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시절 중대한 국제 현안에 대한 불분명하고 혼란스러운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월20일,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공식 취임한다. 그의 취임에 세계 각 지역의 이해 당사국들이 긴장 모드에 들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가 된 나라는 단연 중국이다. 트럼프는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노골적인 반(反)중국 행보를 이어갔다. 자칫 미·중 관계가 1979년 역사적 외교 수립 이후 최악의 충돌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워싱턴 외교가에서 제기되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2월22일 〈인민일보〉 인터뷰에서 중국 외교를 결산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양국이 복잡하고 불확실한 요인에 맞닥뜨리게 됐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중국 관련 발언들이 공갈만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 실천으로 입증했다. 대표적 반중 경제학자인 피터 나바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를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국가무역위원회는, 트럼프가 자신의 행정부에서 대외무역 정책을 총괄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신설한 조직이다. 나바로는 2016년 여름 트럼프 캠프에 합류한 뒤 강경한 대중국 무역 노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45%를 매기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공약 등이 그의 작품이다. 나바로는 2016년 8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에서 7만 개 이상의 공장이 문을 닫았고, 중간 계층의 평균 가계소득이 하락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2015년 무역적자의 절반 이상인 3670억 달러(약 443조원)를 중국에서 냈다.

ⓒ졔팡쥔바오 제공중국 해군이 필리핀 공해상에서 나포한 미국 해군의 수중 드론과 같은 모델의 드론.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외무역 정책을 담당해온 무역대표부(USTR) 대신 나바로가 주도하는 국가무역위원회의 역할과 비중이 훨씬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면적인 미·중 무역 전쟁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양국 간 무역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트럼프가 2016년 10월22일 유세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내놓자, 〈환구시보〉(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는 즉각 중국의 무역 보복을 경고했다. 중국이 지난 12월23일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중국 합작법인에 2억100만 위안(약 348억원)의 벌금을 매긴 것도 심상치 않다. 이에 앞서 미국은 중국에 대해 WTO 협정상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중국은 곧바로 WTO에 미국을 제소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았다. 그러자 미국은 중국이 미국산 쌀과 밀, 옥수수 수입을 부당하게 제한한다며 WTO에 맞제소했다.

특히 미국 무역대표부는 트럼프가 피터 나바로 교수를 국가무역위원장에 임명한 당일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를 짝퉁 판매와 지식재산권 침해 등의 이유로 ‘악덕 업체’로 지정했다. 또한 트럼프는 1979년의 미·중 수교 이후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고수해온 역대 미국 행정부의 외교 노선을 뒤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12월2일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의 전화 통화로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1979년의 미·중 수교(타이완과 단교)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타이완 총통과 통화한 바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는 지난 12월11일, 타이완을 중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방침을 반드시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발언했다. 이에 대해 중국 타이완판공실은 “미·중 관계의 정치적 근간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데 있다. 이를 흔들면 건강하고 안정된 미·중 관계는 불가능하다”라고 경고했다. 〈뉴욕 타임스〉는 타이완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가 (타이완 측과) 사전에 조율하지 않고 차이잉원과 통화했을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라며, 트럼프 행정부 이후 ‘하나의 중국’ 정책이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대선 기간 중국에 강경한 입장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오른쪽)는 반중 경제학자인 피터 나바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왼쪽)를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남중국해 재해권 놓고 미·중 긴장 고조

스프래틀리 군도(난사 군도)를 중심으로 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미·중 간의 군사적 신경전도 날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지난 12월15일 중국은 필리핀 공해상에서 미국 해군이 회수 중이던 수중 드론을 나포했다가 외교 마찰이 생기자 닷새 뒤 반환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문제의 드론으로 남중국해에 대한 정찰 작전을 수행했다고 의심한다. 중국은 이웃 나라인 브루나이·말레이시아·필리핀·타이완·베트남 등의 영유권 주장을 무시한 채 원유와 천연가스 등이 풍부한 남중국해 일대를 자국 영해라며 해역 주변에 인공 섬을 건설하는 등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은 매년 5조 달러 이상의 해상무역이 벌어지는 남중국해에 대한 자유로운 항해권 확보 차원에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12월14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남중국해 여러 곳에서 아무리 많은 인공 섬을 건설해도 미국은 공동수역이 일방적으로 폐쇄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협조할 땐 협조하겠지만 맞서야 할 땐 맞설 것이다”라고 중국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미국은 중국이 지난 3년간 남중국해에 활주로와 항구, 항공모함 접안시설, 통신시설 확보 등을 이유로 인공 섬 7개를 건설해 1300만㎡ 이상의 영역을 확대한 것으로 파악한다.

한국이 배치를 결정한 사드(THAAD), 즉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및 북한 핵 문제 또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중 간의 첨예한 갈등과 마찰이 예견되는 분야다. 북한 핵 문제의 경우,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맞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등 미국과 나름의 공동보조를 맞춰왔다. 하지만 무역과 안보 등에서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경우,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사드의 한국 배치가 실제로 이뤄지면, 중국이 종전의 대북 경제제재마저 완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필자에게 “사드 배치를 비롯한 새로운 변화 때문에 중국은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될 듯하다. 중국의 대미 적대감이 강화되는 상황에서는 북한에 압력을 가할 의지 역시 어느 정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그간의 대중 강경 모드를 다소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경제·무역·외교·안보 등 다방면에서 상호 경쟁 못지않게 협력적 관계를 맺어온 미·중 양국이 충돌할 경우 미국에도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길 경우 중국의 보복관세 조치 등 부정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 동 교수(뉴욕 대학 세계문제센터)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월마트든 애플이든 나이키든 중국에 의존하는 미국인들이 부지기수다”라며 부작용을 경고했다. 중국에 진출한 이런 회사들이 고율 관세로 대미 수출에서 피해를 보면 이들 제품을 구매하는 미국 소비자는 물론이고 이들 회사에 취직한 미국인들까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대중 정책에 중국의 대응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 외교 관측통은, 중국이 트럼프와 타이완 총통의 통화에 격분하기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차분한 반응을 내놓은 점에 주목한다. 베이징 주재 고위 서방 외교관은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면서 “중국이 처음부터 트럼프와 직접 맞서고 충돌하기보다는 사업가적 기질을 가진 그의 언행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줌으로써 대중 강경 노선을 바꾸려 시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