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는 할아버지가 시트콤 드라마를 통해 귀엽게 묘사되고, 국내 최고 MC가 ‘야동 마니아’라는 걸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대중가요 소재로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가 등장하기도 한다. 옛 애인이 등장하는 야동을 보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불법 음란 동영상의 최대 공유 사이트였던 소라넷 폐쇄나 유사 소라넷 사이트 운영자들의 검거 소식을 다룬 기사마다 안타까움이 담긴 장탄식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이들은 모두 ‘건강한’ ‘보통 남자’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포르노의 생산과 유통이 원천적으로 금지된 한국에서 야동은 인지했든 인지하지 못했든 범죄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동영상 기능이 강화된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이른바 ‘일반인 영상’의 시대가 열렸다. 포르노 사이트 유저들은 불법 동영상을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찍는 것’까지 이어간다. 유포에도 거리낌이 없다. 한 음란 사이트는 돈을 걸고 직접 찍은 동영상 대회를 열기도 한다. 자체 제작 영상물 중 추천수가 높은 게시물에 상금을 제공하는 식이다. 계좌추적 등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상금을 전달한다.

ⓒ시사IN 조남진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8월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개인 성행위 영상 신고 건수는 1만8809건에 이른다. 유포자 한두 명이 잡혀간다거나 사이트가 폐쇄된다고 해서 포르노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워닝(warning) 사이트’, 즉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률에 따라 적법하게 차단된 사이트라는 안내 따위야 ‘프록시 우회’를 통해 간단히 해제할 수 있다. 애초 불법 동영상의 최대 ‘저수지’가 소라넷이었을 뿐 유사 소라넷은 웹 어디에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대체로 서버를 해외에 두고 있어서 수사도 쉽지 않다. 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해 1~3개월 단위로 사이트 주소를 바꾸는 방법도 쓴다. 특정 사이트가 없어져도 ‘백업 사이트’가 곧장 나오는 식이다.

음란물 영상 사이트에는 불법 도박이나 약물 광고가 따르기 마련이다. 광고 수익은 억대에 이른다. 1월4일 전북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음란 사이트 6개를 운영하면서 불법 동영상 32만여 건을 유포한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20대 남성을 불구속 입건했다. 폐쇄 조치 전 누적 접속자가 18만명에 이르는 사이트였다. 이 남자가 사이트 운영에 따른 광고 수익으로 벌어들인 돈은 약 4억원이었다.

포르노를 소비함으로 인해 ‘피해자’가 생긴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잊는다. 인터넷은 음란 사진과 영상을 빠르게 흡수하고 널리 전파한다. 영상이 어디에 얼마만큼 퍼졌는지 피해자는 알 도리가 없다. 현실 범죄보다 위험을 인지하는 정도가 낮고 대처가 힘들며 그 피해 규모와 발생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포르노 영상을 보는 것도 ‘시청 가해자’

1990년대 이른바 영페미니스트들의 싸움 중 하나가 성희롱을 포함한 성폭력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범죄화하는 일이었다면, 2017년 넷페미니스트들에게는 새로운 싸움이 하나 추가되었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공론화하는 일이다. 불법 음란 동영상 최대 공유 사이트였던 소라넷 폐쇄를 이끈 것도 인터넷상에서 만난 페미니스트들이 꾸린 ‘디지털 성폭력 아웃(Digital Sexual Crime Out·DSO)’ 팀이었다.

ⓒ시사IN 조남진디지털 기록 삭제 서비스 업체인 산타크루즈컴퍼니는 연간 600건이 넘는 삭제 의뢰를 받는다.
검찰청 ‘2015 범죄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가장 급격한 증가를 보인 범죄 유형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이었다. 2005년에는 341건으로 전체 성폭력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불과했으나 2015년 6735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체 성폭력 범죄 중 24.1%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인 셈이다.

정작 경찰의 대응은 미온적이거나 비협조적이다. DSO가 포르노 사이트 모니터링 활동을 하면서 이른바 ‘골뱅이(술 취한 여성을 지칭하는 은어)’ 사진을 올리고 ‘초대남(술 취한 여성을 함께 강간할 멤버를 모집하는 것)’을 모집하는 게시글에 대해 신고를 하면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를 거절당하기 십상이었다. DSO의 하예나(활동명) 대표는 “경찰로부터 ‘피해 당사자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 같은 소리도 진짜 많이 들었어요. ‘진짜 강간하는 게 아니라 연출한 거다’ ‘장난으로 강간 모의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가해자를 변호하는 말도 한다니까요”라고 말했다.

DSO가 50개 사이트를 모니터링한 결과 영상 게시물을 유포하는 사이트 모두에 신상 정보가 포함된 영상이 올라와 있었으며, ‘고전적’이라 할 만한 화장실이나 모텔 등 ‘도촬’ 영상도 상당했다. 이벤트 형식의 취중 여성 강간 등 성범죄를 중개하는 게시물도 여전하다. ‘여동생’ ‘아내’ ‘여자친구’의 자는 모습이나 벗은 몸 사진이라고 올라온 영상은 ‘동의 없이’ 올라온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유출 영상도 나름 트렌드가 있는 거 아세요? ‘근친’이라는 이름 단 영상은 늘 인기이긴 한데, 요즘 특히 많이 올라와요.” 모니터링을 부탁하자, 하 대표는 클릭 두어 번으로 유출 동영상을 찾아내 사이트와 링크를 메모했다. 신고한다고 해서 바로 삭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소라넷 폐쇄로 인해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고 있다는 게 위안이다.

DSO는 올해 안에 정식 단체를 꾸려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다. 이들은 포르노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행위는 물론이고 시청하거나 게시글에 폭력적 댓글을 달며 참여하는 행위도 디지털 성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른바 ‘시청 가해자’다. 음란 동영상을 보는 것도 범죄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포르노 사이트들이 이를 통해 광고수익을 얻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201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디지털 기록 삭제 서비스를 시작한 산타크루즈컴퍼니는 얼마 전 한 고등학교 교사의 의뢰를 받았다. 한 학생이 자신의 사진 및 동영상 1000여 장을 몰래 찍어 유포했다. 이 학생은 선생님의 치마 속, 다리, 얼굴 등을 찍어 각종 사이트에 업로드했다. 학생의 부모와 교사가 합의해 법적 처벌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영상을 지운다고 해서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웹에 업로드된 영상은 지운다고 해도, 다운로드해서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면 언제든 다시 유포될 가능성이 있다.

산타크루즈컴퍼니에는 이른바 ‘톡스폰’으로 유포된 사진을 지우고 싶다는 청소년들의 상담 의뢰도 많이 들어온다. 톡스폰은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네이버 라인 등 개인 SNS를 통해 접근한 남성에게 몸 사진을 찍어 보내고 문화상품권(문상)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상품권의 스크래치를 긁어 핀 번호를 공유해주기만 하면 웹상에서 사용 가능하고, 계좌 거래와 달리 흔적이 남지 않아 애용되는 방법이다. 이들은 ‘문상 필요하신 분’ 같은 채팅방을 개설해놓고 청소년들을 유혹한다. 이런 방법으로 전달된 사진이 ‘여고생’ ‘17세’ 같은 문구와 함께 포르노 사이트에서 유통된다.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몸캠)이 유통되는 경로도 이와 유사하다.

영상 속 개인 특정할 수 있는 정보도 유출

2014년 발표된 통계청의 ‘청소년 통계’(2012년 기준)에 따르면 컴퓨터로 성인물을 접해본 청소년은 45.5%, 휴대전화로 성인물을 접해본 청소년도 20.5%에 이른다. 포르노를 통해 형성된 폭력적인 성 가치관이나 여성혐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시행 중인 성교육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평론가 최태섭씨는 “포르노는 한국 사회 남성 청년들의 주된 관심사인 동시에 여성 유저가 없는, 그래서 여성혐오가 아무런 견제 없이 창궐할 수 있는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SNS를 통해 무작위로 얻은 여성의 사진에 누드사진을 합성하고 이른바 ‘능욕’ 댓글을 다는 것도 ‘놀이’처럼 취급된다. 실제로 포르노 사이트 유저들은 이렇게 유출되거나 만들어진 영상에 ‘응징’의 성격을 부여한다. 영상을 유출하고 보는 자신의 행위에 ‘몸을 함부로 굴린 여성을 혼내준다’라는 ‘정의구현’의 의미를 담은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예 영상 속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묶어 유출하는 악의적 행태의 영상도 ‘인기’다. 리벤지 포르노라고 불리는 이런 영상은 주로 헤어진 연인을 통해 유포된다. 헤어지자는 여성의 말에 사귈 당시 찍었던 섹스 동영상으로 대응하는 식이다. 얼굴과 이름, 다니는 학교나 직장 등을 명시해 포르노 사이트에 업로드한다. 남성 유저 중심의 커뮤니티 게시판도 유통의 한 고리가 된다.

이렇게 한번 퍼진 영상은 포르노 사이트 광고 문구를 달고 끊임없이 재배포된다. 산타크루즈컴퍼니 김호진 대표는 “사람이 진짜 죽어요, 이것 때문에. 지워달라고 요청이 와서 작업을 마치고 다시 의뢰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면 다른 가족이 받아요. ‘자살했다’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산타크루즈컴퍼니가 매달 삭제 의뢰받는 건수는 평균 50건, 1년이면 600건이 넘는다. 김 대표는 이 숫자가 전체 피해자의 1%도 되지 않을 거라고 짐작한다. 주변 사람들이 알려주거나 피해 당사자가 포르노 사이트 유저가 아닌 이상, 자신이 피해자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없기 때문에 월 수백만원이 드는 민간업체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산타크루즈컴퍼니 등 이른바 ‘디지털 장의사’ 업체를 통한 영상 삭제 비용은 최대 월 300만원에 이른다. 개인이나 제3자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신고하는 방법도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영상이 어디까지 얼마나 퍼졌는지 개인이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울며 겨자 먹기’로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산타크루즈컴퍼니는 청소년의 경우 삭제 비용을 받는 대신 사회봉사활동 증명서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빈도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라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디지털 성범죄 역시 ‘범죄’임을 환기시키려는 노력은 국회에서도 진행 중이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일명 ‘리벤지 포르노 근절법’이다. 본인 신체를 찍은 영상을 타인이 유포하면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전에는 명예훼손 처벌만 가능했다. 성희롱이 범죄로 판결나기까지 6년이 걸렸다. 디지털 성범죄가 ‘상식’이 되기 위해서는 몇 년이 더 필요할까.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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