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데, 현실에서 적용될 때 무딘 경우가 적지 않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의 제14조(위증죄)도 그중 하나다. 국회에 나와 선서를 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박근혜 게이트 국회 청문회를 보더라도, 증인들은 무딘 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몰랐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이임순 순천향대 교수와 서창석 서울대 교수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 상반된 증언을 했다. 둘 중 하나는 위증죄에 해당하는데도, 둘 다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순간만 피하면 끝난다고 여겼다. 관행이 그랬다. 국회에서 위증죄로 고발하면 검찰이 수사를 해서 기소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도 고발한다고 엄포만 놓았지, 실제 고발을 한 경우는 극소수였다. 2012~2015년 19대 국회에서 위증 혐의로 고발한 사람은 5명에 그쳤다. 국회 고발을 접수한 정치검찰은 힘깨나 쓰는 이들의 거짓말에 관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도 한다.


정치검찰은 위증과 관련해서 ‘유권무죄 무권유죄’ 처벌 경향이 강했다. 국정감사 때마다 법무부나 대검찰청은 ‘법정 피노키오’ 처벌 수치 통계를 내며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증 및 증거인멸죄’로 기소돼 1심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2013년 1250건, 2014년 1313건, 2015년 1250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징역형 등으로 수감되는 인원은 2014년 189명, 2015년 132명이다. 권력자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는 데 비해 적지 않은 수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같은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1월13일 현재 특검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위증한 혐의로 9명에 대해 고발해달라고 직접 국회에 요청했다. 역대 특검에서는 쓰지 않던 칼이었다. 국회는 특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재용 부회장, 조윤선 장관, 문형표 전 장관, 김종덕 전 장관 등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일부 법조인과 언론은 이를 두고 특검이 구속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쓴 ‘수사 편법’이라 비판한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검이 무딘 칼날을 이번 기회에 잘 갈아 쓰고 있다고 평가한다.

거짓말을 자꾸 하면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다. 자기 합리화다. 내가 보기에 푸른 기와집에 있는 어떤 이도 확신범 수준이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2016년 10월12일 대통령은 이렇게 지시한다. ‘1)모금:BH 주도 X→재계+BH 2)인사:BH 개입 X→BH 추천 정도 3)사업:BH 주도 X→BH 행사에 참여.’ 검찰 수사를 앞둔 시점에 위증 교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권력자가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을 하라고 지시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특검이 이번 기회에 보여주고 있다. 잘하면 김영란법보다 효과적인 청렴 교육일 수 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