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또 다른 주인공 서태웅은 원작에서 이름이 루카와 가에데(流川楓)다. ‘흐르는 냇가에 단풍나무’라는 뜻이다. 붉게 물든 가을이 떠오르게 하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뜻밖에도 정초에 태어났다. 하지만 만화를 본 이라면 그의 생일이 1월1일일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서태웅의 세상은 1로 가득 차 있다. 팀 내 에이스이자 공격의 1옵션(우선순위), 중학생 MVP, 별명인 ‘슈퍼 루키’ 등은 선수로서 제1의 위치에 있음을 말해준다. 경기 스타일 역시 1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경기를 풀어가기 어려울 때에 다른 팀원에게 패스하기보다 화려한 단독 드리블 돌파로 해결한다. 정식 경기 외에도 같은 팀의 정대만, 이웃한 라이벌 팀인 윤대협 등에게 원온원(one-on-one:선수 2명이 골대 하나를 두고 펼치는 농구 시합) 승부를 거는 등 1대1 승리에 집착한다. 등번호조차 1이 두 개인 11이다.

ⓒ이우일 그림

오만한 천재이긴 하나, 교만하지 않다. “몇백만 개나 쏘아온 슛이다”라는 서태웅의 유명한 대사에는 노력의 무게가 담겨 있다. 시합 중 상대 선수의 팔꿈치에 맞아 한쪽 눈이 부상해 반대쪽 눈만 뜨고 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점프슛을 성공하고, 자유투에서는 아예 눈을 감고 던진다. 수도 없는 연습을 통해 몸에 각인된 슛 감각이 있기에 가능했다. 말이 몇백만 개이지, 실제로 계산해본다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백 번씩을 던져야 가능한 숫자다.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홀로 자기 자신을 묵묵히 채워왔던 거다. 그렇게 탄탄한 기본기로 1대1에서 이기는 재미도 알게 됐다.

나를 가득 채우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 역할만 묵묵히 해내는 것도 노력 없이 힘든 판에, 맞지 않는 구석이 적어도 한 군데는 있는 동료들과 같이 해나가야 한다는 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동료를 믿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려는 성미 때문에 팀이 위기에 처하는 경우마저 생겼다. 오랫동안 공고하게 쌓아왔던 1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가겠다는 서태웅에게 감독인 안 선생님은 뼈아픈 말을 남긴다. “넌 아직 윤대협에 미치지 못한다. 자존심 때문에 도피하는 게 아니냐?”

‘멍청이’ 동료 강백호와 하이파이브를 하다

여기서 농구 교본으로 돌아가보자. 원래 농구에서 1은 포인트가드에게 주어진 번호다. 농구는 경기 중 포지션별로 1번부터 5번까지 부여된 번호가 있다. 2번은 슈팅가드, 3번은 스몰포워드, 4번은 파워포워드, 5번이 센터다. 그 팀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서 1번이 아니다. 경기 전반을 조망하는 넓은 시야와 공격의 흐름을 조율하는 패스 능력이 있는 선수, 무엇보다 1의 의미는 ‘개인’이 아닌 ‘하나의 팀’임을 가장 잘 아는 선수가 가질 수 있는 번호다.

라이벌 윤대협은 서태웅과 마찬가지로 3번 스몰포워드 포지션이지만, 이타적인 경기 스타일과 창조적인 패스 능력으로 종종 1번 포인트가드를 맡는다. 안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자신을 찾아온 서태웅에게 윤대협은 “넌 시합 때나 원온원 때나 플레이가 같다”라며 동료들을 믿고 팀플레이를 할 것을 충고한다. 까맣게 잊고 있던 충고가 극 마지막 산왕고교와의 경기 중에 다시 떠올랐고, 서태웅은 1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한 걸음 성장한다. 1대1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돌파하기 위해 ‘멍청이’ 동료 강백호와 함께 팀플레이에 성공한 것이다. 〈슬램덩크〉 최고의 명장면으로 수도 없이 회자됐던 하이파이브가 바로 그 뒷장이다.

서태웅의 세계는 1대1에서 1+1로, 1+1+1+1+1로 점점 커져갔다. 한겨울에 태어난 아이에게 풍성한 가을의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봄과 여름을 거쳐, 가으내 뿌듯한 결실을 이루리라는 소망이 가득 담겼기 때문이 아닐까.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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