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꼭 봐야 할 한국 소설 중에 〈순이 삼촌〉이라는 게 있어. 제주도 출신인 현기영 작가의 짧은 소설이야. 소설 속 순이 ‘삼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야. 제주도에서는 촌수가 애매한 먼 친척을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풍습이 있다고 해. 이 순이 삼촌은 제주 4·3 사건 와중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으로, 평생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그 죽음을 화제에 올리던 식구들 사이에서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캐야 한다고 누군가 열을 올리자 그때껏 제주도 사투리로 대화하던 주인공의 ‘고모부’가 말투를 바꾼다.

“기쎄, 조캐, 지나간 걸 개지구 자꾸 들춰내선 멀하간? 전쟁이란 다 기런 거이 아니가서?”

이건 평안도 사투리야. 고모부는 4·3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육지에서 보낸 진압군의 일원이었고, 북한 공산화 와중에 쫓겨나 남한에서 철저한 ‘반공’으로 무장하고 좌익들을 때려잡았던 서북청년단과 비슷한 길을 걸은 사람이었지. 그는 제주도 집안에 장가를 들어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지만 과거 자기 동류들이 저지른 학살 사건을 들추는 와중에 제주도 사투리로 덮어놓았던 평안도 말씨를 드러내고 말았던 거야. “서청(서북청년단)이 와 부모 형제들 니북에 놔둔 채 월남해 왔갔서? 하도 뻘갱이 등쌀에 못 니겨서 삼팔선을 넘은 거이야. 우린 뻘갱이라문 무조건 이를 갈았디.”

ⓒ연합뉴스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 중령이 제주경찰국 성산포경찰서장 앞으로 보낸 학살 명령 공문과 이를 거부한 문형순 서장의 사진.
그 영혼 없는 분노 앞에서 제주도민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어. 태반이 기독교인이었던 서북청년단은 공산당을 악마로 생각했고 사람의 몸에 죽창을 찌르면서도 ‘하나님’을 부르짖었지. 그 광기 어린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소설 속 ‘고모부’의 평안도 사투리가 어떻게 들렸을지는 설명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조선 중기 사람인 이중환은 〈택리지〉라는 책에서 평안도는 조선 팔도에서 인심이 좋기로 으뜸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고, 아빠도 개인적으로 여러 사투리 가운데 가장 구수한 사투리로 평안도를 꼽건만, 적어도 1948년의 제주도 사람들에게 평안도 사투리는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공포의 언어였지. 제주도에 나타난 평안도 사람 가운데 문형순이라는 이가 있었어.

그는 평안남도 안주 출신이야.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나와 독립운동을 했던 그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공산당이 싫어서 그랬는지 남하하여 경찰에 투신하고 제주도에 배치를 받아. 4·3의 불길이 제주도를 뒤덮던 즈음 그는 모슬포지서장이었어. 어느 날 해당 지역의 좌익 지도자가 체포되고 좌익 조직 명단이 당국에 입수됐어. 모슬포 사람들은 음산한 명령을 받지. “공비들을 도운 사람들은 알아서 자수하라. 우리에게는 명단이 있다.” 그건 자수하면 살려준다가 아니라 제 발로 와서 죽으라는 얘기였어. 공비들이래야 다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에게 옷 한 벌 내주지 않은 사람도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갔지. 자수해도 죽고 안 해도 죽고. 그때 마을 사람 몇몇이 모슬포지서장을 찾아갔단다. 문형순 지서장은 자수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막상 마을 사람들이 무더기로 지서를 찾아갔을 때 지서에는 서북청년단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어. “이 빨갱이덜 어서 오라우.” 그들은 사람들을 죽일 조서를 꾸미기 시작했는데, 마치 영화처럼 문형순 지서장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뭣들 하는 거이야. 이 사람들은 자수하러 왔서! 다 나가라우. 썩 나가라우.” 그리고 마을 서기로 하여금 마을 사람들의 자수서를 받게 해. 경찰이나 서청 단원이 받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알아서 입을 맞추고 뺄 건 뺄 수 있도록 말이지. 그렇게 문형순 지서장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렸어. 이후로도 문형순 지서장은 누가 빨갱이라거나 공비 협조자라거나 하는 밀고가 들어오면 오히려 호통을 쳤다는구나. “그 말에 책임질 수 이서? 아니래문 네레 처벌될 거이야.” 문 지서장이 버티고 앉았던 즈음, 모슬포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할 수 있었어.

ⓒ시사IN 이명익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월9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게이트’ 국정조사 7차 청문회에 출석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문형순 지서장의 별명은 ‘문도깨비’였다고 해. 경찰 법규 같은 것에는 좀 어두웠지만 독립군 경력에, 나이도 다른 경찰 간부보다 훨씬 많은 중년이었지만 힘이 장사였고 군인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깡다구’를 지닌 사람이었다지. 그는 성산포경찰서장으로 재임 중 6·25 전쟁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는 좌익 혐의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이끌어주겠다며 만든 ‘보도연맹(保導聯盟)’ 가입자들에 대한 대학살을 전개한단다. 전국적으로 수십만, 많게 보는 이들은 100만까지 추산하는 희생자들이 골짜기로, 바다로, 동굴로, 폐광으로 끌려가서 소리 없이 죽임을 당했지. 제주도에도 어김없이 좌익 혐의자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어. 지금도 그 명령서가 남아 있단다.

“본도에 계엄령 실시 이후 현재까지 귀서에 예비구속 중인 D급 및 C급에서 총살 미집행자에 대하여는 귀서에서 총살 집행 후 그 결과를 9월6일까지 육군본부 정보국 제주지구 CIC 대장에게 보고하도록 의뢰함.” 의뢰의 대상은 ‘성산포경찰서장 귀하’였어. 즉, 왜 아직 안 죽이고 있느냐. 어서 죽여버리고 보고하라는 명령이었지. 이때 문도깨비 문형순 서장은 경찰은 물론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에게 길이 귀감이 될 문구 하나를 남겨. “不當(부당)함으로 不履行(불이행).” 즉 부당한 명령이니 따를 수 없다는 것이었지.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세상에 알린 공무원

사람 목숨이 파리만도 못하던 시절이었어. 빨갱이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서슬 앞에 공산당에게 인정이라도 베풀었다가는 같이 빨갱이로 몰려 총구 앞에 설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 그러나 문도깨비 문형순 서장은 고개를 저었어. 상명하복(上命下服)은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 조직의 당연한 불문율이야. 그러나 문 서장은 국민의 생명을 빼앗으라는 부당한 명령은 따를 수 없다는 감동적인,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정말 진귀한 ‘선언’을 한 거야. 그는 ‘부당함으로 불이행’을 휘갈긴 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내레 국민을 디키는(지키는) 사람이디. 암 기렇구말구.”

요 몇 달 동안 한국 사람들은 극심한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지.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비선 실세에 휘둘리고 그 일당들이 온통 곶감 빼먹듯 나랏돈을 빼먹고, 그야말로 안 되는 일 없이 세상을 휘저을 수 있었던가 말이야. 그리고 그 기저에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충성스러운’ 협조가 있었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돈을 모으라면 모으고, 재단을 만들라면 만들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면 하고, 안 되면 되는 방법을 만들어 깔끔하게 ‘지시를 이행’하던 사람들 말이야. 문형순 서장처럼 “부당하므로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공무원들이 드물었다는 것이야말로 드라마에도 나오기 힘든 황망한 일들이 버젓이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거야. 제주도에서, 그리고 남한 지역 곳곳에서 수십만의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또 노래했듯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단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굴하지 않고, 제 한 몸의 안위와 명령에 따른다는 얄팍한 핑계 뒤로 숨지 않고, 부당한 명령은 따를 수 없다고 외친 문도깨비 문형순이라는 이름의 촛불이 귀하디 귀한 이유다. 아울러 이번에 화제가 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배포하면서 그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이를 세상에 알린 이름 모를 공무원도 마찬가지겠지. 함께 그들에게 고마워하자꾸나. 그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어둠 속에 침몰하지 않은 거니까.

기자명 김형민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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