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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엉뚱한 ‘할랄’ 사업, 차은택 머리에서 나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할랄’ 시장을 겨냥한 사업을 많이 벌였다. 국정 농단의 한 축인 차은택씨의 아이디어를 실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예산 낭비가 많았다. 할랄 인증이 필요 없는 수산물에도 8억7000만원을 집행했다.

특별취재팀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1월 20일 금요일 제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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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주진우·차형석·천관율·김은지·김동인·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VIP(대통령)’ 지시 사항으로 ‘할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아랍어로 ‘허용된 것’을 뜻하는 할랄은 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을 말한다.

안 전 수석이 ‘12-11-15 VIP-②’라고 쓴 메모를 보자. 2015년 12월11일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기록했다는 의미다. 이 페이지의 첫 번째 항목은 ‘1. 미 금리인상 대비책’이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가 양적완화를 끝내고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것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놓고 대비책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대비책을 몇 가지 거론했고, 안종범 전 수석은 이를 하위 항목으로 기재했다. 여기에 ‘할랄’이 처음 등장한다. ‘5)할랄+문화’라는 대목이다. 이 메모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할랄 시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따로 있었다. 바로 차은택씨다. 미르재단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할랄 식품에 관한 정책이 대대적으로 나오기 훨씬 이전에 차은택씨가 중동에 다녀온 뒤 할랄 푸드 이야기를 자주 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5년 3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의 그랜드 모스크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아랍 여성들에게 스카프에 해당하는 ‘쉴라’를 착용했다.

차은택씨는 지난해 12월7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2014년 8월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지역에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며 안종범 경제수석이 한류 쪽 대중문화 자문을 좀 해달라고 해서 같이 갔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차씨가 아랍에미리트 현지에서 안 전 수석과 만난 정황을 확보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할랄 정책 지시도 ‘차은택→최순실→박근혜→안종범’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밟았다. 박 대통령은 ‘할랄’이라는 단어를 다양한 분야와 관련해 언급했다. 안 전 수석이 2016년 2월28일 ‘VIP(대통령)’ 지시라며 쓴 메모에는 ‘할랄 식품-축산품 처리, 주요국 상태’에 이어 ‘할랄 환경 one-stop 정보 제공 창구’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할랄 정보 종합 디렉토리 구축, 할랄 시장 수출 매뉴얼 마련, 온·오프라인 할랄 데스크 설치를 추진했다.

2016년 3월28일 대통령 지시 사항 메모에는 ‘강원도 최문순 지사 할랄 town 백지화→타 지역 사전 준비 ex)일산, 충북. 화장품’이라고 쓰여 있다. 지난해 3월24일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기독교계의 반대에 부딪혀 강원도 할랄타운 사업을 백지화하자, 다른 지역을 사전에 준비하라는 의미다.

예산 95억원 책정했다 제대로 집행도 못해


2016년 4월16일 대통령 지시 사항 메모도 ‘1. 할랄 관광, 아랍인-의료 서비스 비 의료 서비스. 고용복지 비자 연장 신청, 할랄 음식, 할랄 식당. 아랍인 선호 관광 코스 개발, 삼성·아산 병원? 음식 제공 수출 높게→할랄 기업과 연계해서 인증과 위생 상태 점검. 할랄 식품 연계+관리 철저→안심+정부 감독. 할랄 관광 성공 유치, 정서 친화적’이라고 적었다. 꼼꼼하게 할랄 관련 지시를 한 것이다. ‘할랄 관광’ 차원에서 아랍인에 대한 의료 서비스와 비의료 서비스(할랄)를 제공하는 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의료 관광의 일환으로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이 결합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어지는 메모는 ‘2. 할랄 식품. CJ, 문화융합센터-미르’다(아래 사진).

안종범 전 수석의 2016년 4월16일 메모에 할랄 관광 사업과 할랄 푸드 사업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차은택씨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할랄 사업에는 실제 100억원 가까운 예산이 책정됐다. 준비되지 않은 채 예산이 먼저 투입되다 보니, 관련 법안 충돌로 다 사용하지도 못했다. 지난해 10월26일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할랄 사업 예산으로 책정된 95억원 가운데 사용액은 24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55억원이 편성된 할랄 인증 도축·가공시설 건립사업은 현행 동물보호법과 충돌하고 구제역이 우려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엉뚱한 데 할랄 예산을 쓴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해양수산부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수산물 할랄 지원에 8억7000만원 예산을 집행했다. 수산식품 할랄 인증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품이 ‘김’이었는데, 김은 할랄 인증지원 사업 이전부터 무슬림 국가로 수출되는 효자 품목이었다. 수산물은 이슬람 문화에서 이미 허용하고 있는 식품이다. 코란에도 “바다에서 잡은 것은 모두 너희의 음식으로 허용되느니라(5:96)”라는 구절이 있다.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차은택씨를 ‘차 감독’이라고 불렀다. 2015년 7월19일 박 대통령의 지시를 기록한 메모에도 ‘차 감독 예산. 융합센~. 박명성 cross check’라고 적었다. ‘문화창조융합센터장 겸 본부장 차은택 감독과, 뒤를 이어 문화창조융합본부장를 맡았던 차씨의 측근 박명성씨에게 상호 확인해보라’는 의미다.

‘차 감독’은 최순실 일가가 차은택씨를 부를 때 사용했던 호칭이다. 최순실씨의 집에 같이 산 적이 있는 한 인사는 “처음에 자기들끼리 차 감독, 차 감독 그래서 누군지 몰랐다. 그런데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테스타로싸 카페에서 노트북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작업하던 남자를 차 감독이라고 소개해줬다. 싸이의 ‘행오버’ 뮤직비디오를 찍은 유명한 CF 감독이라고 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차 감독이 차은택이었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씨가 차은택씨를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차은택씨는 2014년 8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최순실씨의 영향력을 업고 박근혜 정부 ‘문화계 황태자’로 불렸다. 위촉된 지 한 달 만에 인천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영상감독을 맡았다. 2015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문화융성을 담당한 문화창조융합본부장에 올랐다. 2015년 5월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전시도 총괄 기획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문체부 출신 관계자는 “‘차은택이 봐주면 (윗선에) 통과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문체부에서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다들 차은택에게 들고 갔다. 차은택도 거절을 안 하고 다 봐주다 보니 그에게 일이 너무 몰려서 안에서도 이야기가 나왔다”라고 말했다(<시사IN> 제475호 ‘차은택이 봐주면 간택되었다는데’ 기사 참조). 차씨는 지난해 12월7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최순실씨가 먼저 장관 몇 분을 추천, 알아봐달라고 요청해와서 문화 쪽은 제가 추천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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