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자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대권 주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주자들은 대중과 최대한 접점을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물밑에서는 실무진 확보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 레이스에 난감한 문제가 있다. 결승점이 명확하지 않다. 대선 일정이 불투명한 초유의 정국에서 주자들은 언제 타이어를 바꿔 끼우고, 연료를 어떻게 보충할지, 어느 타이밍에 스퍼트를 내야 할지 미리 계산할 수가 없다. 지지율이 뒤지는 후보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이제 막 경선 국면에 접어든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사정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안정적인 1위를 확보한 가운데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이 뒤쫓는 형국이다. 1월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전국 1007명 대상, 응답률 19%,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에 따르면, 문 전 대표는 지지율 31%로 여야를 통틀어 확실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12%를, 안희정 지사는 6%를 기록했다. 박원순 시장과 김부겸 의원은 여야 전체 상위 8위 내에 들지 못해 조사에서 누락되었다.

ⓒ연합뉴스이재명 성남시장은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한 ‘우산론’을 폈다가 지지율이 하락했다.

문재인 대세론이 공고해지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비율은 62%에 이른다. 한 달 전 같은 여론조사(2016년 12월9일 발표)에서 민주당 지지층 중 문재인 지지율은 44%였다. 당시에도 당내 1위였지만, 쏠림이 더 심해졌다. 고착화 국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월13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41%였다. 2위 새누리당(12%)보다 세 배 이상 높다. 문 전 대표는 1위 정당의 1위 후보라는 안정감을 얻었다. 대선 일정이 불확실해지면서, 후보의 ‘안정감’은 야권 지지층에게 유인 동기가 되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확실한 상대 앞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은 대상에게 지지를 몰아주는 흐름이다.

후발 주자들은 판을 흔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문 전 대표와 각을 세우고 깎아내릴수록, 지지율이 빠진다. 그렇다고 차별성을 부각하지 않는다면, 격차는 고착되고 만다. 최근 이 딜레마를 가장 극적으로 경험한 인물이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재명 시장은 지난해 12월1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우산론’을 꺼내들었다. 문재인-반기문-이재명 3파전 전망까지 나올 만큼 지지율 상승에 탄력을 받던 시기였다. 당시 이 시장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같은 우산을 쓰고 그 안에서 경쟁하겠다. 안 지사 우산에도 가보고 김부겸 의원 우산에도 들어가보고, 결국 다 합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반문 연대 선언’으로 간주되면서 파장이 컸다.

문재인 공격하면 지지율 빠져

결과를 보면 환호보다 반발이 컸다. 안희정 지사는 이날 공개적으로 “유감이다. 대의도 명분도 없는 합종연횡은 작은 정치이고 구태 정치다”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시장은 곧바로 자신은 ‘반문 연대’를 주장한 바 없다고 해명했지만, 지지층에는 균열이 생겼다. 2016년 12월9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시장의 전체 지지율은 18%, 민주당 지지층 내 지지율은 27%였다. 그러나 한 달 새 전체 지지율은 12%로, 민주당 지지층 내 지지율은 16%로 줄어들었다. 캠프 내부에서도 ‘반문 프레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다. 이재명 시장을 돕는 한 의원은 “이재명 후보가 반문의 거점이 되면 곤란하다”라며 전략상 내부 이견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연합뉴스안희정 충남지사는 “차차기라는 말을 거두어주십시오”라며 적극적인 권력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이재명 시장의 메시지 강도는 다소 누그러졌다. 1월13일 민주당 광주시당을 찾은 이 시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문 대표가) 다른 얘기 다 하면서 법인세 증세 얘길 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내용을 바꿔서 증세 주장에 동의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아직 답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문 전 대표 ‘자체’가 아니라 문 전 대표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우회한 것이다.

반면 박원순 시장은 이재명 시장과 정반대 경향을 보인다. 최근 들어 더 적극적으로 ‘반(反)문재인 기조’를 앞세우고 있다. 1월 2주차부터 본격화했다. 박원순 시장은 1월8일 전북 전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당의 분열을 불러온 문 전 대표는 적폐 청산의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 없다”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파상 공세는 계속됐다. 광주를 찾은 1월11일에는 “호남이 2012년 대선에서 90% 이상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대선에서 이기지 못했다”라며 대선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특히 박 시장은 “참여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이 호남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고 분열로 이어졌다”라며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당시 당 대표 후보가 문재인 당시 후보를 상대로 제기한 논리를 재차 꺼내들었다.

박 시장의 강도 높은 비판에 당내 인사들은 물론 시민사회계 인사들까지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개헌이나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 문제에 이견을 보인 적은 있어도, 호남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말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갑자기 박 시장의 비판이 격해져서 당혹스럽다. 당내에서는 박 시장이 이러다 탈당까지 선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 캠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1월10일 전후로 캠프 내부에서 ‘문재인 대선 불출마’ 요구를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만류해 그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파국까지 흘러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의 이 같은 선택은 판을 흔들지 못하면 차이가 굳어진다는 절박함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1월9일부터 박 시장 측에서 던진 승부수는 크게 세 가지다. 당내 주류-비주류 갈등에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가하고(1월9일), 문 전 대표의 ‘취약 지역’(호남)을 공략하며(1월11일), ‘경선 룰’ 결정 과정에서 주도권을 가져온다(1월12일)는 것이다.

ⓒ연합뉴스박원순 서울시장(왼쪽)은 최근 가장 높은 수위로 문재인 전 대표를 공격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이 ‘경선 룰 세팅’이다. 당초 경선 주자 대리인이 1월10일 경선 룰 협의를 갖기로 했는데, 박 시장 측에서 대리인을 보내지 않아 회의가 무산됐다. 이틀 후 박 시장은 ‘촛불공동경선’이라는 독자적인 경선 룰을 제안했다.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과 시민사회 대표가 참여해 광장에서 경선을 시행하자는 것이다. 박 시장 측은 야권 전체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시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1월13일 이 안에 대해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은 연구해봐야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반면 안희정 충남지사는 ‘친문-비문’ 구도는 일단 피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재명 시장의 ‘반문 연대’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시점부터 이 기조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차차기설’이다. 문재인 대표와 각을 세우지 않고 페이스메이커 구실을 하며 다음 대선을 준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1월3일 안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차차기라는 말을 거두어주십시오”라며 “분명히 말씀드린다. 저는 19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도전한다”라고 강조했다. 1월12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사람 이름 하나(문)를 두고 그 사람 중심으로 패거리 잡듯이 표현하는 것에 대해 현실 정치인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희정·김부겸, 정책 차별화 전략

‘그렇다면 문재인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안희정 지사는 중요 정책 공약에서 차이를 보이는 방법을 택했다. 최근 주목받은 ‘한·미 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협상 유지’가 대표적이다. 안 지사는 1월11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한·미 정부 간 협상을 통해 결정한 것(사드 배치)은 그것대로 존중하겠다”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 문제는 다음 정부에서 재검토한다는 당론과 배치되는 발언이자,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문재인 전 대표와도 다른 시각이다.

일종의 승부수로 읽힌다. 안 지사는 사드 배치 문제로 논란이 일던 지난해 9월12일, 충남도청 기자간담회에서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라며 반대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지지층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는 문제다.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외교·안보 이슈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를 보이고, 중도층을 포섭하려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야권 내 반발이 거세지자 안희정 지사는 1월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사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임 정부가 국가 간에 이미 협상해놓은 걸 이제 와서 뒤집는다는 건 쉽지 않다”라고 썼다.

김부겸 의원은 일찌감치 개헌을 강조하며 문재인 전 대표와 노선 차이를 보였다. 그렇다고 섣불리 문 전 대표에 대해 날선 비판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니다. ‘반문 연대’ 논란 당시에도 김 의원은 이재명 시장의 주장과 거리를 두려 했다. 그러나 이번 민주연구원의 ‘개헌 저지 보고서’ 논란에는 크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이 특정 후보(문 전 대표)에게 유리한 보고서를 올린 것이 공정성을 해쳤다는 이유다.

ⓒ연합뉴스김부겸 의원(오른쪽)은 ‘야권 개헌연대’에 집중하고 있다.

김 의원은 당 지도부를 비롯한 주류와는 각을 세우되, 야권 연대와 연정이라는 ‘확장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그는 개헌을 고리로 야권이 단일화에 나서는 일종의 ‘야권 개헌연대’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김부겸 의원의 의도와 달리 개헌 관련 논의가 당 지지층으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른정당, 손학규 전 대표 등 당 외곽에서 ‘제3지대’를 표방하는 이들이 개헌을 고리로 연대를 추진 중이라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김부겸 의원은 ‘제3지대 개헌론과는 다르다’고 강조하지만, 민주당 지지층 상당수에서는 자연스럽게 ‘개헌파’에 대해 불안감이 퍼져 있는 상황이다. 당내 지지층 확보가 쉽지 않다.

이재명 시장, 안희정 지사, 박원순 시장, 김부겸 의원이 가진 딜레마는 결국 조기 대선과 불확실한 일정에서 비롯됐다. 각 후보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넉넉한 시간과 확실한 일정이다. 전략적인 승부수를 띄우고 싶어도 시점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결국 고착화된 구도에서 조금이나마 판을 뒤흔들기 위해서는 잡음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이 잡음이 지지층에게 얼마나 용인되느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현 정당 지지율과 지지층 구성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해 한 조사기관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적이 있다. 1위가 ‘계파 갈등’이었다. 지지율 40%대까지 확대된 현 지지층은 더더욱 내부 갈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잡음을 만드는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형국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전 대표를 추격하려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은 내부 갈등을 고깝게 보는 지지층의 정서까지 극복해야 한다는 추가 부담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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