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남양주, 수원, 춘천, 강릉…. 최태민씨 묘가 경기도 이천 어딘가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무작정 이천의 야산을 뒤지기도 했다(웃음). 지금 생각하니 얼굴도 모르는 분의 묘소를 어슬렁거렸는데, 그때는 진지했다. 결국 그 취재는 코미디로 끝나기는 했다. 알고 보니 이천이 아니라 용인이었다. 엉뚱한 곳을 뒤진 해프닝이었다.
이:로드무비 같다(웃음). 이제 남은 건 헌재의 탄핵 인용 여부다. 최순실씨는 헌재에서는 특검 핑계, 특검에서는 재판 핑계, 재판에서는 헌재 핑계를 대며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강제 출석 의무가 있는 재판 말고는 안 나가고 버텼다.
참:기자들 사이에서는 탄핵 인용은 당연하다는 분위기이고 언제 헌재가 결정을 내릴지 그 시점이 더 관심사다. 대통령 선거 일정과 연계되어 있으니까 아무래도 결정 시기에 관심이 더 간다.
그:이랬는데 설마 탄핵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송:그럼 또다시 ‘횃불집회’ 중계로 주말이 사라질 텐데. 헌재여, ‘저녁이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 않을 테니 ‘주말이 있는 삶’이라도 보장해달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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