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대통령 선거에 이어 경제 민주주의가 다시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지금 논의되는 ‘경제 민주주의’는 유감스럽게도 ‘주주를 위한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소수 주주(minority shareholders)와 기업사냥 펀드 등 주주들을 위해 기업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소수 주주는 ‘뜨내기 소유자’일 뿐이다. 영어로도 소유주(stock owners)가 아니라 ‘주식 보유자(shareholders)’라고 부른다. 소수 주주들은 기업으로부터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얻으면 그만이다. 주가가 하락하거나 그럴 조짐이 보이면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나버린다. 소수 주주들이 기업 경영에서 큰 권력을 갖게 된다면, 투기성과 약탈성이 기업 세계 및 국민경제를 지배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자와 하청 중소기업들은 더욱 불리한 처지로 내몰릴 것이다.

‘주주를 위한 민주주의’는 귀족 민주주의다. 2014년 10월 최재성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12년 배당소득·이자소득 100분위 자료〉를 살펴보면, 5200만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1.8%인 88만명이 전체 주식(내국인 소유)의 93.4%를 소유하고 있다. 현재 정치권이 국회에서 ‘촛불 입법’ 과제로 요구하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경제 왕당파’ 즉 최상위 0.001%의 재벌 일가들이 독점해온 제왕적 경제 권력을 ‘경제 귀족파’인 1.8%의 부유층 재산가들에게 넘기자는 제안일 뿐이다.
 

ⓒDPA2016년 3월18일 베를린에서 독일 노동조합연합(DGB)이 남녀 동일 임금 요구 집회를 열었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여야 의원들은 이런 소수 주주들에게 대주주(재벌 일가)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당 기업에서 수년~수십년 동안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어떤 제안도 내놓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고 새로운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되더라도 매일 출근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노동자들이 노예처럼 취급받는다면? 돈 많고 자본 있는 자들의 ‘갑질’이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 ‘헬조선’의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회사 정문 앞에서 정지한다”라는 유명한 격언처럼 말이다.

‘직장 민주주의’가 바로 진짜 경제민주화다. 선진국에서는 산업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산업 민주주의는, 기업주에 대해 종업원·노동자의 권리를 드높여 기업의 통치 구조와 그 운영에서 1인1표 민주주의를 관철하는 시스템이다. 직장 밖에서도 1인1표 원칙의 산업별 노동조합과 복지국가를 만들어 노동자·서민들도 부자들에게 기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다수의 유럽 국가에서는 노동자들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부장급 이하 전체 종업원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의원이 경영 정책을 결정하는 이사회에 이사 자격으로 출석하는 방식이다. 독일에서는 1940년대 말부터 ‘노사 공동 결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감독 이사회의 절반이 주주 대표이고 다른 절반은 노동자·직원 대표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노동자·직원 대표가 이사회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소수 주주들은 주가가 떨어지면 해당 기업을 떠난다. 이런 주주들의 대표가 참석하는 이사회에, 해당 기업과 운명을 함께하는 노동자 대표가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시사IN 신선영경남 거제의 한 공단에서 1차 협력업체의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경제 민주주의가 ‘주주 민주주의’가 아니라 ‘산업 민주주의’ 형태로 실현되어야 할 다른 이유도 있다. 그래야 대기업의 하청기업 및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근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이 한때 유력 대통령 후보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의 ‘삼성 동물원’ 발언이었다. 삼성SDS 같은 재벌계 IT 서비스 회사들이 소프트웨어 개발 하도급 거래에서 하청 중소·벤처기업들을 혹독하게 쥐어짜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하청업체 직원들이 저임금에 잠도 못 자며 하루 15시간씩 일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안 의원은 이런 현상이 결국 ‘못된 재벌 탓’이라고 비난했다. 청중들은 삼성 동물원 비판에 열광하면서 안철수를 일거에 ‘경제민주화의 슈퍼스타’로 부상시켰다.

하지만 설령 안철수 의원이 2017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선출된다 하더라도 IT 업계에 만연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없애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낮은 하청 단가를 규제한다 해도, 수많은 하도급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더 낮은 하청 단가’로 일감을 얻으려는 행위를 근절하기 어렵다. 경쟁 시장 원리를 정부가 원천 봉쇄하기란 불가능하다.

더욱이 하청 단가 규제 및 ‘대·중소기업 간 이익·성과공유제’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월급 200만원 이하인 1000만 봉급생활자(전체 취업자의 절반)의 처지를 개선하기는 힘들다. 설사 중소기업의 수익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 돈이 모두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에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압도적 다수의 한국 중소기업과 영세기업, 식당·카페 등에서는 인권과 노동권이 야만적으로 유린되고 있다. 늘어난 중소기업의 수익은 고스란히 업주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불공정 하청 규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것이 아니라 직접적이고도 본질적인 해법을 사용해야 한다. 현행 노동법을 철저히 지키는 한편 인권·노동권을 획기적으로 신장하는 방법이다. 새 대통령과 국회가 나서서 중소·벤처기업 및 영세·소기업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이 좀 더 쉽게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돕고 산업별 단체협상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52시간 이상 근무’를 예외 없이 금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중소·벤처기업에 만연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저지하는 ‘산업 민주주의’가 확립되면 비로소 IT 업계의 전체적 구조 개편과 기존의 반인권적 관행들이 사라질 것이다.

새 정부 ‘산업적 시민권’ 보장에 주력해야

재벌 개혁 및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에 국한된 경제민주화보다 훨씬 넓고 깊은 경제 민주주의가 절실하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와 복지 격차를 넘어서려면 프랑스 대혁명이 제시한 세 번째 가치인 ‘형제애’ 정신을 가지고 고임금의 대기업 노동자와 저임금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이 하나의 가족, 하나의 형제·자매처럼 단결하고 상부상조하는 업종별 연대 및 지역별 연대, 전국적 연대의 정신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사회연대를 보장하는 법 제도가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 형제애(fraternity)의 3대 가치가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경제 영역,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보장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 수 있다.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에서는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 같은 국가정책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 나라의 대기업들이 착하고 자비로운 천사라서가 아니다. 유럽에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화를 차단하는 제도들이 발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산업별·지역별 노동조합과 산업별 단체협상의 법적 의무화, 그 협상 결과의 의무적 적용, 복지제도 등이 그것이다.

2017년에 집권할 새 대통령은 노동권과 노동조합권을 획기적으로 신장하는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 보장에 주력해야 하며 법적 최저임금 역시 계속 높여나가야 한다.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에 집권한 미국 민주당 루스벨트 대통령, 같은 시기에 집권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페르 알빈 한손 총리, 그리고 히틀러 나치당의 패망 이후 독일 민주공화국이 그렇게 했다. 이것을 그들은 경제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주주를 위한 민주주의’로 편향되어 있는 한국의 경제 민주주의 논의 역시 세계사적 보편성을 지닌 진짜 경제 민주주의 쪽으로 지향을 바꿔나가야 한다.

기자명 정승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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