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태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는 것이다. 내가 언제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듯,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도 알 수 없다. 언제일지 알 수 없고, 결코 피할 수도 없는 죽음. 그래서 죽음은 사람이 느끼는 가장 커다란 공포 중 하나이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는 주인공 다비드가 후두암 진단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의사는 알기 쉽고 친절하게 그림을 그려가며 종양의 위치와 성격을 설명해준다. 성문상부 후두암, T3N26M0 타입. 림프절에 퍼진 3기 종양. 의사는 이겨낼 수 있다고 덧붙인다.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한다 한들 다비드의 의식은 두려움으로 이미 멀리 날아가버린다. 저승사자가 친절하다고 반길 사람이 있겠는가.

작품은 다비드의 가족을 한 사람씩 챕터별로 소개하며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단출한 가족에게도 삶과 죽음은 교차한다. 다비드의 큰딸 미리암은 첫 장면에서 수중 분만으로 아이를 낳는다. 그녀는 본래 코소보에서 종군기자로 일했다. 눈앞에서 어린 소녀가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는 걸 본 후 그만둔다. 이제 아름다운 것만 찍기로 다짐했지만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그가 뼈다귀로 보이고, 뼈다귀뿐인 아버지와 죽음의 춤을 춘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유디트 바니스텐달 지음·이원경 옮김, 미메시스 펴냄

다비드의 작은딸 타마르는 아직 어린 소녀다. 아버지와 매년 호수로 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 영원히 사는 인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타마르는 죽음이 무엇인지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웃 친구 맥스와 함께 아빠를 미라로 만들고 영혼을 붙잡아 영원히 함께할 계획을 세운다.

다비드의 부인 파울라는 다비드가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며 화를 내지만 사실은 가장 두려움에 떠는 존재다. 너무 두려워 핀란드에서 미술 강의 요청이 오자 며칠간 남편 곁을 떠나기도 한다. 남편에게 당신은 죽는다고 말하고, 주변 사람에게 나쁜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온몸에 암세포가 퍼진 다비드의 엑스레이 사진으로 그의 콜라주를 만들고 혼자 눈물짓는다.

다비드 역시 자기 죽음에 대처해야 한다.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하던 다비드는 이제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직 어린 둘째 딸을 놓고 떠나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힘든 치료를 견디면서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자 하고 더 많은 미래를 꿈꾸고자 한다.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죽음을 통해 삶의 모습 그려내

암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일 만큼 주변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의 과정은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길고 혹독하다.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확인하는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는 죽음을 통해 삶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드로잉은 다소 왜곡되어 있지만, 인물의 특징을 잘 살렸다. 수채화풍 채색은 다채로운 색감을 활용하여 무거운 주제이지만 단조롭거나 어둡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자연스러운 번짐과 농담(濃淡)을 조절해 공간감을 드러내는 감각도 좋다. 슬프지만 억지로 눈물 쏟게 하는 신파가 아니라 담담하게 여운을 남긴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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