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나는 서울 신당동, 아니 ‘신월동의 마복림’으로 변신한다. 집에서 눈이 마주친 윤희가 대뜸 “아빠 배고파~” 할 때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뚝딱 만들어내는 메뉴가 떡볶이다. 물론 전화 한 통이면 갓 만든 따끈한 떡볶이가 배달되고, 집 앞 슈퍼에만 가도 즉석 떡볶이 상품이 즐비한 세상이다. 심지어 쿠팡 식품팀장으로 일할 때 즉석 떡볶이 상품을 기획한 적도 있지만, 정작 우리 집에선 그런 걸 먹지 않는다. 자극적인 맛이 강해서 나나 윤희나 즐기지 않는다.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몸을 더 움직이는 수밖에. 떡볶이를 자주 해먹기 때문에 냉장고에는 떡과 어묵이 항시 대기 중이다. 윤희에게 떡볶이를 해줄 때 빠져서 안 되는 것이 바로 면 사리다. 라면·파스타·쫄면·당면 등 여러 가지 사리를 넣어봤는데, 윤희는 당면을 가장 좋아한다. 당면은 보통 뜨거운 물에 데쳐서 넣는 게 일반적이다. 신당동 떡볶이 전문점에서도 대개 그렇게 나온다.

우리 집은 좀 다르다. 설거지 거리를 줄이려는 잔머리에서 나온 방법이다. 당면을 따로 데치는 대신 물에 씻은 뒤 냄비에 바로 투하한다. 고추장·설탕·고춧가루·마늘 등과 함께 팔팔 끓인다. 얼추 당면이 익을 즈음 떡과 어묵을 넣는다. 떡볶이를 만들 때 냄비에 따로 삶아놓은 달걀을 올리면 끝이다.

ⓒ김진영 제공
이렇게 만든 결과 의외의 보너스가 있었다. 바로 “당면이 맛있다”라는 것이다. 맹물에 불린 당면을 넣으면 당면 속이 물로 가득 차 양념과 소스가 따로 놀지만, 양념된 국물에 당면을 불리면 당면 속까지 양념이 배어들어 훨씬 맛이 좋다. 설거지하기 싫어서 잔머리 굴리다 도랑치고 가재까지 잡았다. 나중에 달걀 삶는 데까지 잔머리를 굴려봤다. 날달걀을 물로 씻고는 냄비에 당면과 함께 투척했다. 물이 끓고 당면이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이 6~10분 정도라 달걀이 삶아지고도 남았다. 윤희가 먹을 달걀은 6분 정도 삶고 내가 먹을 건 4분 만에 꺼냈다. 4분 동안 익힌 달걀은 노른자가 반숙이 된 녹진한 맛이었다.

어느 날 떡볶이를 하고 윤희랑 마주 앉았다. 몇 개 집어 먹던 윤희가 한마디 한다. “아빠, 아빠가 해주는 떡볶이는 왜 이렇게 물이 많아? 밖에서 먹는 건 국물이 많지 않고 진득한데 아빠 것은 너무 묽어.” 잘 먹다가 또 잔소리다. 곰곰이 생각하다 고추장의 차이를 설명해줬다. “밖에서 쓰는 고추장과 집에서 쓰는 고추장은 많이 달라. 밖에서 떡볶이를 만드는 고추장에는 전분이 많은 데다 온종일 떡과 고추장 양념이 계속 들어가 진득한 국물이 되지만, 전통 고추장은 전분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안 돼.” 열심히 설명했는데 눈만 끔뻑거린다. 다음에는 그렇게 해줄게, 하고 넘어갔다.

며칠 뒤 떡볶이를 만들다 윤희를 불렀다. “윤~! 나와봐” “아빠 왜?” 하얀 전분 가루를 보여주며 “이게 아빠가 전에 이야기한 전분이야. 감자·옥수수·고구마로 만들어. 전분을 물에 개어서 떡볶이에 넣으면 어찌 되는지 봐.” “그걸 내가 왜 봐야 하는데?” “너 전에 전분 이야기 해주니 이해를 못 했잖아.” “아항, 헤헤.” “전분 가루를 직접 떡볶이에 넣으면 안 돼, 전분이 물을 흡수하기 전에 익어서 소용이 없어. 그러니 물에 개어서 넣어야 해. 이렇게.” 전분 탄 물을 넣자 밖에서 파는 떡볶이처럼 진득하게 변한다. “오홍, 신기하네! 아빠 떡볶이 장사 해라, 우리 학교 앞에서 헤헤.”

전분을 넣으면 진득해지지만, 맛은 텁텁

한소끔 끓인 뒤 윤희랑 전분 떡볶이를 먹으면서 물었다. “어때, 이렇게 한 게 더 나아?” “음. 아니. 약간 텁텁해. 다음에는 그냥 하던 대로 해줘. 그게 더 낫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보탠다. “군만두랑 같이 해줘. 국물에 찍어 먹으면 맛있잖아.” 평생 떡볶이를 하면서 설거지 거리 두 개를 줄였는데, 다시 하나가 늘었다. 그것도 기름기투성이라 설거지하기 더 귀찮은 걸로. 만두를 굽고 난 프라이팬을 설거지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시장에서 튀긴 만두를 사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겠지?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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