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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인플루엔자가 ‘호재’라고?

지난 12월 말 닭 수천만 마리가 생매장당하고도 관련 기업의 주가가 올랐다. 닭 소유주인 기업이 갑, 기업에 소속된 계약 농가가 을인 구조에 따른 결과다. 기업이 달걀 시장에 뛰어들 경우 이와 같은 문제가 반복될 공산이 크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7년 01월 10일 화요일 제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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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닭이 죽어나가는데 닭을 파는 기업의 주가는 상한가를 친다.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사이에 누군가는 수혜를 입었다. 지난 12월27일 한국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닭고기 생산·가공업체 하림 주가는 이날 4810원을 기록해 12월1일 대비 7.12% 올랐다. 마니커 주가 역시 25.89%나 뛰었다. 이날 하루 반짝이 아니다. AI가 심각해진 12월 들어 이들 업체의 주가는 꾸준히 상승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증권가에서는 “닭고기 공급이 넘쳐나 가격 폭락 염려가 있었다. 조류 인플루엔자 사태로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시장에 닭고기가 넘쳐나 걱정하던 차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수요-공급 균형을 맞춰줄 ‘호재’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이번 AI는 달걀을 낳는 산란계와 병아리를 낳는 종계에 집중됐다. 치킨 등에 쓰이는 육계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했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현실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지난 12월 말 전국적으로 멀쩡한 닭 수천만 마리가 생매장당한 마당에 어떻게 관련 기업의 주가는 오를 수 있을까. AI로 가금류 농가가 시름에 빠졌다는 뉴스는 대기업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

ⓒ연합뉴스
살처분 보상금제도 때문에 닭 소유주인 기업이 조류 인플루엔자 방역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한 농민이 사육하는 토종닭을 바라보고 있다(위).
‘기업 계열화’라는 용어가 있다. 양계 분야에서만 쓰이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 양계 농가 대다수가 어떤 기업에 속해 있다는 말이다. 양계장에서 병아리를 닭으로 키우는 것은 개별 농가지만, 이 양계 농가의 90% 이상이 특정 기업에 소속된 계약농이다. 이들 기업을 ‘계열 주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곳이 하림이다. 마니커, 체리부로, 동우, 목우촌 등도 계열 주체다. 양계 농가는 ‘사육 주체’라 불린다.

이들 기업은 농가에 병아리를 공급한다. 농가가 35일 정도 병아리를 키워 출하하면 마리당 400원 정도를 ‘사육 수수료’로 받는다. 즉 닭의 소유주는 하림 같은 대기업이고, 농가는 하청업체다. 소작농 같은 개념인데, 양계 농가가 이들 기업으로부터 사료를 구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기업 처지에서는 ‘꿩 먹고 알 먹기’다.

이런 구조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감염된 조류를 생매장할 때 지급되는 ‘살처분 보상금’은 계열 주체, 즉 닭고기 대기업에게 먼저 돌아간다. 이들 기업이 닭의 ‘소유주’이기 때문이다. 정작 살처분 비용은 양계 농가가 우선 충당한다. 이후 관련 협회 등이 공시하는 가축평가액에 따라 지급되는 살처분 보상금을 8(기업)대 2(농가)로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2016년 12월 말 현재 지급될 보상금은 17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살처분 보상금제도 때문에 닭 소유주인 기업들이 AI 방역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AI가 발생해도 기업은 크게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AI가 발생한 농가를 추적해 보상금을 깎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농가에서 AI가 발생해도 쉬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에 따라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달걀 판매 수량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폐사로 발생하는 손실은 오직 농가 몫


AI 발생 이후 관련 기업의 주가가 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첫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이후 주식시장에서는 하나의 패턴처럼 자리 잡았다. 이런 구조에서 독립 양계 농가는 씨가 말랐고, 대다수 양계 농가는 판매처가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는 이점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현실을 감내한다. 식품 기업이 갑이라면, 농가는 그야말로 을이다.

농촌사회학자인 정은정씨가 펴낸 <대한민국 치킨전>에 이런 현실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하림은 계약 농가에 사육수수료를 순순히 내주지 않는다. 사료를 되도록 덜 먹이고 닭을 키워내면 그 농가가 1등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페널티를 받는다. 이런 제도에 반발하는 농가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병아리를 넣어 길들인다는 소문도 있다. 질병 치료나 폐사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은 오로지 농가의 몫이다.”

최근 이슈가 된 달걀 값 폭등 문제도 이런 현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달걀을 낳는 산란계의 경우 아직 ‘기업 계열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육계와 반대로 대다수가 독립 농가다. 이들 농가가 국내 달걀 수요를 충족해왔다. 그런데 최근 달걀 수급이 문제가 되면서 정부가 외국 달걀(신선란) 수입을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껍질이 없는 달걀(액란)과 달리 신선란은 수입 제한 품목이었다. 이번 AI 사태로 처음으로 빗장이 풀릴 상황에 처했다.

한번 시장이 개방되면 되돌릴 수 없다. 외국산 수입의 여파로 국내 달걀 농가가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하림 같은 대기업이 그동안 달걀 시장 진출을 노려왔다는 점이다. 대한양계협회 등 관련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지만 일부 지역의 경우 이미 이들 기업이 달걀을 납품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외국산 달걀이 무관세로 수입되면서 폐업하는 농가가 생길 경우 식품 대기업이 뛰어들 공간은 더욱 넓어지게 된다.

이들 기업이 달걀 시장에 뛰어들 경우 육계와 같이 ‘기업 계열화’를 시도할 공산이 크다. AI와 같은 재앙은 오히려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독립 달걀 농가가 AI에 무력하다는 점이 드러났으므로 대기업이 체계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산란계 농가에게는 달걀 값 폭등 사태가 불러올 최악의 시나리오다.

달걀 농가는 가뜩이나 죽을 맛이었다. 공급과잉으로 오랫동안 달걀 값이 저가행진을 계속하면서 인건비조차 안 나온다는 아우성이 나오는 판국이었다. AI 사태로 1996년 이래 20년 만에 달걀 값이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는, 따지고 보면 지금 달걀 값이 얼마나 싼지 방증하는 이야기다. 달걀 생산 농가끼리의 출혈경쟁이라며 외면하기에는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정부는 무기력하다.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해왔다. 현상 유지에 힘쓰면서 AI 같은 재앙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땜질식 처방에 급급했다. 정부 관계자는 ‘불가항력’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2017년 겨울 우리 농촌의 미래가 살처분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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