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는 비치지 않았다. 지난주 월요일(12월26일) SBS는 문화 언론계 블랙리스트를 보도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 언론사 7곳은 좌파 성향으로 분류됐습니다.” 께름칙해서 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역시나 〈시사IN〉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시사인, 신문 및 잡지의 고품질 심층취재 지원, 19, 좌파 성향 매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언론의 심층보도 활성화와 양질의 뉴스 콘텐츠 발굴’을 명목으로 매년 기획취재 공모를 받아 지원한다. 〈시사IN〉도 2013년부터 신청했다. 블랙리스트 문건에 나온 ‘19’는 2013년 언론재단으로부터 지원받은 1900만원을 뜻한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해 많은 언론사들이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도 특정 언론사를 꼭 집어 기획 취재 내용을 파악하고 ‘좌파 성향 매체’라고 낙인을 찍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2016년 1차 지원 때 〈시사IN〉은 탈락한 바 있다.


블랙리스트가 적시한 2013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그해 봄, 주진우·김은지 기자는 검찰청을 오갔다. 요즘 화제가 된 ‘박근혜 5촌 살인사건’ 기사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가 형사 고소를 하자, 검찰은 ‘충실히’ 수사했다. 검찰은 그해 5월 주진우 기자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당시 법원은 검찰의 무리한 영장 청구를 비판하는 취지로 기각했다. 하지만 ‘법치’를 가장한 정권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1심 재판 때 검찰은 주 기자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주 기자는 1심, 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항소와 상고를 거듭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쪽에서는 검찰을 동원하거나 보수 단체를 부추겨 기자들을 상대로 형사 고발을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원금으로 압박했다. 희한하게도 블랙리스트 문건은 실재하는데,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조윤선 문체부 장관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로(law) 앤드 캐시(cash)’ 통제는 흔적을 남겼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일지를 보면, 김기춘 전 실장은 청와대에서 ‘공안기관 대책회의’를 매일 열었다. ‘문창극 KBS 보도-중징계-방심위’ ‘KBS 이사 右派(우파) 이사-성향 확인 要(요)’ ‘우파 지식인 결집’ ‘피할 수 없다는 본때를 보여야’ 등 대언론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김 전 수석은 기록했다.

〈시사IN〉과 함께 문화 예술인 48명과 영화사, 극단 등 43개 단체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쯤 되면 블랙리스트는 제 목소리를 낸 언론에 달아준 ‘훈장’이다. 새해 〈시사IN〉은 창간 10주년을 맞는다. 이만큼 키워준 시민들에게 감사하며 청년 세대를 위한 나눔IN 캠페인을 시작한다(74~75쪽). 창간 당시 첫 마음도 잊지 않겠다. 또다시 블랙리스트에 오르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보도하겠다. 〈시사IN〉 식구들의 새해 약속이자 다짐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