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케빈 켈리 지음, 이한음 옮김, 청림출판 펴냄
미래학 가운데 거의 모든 책이 자신만의 예측 방법론과 통찰력을 과시하지만 대부분은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케빈 켈리는 몇 안 되는 예외 중 하나다. 출세작인 〈통제 불능〉(1994)은 미래 기술을 다룬 책으로는 터무니없게 출간 20년을 넘기고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단순한 기술 평론가를 넘어, 기술의 본질을 꿰뚫고 인간과의 관계맺음을 통찰하는 ‘기술 사상가’여서다. 신간 〈인에비터블〉은 기술 사상가로서 켈리의 진가를 보여준다. 책에서 그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대신 미래 기술이 따르게 될 불가피한(인에비터블) 경로 12개를 펼쳐 보여준다. 미래를 규정할 힘과 구조를 포착할 때에만 가능한 성취다.

마르크스를 위하여루이 알튀세르 지음, 서관모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첫 저작이자 대표작이다. 스탈린주의에 경도됐던 와중에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겪은 1990년대 한국 진보주의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출간 당시(1965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면 비판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 공산당은 “‘자본 대 노동 간의 경제적 적대성’이란 기본모순에 따라 필연적으로 공산주의가 도래한다”라는 묵시론적 믿음을 감히 ‘과학’으로 불렀다. 이런 스탈린주의를 ‘비과학적 목적론’이라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재정립하려 시도한 기획의 결과가 바로 〈마르크스를 위하여〉이다. ‘이론 영역에서 생산과 투쟁’의 기록은 지금 읽어도 눈물겹고 눈부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권김현영 외 지음, 정희진 엮음, 교양인 펴냄페미니즘은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의 동의어가 아니다. 이 만연한 오해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다. 사실상 양성평등은 전략적 구호에 가깝다. 남녀 간 위계를 비판하고, 적어도 공적 영역에서 조건의 평등을 보장할 것을 쉽게 설명하는 일종의 지향이자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담론은 반격(back lash)에 취약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여성혐오 국면을 통과하면서 여성주의는 성차별이 있는 현실을 다시 증명해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이 책은 여성운동의 바탕이 되어온 양성평등 개념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 또한 평등이 은폐하고 있는 여성의 이중 노동을 지적한다. 그 밖에도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젠더 이슈를 제시한다.

용서에 대하여강남순 지음, 동녘 펴냄인간은 ‘잘못하는 존재’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불완전은 인간의 조건과 현실이며, 그 때문에 인간과 용서는 밀접함을 갖는다. 1980년대만 해도 주로 종교의 영역에서 다루었던 이 주제는 이제 예술·정치·경제·철학·과학의 영역에서도 논의된다. 그러나 용서에 대한 단 하나의 정의는 불가능하다. 저자는 “‘무엇이 용서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용서가 아닌가’를 생각해보면 용서에 대한 포괄적 이해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한다. 책은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지, 왜 용서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용서인지, 언제 용서해야 하는지, 용서에 전제조건이 있는지 하는 여섯 가지 질문을 붙잡고 사유를 밀고 나간다.

그림에 나를 담다이광표 지음, 현암사 펴냄자화상은 과연 화가의 진짜 모습을 반영한 것일까? 현직 문화재 전문기자인 저자가 한국 근현대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자화상 감상법을 들려준다. 조선 시대는 ‘초상화의 나라’라 불릴 만큼 초상화가 흔했으되 자화상은 많지 않았다. 화가의 자의식 개념이 서양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두서, 강세황, 채용신 등 남아 있는 자화상은 당대의 시대상과 작가 내면을 은밀한 듯 파격적으로 내비친다. 근대 이후를 풍미한 나혜석, 이쾌대, 이인성 등의 자화상과 이들의 자화상을 비교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특히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에 매료당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그 미스터리를 추적한 4부를 놓치지 마시길.

섬박미경 지음, 봄날의책 펴냄섬에는 자주 못 가도 섬에 대한 책은 챙겨 읽는 편이다. 그런데 반가운 책이 눈에 띄었다. 필자의 ‘섬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섬의 불편한 사치를 즐길 줄 알고 섬사람들의 고요한 바쁨을 헤아릴 줄 아는, 눈 밝고 아량 있는 사람이었다.국사봉·형제봉·옥녀봉·깃대봉·시루봉 등 산 이름이 반복되듯 콩섬·팥섬·우도·마도 같은 큰 섬과 작은 섬의 이름도 반복된다. 콩만 하다 해서 콩섬, 더 작으면 팥섬, 소를 닮아서 우도, 말을 닮아서 마도다. 섬에는 소박하고 직관적인 상상력이 있다. 저자는 그들을 통해 우리 사고의 원형을 헤아린다. 섬을 다니며 사람도 얻었다. 함께 책을 읽어가며 섬을 탐험했던 사진가는 지금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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