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 오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데스크는 나를 정부종합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보냈다. 입사 11개월차, 정치팀 발령 한 달짜리 풋내기였다. 반가운 얼굴을 참혹한 날 만났다. 대학 때 존경하던 선배는 방송기자가 되어 정부청사를 출입하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잠시 근황을 나누었다.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매체 이름을 듣더니 그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좋은 데 다니는구나.” 공중파 방송사에서 일하는 그의 말이 반쯤은 진심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시사IN 양한모

그에게도 내 연차의 후배가 셋 있다. 그 방송사 공채 막내란다. 얼마 전 텔레비전 대신 유튜브에 세 사람의 얼굴이 등장했다. 자기들이 직접 영상을 찍고 편집해 올렸다. 영상 아래에는 장황한 설명 대신 “‘엠빙신’ 막내 기자들이 묻습니다. 회사의 명예를 실추하는 것은 과연 누구입니까”라는 한마디만 달려 있었다. 나 같은 펜 기자는 키보드를 치지만, 방송기자는 얼굴을 들이민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작법으로, 2013년 입사한 막내 셋은 고개를 숙였다. 메시지는 간명했다. 욕을 계속 해달라. 그것만으로도 시민들이 이 방송사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겠다. 잠시 반칙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아무리 멋진 문장을 만든다고 해도, 이들이 마지막에 고개 숙이는 모습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긴 어렵다.

감동과 별개로, 이들이 영상에서 전한 내부 사정은 당혹스러웠다. 2016년 11월12일 아침 회의에서 3차 촛불집회 관련 발제를 한 사람이 단 한 명이었단다. 거리에 100만 인파가 등장했는데, 민심 관찰하는 기자들이 그날 일을 예상하지 못했단다. 포기든, 관습이든, 겁을 먹었든. “발제가 없었다”라는 고백은 부끄러운 일이다. 반성을, 막내가 대신하고 있다.

물이 새기 시작한 방죽 앞에서 막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입사 후 그동안 뭐 했냐” “정권 힘 빠지니까 이제야 이러는 것 아니냐”라고 묻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응원을 보낸다. 어떤 장벽과 불이익이 뒤따를지 빤히 보이니까. 그 방송사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도 1월12일 개봉한다. 쫓겨난 기자, 고개 숙이는 막내에 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미약해서, 그저 티켓을 사고,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