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주진우·차형석·천관율·김은지·김동인·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자가줄기세포는 안전성이 입증됐다. 임상실험 진입장벽 낮춰라.”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확한 의학 정보를 근거로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의료정책을 지시했다.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이 같은 지시가 확인되었다.

안종범 업무수첩 ‘3-2-16 VIP’(2016년 3월2일 대통령 지시 사항을 받아 적은 메모라는 뜻이다)에는 ‘3. 신약 개발 활성화’라는 제목 아래 일련의 메모가 있다. ‘임상실험 진입장벽 완화-사람 대상 실험해야.’ 그리고 화살표로 이어진 메모가 나온다. ‘자기줄기세포는 안정성 입증.’ 자기줄기세포는 ‘자가줄기세포’의 오기로 보인다(그림 1).

 

자가줄기세포의 안전성이 입증되었다는 대통령 발언이 적힌 안종범 전 수석의 메모(오른쪽)와 임상실험에 부작용이 나오면 전향적 자세로 대처하라는 대통령 지시 사항(위).

 

 

사실일까. 위험관리 전문가인 인하대병원 황승식 교수(예방의학)가 메모를 검토했다. “사실로 볼 수 없다. 현재 줄기세포 치료의 근본 난점은, 줄기세포 분화의 원리를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몸속에 들어가서 어떤 식으로 분화할지 통제할 수 없으므로, 지금 지식 수준으로는 부작용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한국 식약처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실제 연구를 하는 전문가의 의견도 비슷하다. 오일환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한국줄기세포학회 회장 출신이다. 오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가줄기세포든 다른 몸에서 나온 줄기세포든 감염이나 종양 등 부작용 가능성은 같다. 단지 면역 거부반응이 없다는 정도만 차이가 있다. 대통령의 말은 몇 년 전 ‘알앤엘바이오’라는 업체가 주장해서 유명해진 얘기다. 그 업체가 자가줄기세포는 안전하다는 논리를 많이 퍼뜨렸다.”

‘알앤엘바이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법 줄기세포 시술을 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업체다. 최순실씨가 2012년 11월 알앤엘바이오에 700만원을 송금한 기록이 윤소하 정의당 의원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알앤엘바이오 라정찬 회장은 배임, 관세 포탈, 무허가 의약품 판매 혐의 등으로 고발되어 2015년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줄기세포는 여러 기능을 가진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다. 연구가 진전될 경우 신경이나 심장근육과 같이 거의 재생되지 않는 부위에 줄기세포를 넣어 재생을 유도하는 치료법이 기대받고 있다. 크게 배아줄기세포, 유도만능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로 나뉜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자가줄기세포는 성체줄기세포의 일종으로, 자신의 몸에서 추출한다.

일반적으로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보다 치료 효과의 잠재적 기대치가 처지는 대신 더 안전하다고 본다. 하지만 안전성이 입증되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견해다. 독일과 일본 등에서는 자가줄기세포 치료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사망 사고가 보고된 바 있다. 또한 치료 효과에 대해서도 신중한 전문가들이 많다. 오일환 교수는 “새로운 치료법은 안전성도 중요하지만 더 충족하기 어려운 것은 효과성이다. 대규모 임상실험을 통해 실제로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성체줄기세포 치료는 이 단계를 거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람 목숨 달린 문제에 전향적 자세를 가져라?

이어지는 메모는 대통령 지시 사항을 이렇게 쓴다. “임상실험 예기치 못한 부작용 나오면→새로운 접근으로 전향적 자세로 대처(그림 2).” 부작용이 나오더라도 후퇴하지 말고 정책 추진을 지속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황승식 교수는 “이게 정확히 줄기세포 치료 산업화를 노리는 이들의 논리이고, 예전 황우석의 논리였다. 줄기세포 임상실험 부작용이라면, 심하면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다.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전향적 자세’를 가지라고 지시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4-17-16 VIP’ 메모를 보자. 안 전 수석이 2016년 4월17일자 대통령 지시 사항을 담은 메모다. 박 대통령은 바이오 분야 개척을 언급하면서 ‘황우석 트라우마 극복 필요’라고 지시한다.

 

 

 

 

ⓒ연합뉴스2016년 10월28일 박근혜 대통령이 고양시 킨텍스에서 군의 원격의료 진료를 지켜보고 있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의 줄기세포 정책은 대단히 ‘전향적’이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줄기세포 규제 완화를 지시했다. 정책 변화의 최대 수혜자로 차병원그룹이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 주사제 대리처방 의혹을 받은 ‘차움’이 차병원그룹 소속이다. 지난해 1월 보건복지부 등 6개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는 이례적으로 민간 연구소인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진행됐다. 차병원그룹 산하 종합연구소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빗장이 풀렸다. 2016년 5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차병원 연구팀이 제출한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계획을 조건부 승인했다. 2009년 차병원 연구팀 이후 7년 만이다.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서는 연달아 ‘첨단재생의료의 지원 및 관리에 대한 법률’이 발의된다. 사실상 정부의 청부 입법으로 간주된다. 이 법안은 줄기세포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 검증을 완화해 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법안 취지가 ‘임상실험 장벽 완화’라는 대통령 지시 사항과 일치한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계류 중이다.

2016년 3월에 줄기세포 메모를 남긴 안종범 전 수석은 당시 경제수석이었다. 줄기세포 관련 정책은 고도의 의학적 전문성과 다양한 전문가의 토론이 요구되는 분야다. 그런데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계통도 엉뚱한 경제수석에게 지시를 했다. ‘박근혜 게이트’의 흐름을 보면,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에게 ‘민원’을 넣으면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안 전 수석은 사실상 업무 영역과 무관하게 여러 지시를 수행한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줄기세포 외에도, 안종범 전 수석은 의료 관련 지시를 자주 받았다. 지난해 4월11일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바이오시밀러 산업을 정부가 적극 뒷받침하라”고 지시한다. 바이오시밀러란 의약품 분야에서 주로 특허가 만료된 복제약을 대량생산하는 산업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삼성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해 육성 중인 분야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특히 원격의료와 관련한 대통령의 지시를 여럿 담고 있다. 2015년 1월5일에는 원격의료를 ‘노인 인구 많이 사는 지역→시범 실시’하라고 대통령은 지시한다. 지난해 4월11일에는 ‘군인 원격의료 성공’을 자평한다. 지난해 7월20일에는 대단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등장한다. 이날 대통령은 ‘한의학’ 관련 언급을 쏟아낸다(그림 3).

 

 

 

 

‘한방 원격진료’를 제안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시 사항이 담긴 안종범 전 수석의 메모.

 


안 전 수석의 메모에는 ‘한의 의료기기 양의 반대’라고 되어 있다. 의료기기 사용 권한 문제로 의학계와 한의학계가 갈등하는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한방에 특별한 장점’이 있다면서, ‘한의 원격의료’를 제안한다. ‘외국에 한방 엑스레이 의료기기’를 진출시키자(‘에티오피아’)는 메모도 보인다. 의학계의 반발에 부딪혀 원격의료 도입이 지지부진하자, 한의학계에 일종의 당근(의료기기 사용 허가)을 주면서 원격의료의 아군으로 끌어들이자는 아이디어일 수 있다. 진맥 등 대면 진료가 특히 많은 한의학계에서 원격의료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메모에 언급되지 않았다.

원격의료가 도입될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상황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다. 가벼운 환자는 동네 의원(1차 의료기관)에서 치료한다. 이 단계에서 대형 병원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하면 소견서를 써서 3차 의료기관인 대형 종합병원으로 보낸다. 이를 의료전달체계라고 부른다. 의료는 건강보험체계 때문에 가격을 차별화해서 중증과 경증 환자를 가려 받기 어렵다. 경증 환자도 대형 병원으로 몰리는 자원 왜곡이 일어난다. 의료는 공공재 성격이 있으므로 이런 낭비는 막을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의료전달체계의 취지로, 건강보험체계와 연계된 시스템이다.

의료전달체계 붕괴시킬 원격의료도 지시

원격의료는 의료전달체계의 모세혈관인 1차 의료기관을 붕괴시킬 위험이 크다. 황승식 교수는 “의료체계에 무지한 대통령이 무리한 지시를 내린 전형이다. 원격의료는 현 의료 시스템에 뭘 추가하는 게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 문제다. 이런 정책을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비전문가인 경제수석에게 단순히 지시한다는 건 대단히 놀랍다”라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 보여준 의료정책 결정 프로세스는 이렇게 요약된다. 국민 생명이 달린 의료정책을 두고,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부정확한 정보를, 불분명한 출처에서 들어서, 부적절한 계통으로 지시하여, 실제 정책으로 집행까지 했다. 박근혜 청와대의 민낯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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