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마음의 거울이라는데, 2016년 나의 독서 목록을 보니 나이 50을 목전에 둔 중년의 불안이 그대로 드러난다. 〈노후 파산〉(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다산북스)과 〈2020 하류노인이 온다〉(후지타 다카노리 지음·청림출판)를 읽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장수가 축복인 줄 알았는데 노후 빈곤이 대세라니, 앞으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은퇴 준비를 위해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솔깃한 해법은 〈은퇴 절벽〉(문진수 지음·원더박스)에 나왔다. 노후 파산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은퇴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란다. 강제퇴직 제도를 없애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선진국은 이미 강제퇴직을 금지했단다. 일하고 싶다면 누구나 계속 일할 수 있다. 퇴직을 늦추는 대신 연금 수령을 늦추면 정부의 재정지출도 줄일 수 있고, 청년 취업이 힘든 시대에 아버지 세대가 더 오래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에서, 퇴직 연령이 4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만큼 경제활동 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은퇴자의 노후가 피폐해질 것임이 자명한데도, 우리는 2016년이 되어서야 의무 정년을 60세로 올렸다. 그마저도 임금을 줄인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는, 절름발이 협약이다.”

퇴직을 늦추거나 없애야 할 때에, 정부는 오히려 쉬운 해고를 도입하려고 한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노년층이 가장 만만한 호구니까. 보수화된 노인들은 정부에서 복지 수급을 줄여도 분노할 줄 모른다.

〈은퇴 절벽〉
문진수 지음
원더박스 펴냄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 2012년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이다. 당선해서는 지급 대상과 지급 금액을 바꾸면서 사실상 공약을 파기했다. 그때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했는데, 정작 대한노인회와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 성향의 시니어 단체들은 오히려 “대통령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라고 했다. 노인복지 공약을 준수하라는 야당더러 정치 공세를 중단하라고 성명서를 냈다. 알바 수당 받고 세월호 유족 폄하 시위에나 동원되는 양반들이 노인복지 정책에서 자기 세대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을까?

“미국과 영국에서 강제퇴직 제도와 연령차별 금지를 법제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피플 파워(people power)이다.” 고령화는 이제껏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형태의 사회적 위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제대로 된 노인 단체부터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우리의 노후를 맡길 수는 없으니까.

기자명 김민식 (MBC 드라마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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