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사익을 한 번도 추구하지 않았다”라는 ‘인간 기계’가 통치하는 세상은, 틀림없이 무참하고 무의미하며 불행한 지옥일 것이다. 욕망은 타자로부터, 타자를 통해서 비로소 도래한다. 욕망이란 항상 타자에 대한 욕망이기에,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 제거할 수 없다. 따라서 자기 욕망을 완전히 없애버렸다고 믿는 자는 자기 삶에서 타자를 뿌리째 뽑아버린 괴물이다. 그런 존재는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자’인 신이거나, 누군가 프로그래밍해주는 대로 살아가는 꼭두각시 기계일 수밖에 없다. 타자가 보이지 않기에 눈앞에서 어두운 물속으로 가라앉는 300여 생명을 두고도 그는 국정 책임자로서 ‘비밀의 방’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날, 죽어가는 아이들을 버려둔 채, 우리 인간 기계는 “여성으로서 사생활”을 추구한 듯하다. 진화를 통해서 축적한 인간의 참된 능력이 (유전자) 프로그램이 정한 대로만 사는 데 있지 않고, 타자와 어울리면서 맞닥뜨리는 삶의 변화무쌍한 상황에 대한 놀라운 적응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간 기계’의 자기 인식은 지나치게 소박하고 끔찍하게 어처구니없다. 인간의 근원적 한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다.

ⓒ시사IN 신선영신이거나 꼭두각시였던 ‘인간 기계’ 대통령과 싸우기 위해 국민들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지금 이 순간’을 지켜냈다.

“나이 든 사람은 왜 꽃을 사랑하는 걸까요? 인간의 불완전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피엔스의 미래〉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말했다. 인간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한 수용, 즉 겸손함은 꽃이 피어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한 풍요로 느끼도록 만드는 ‘삶의 기술’이다. 그리스 신화의 탄탈로스처럼 눈앞에 물이 있어도 마시지 못하고 머리 위에 과실이 있어도 따먹지 못하는 저주에 시달리면서 살지 않으려면,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필멸자의 운명을 수용하고 그 한계 속에서 오히려 치열하게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추구하는 ‘운명애(amor fati)’를 인생의 모토로 삼아야 한다. 무한정 흐르는 것 같아도 이 삶은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찰나라도,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지속을 선포하는 ‘파우스트적 순간’이 없다면, 그 삶은 아마도 전혀 사랑받지 못한 것이다.

2016년 한 해, 출판과 독서의 세계에서 우리가 먼저 주목할 지점은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아주 도드라졌다는 사실이다. 자기 한계를 모르고 폭주하는 자본주의는 돈의 크기에 따라 모든 것을 가치화한다. 인간 개체의 평등한 존엄을 부정하고 약자를 “개·돼지”로 여기는 자를 권력의 시녀로 고용하거나, “부모 돈도 실력”이라는 안하무인의 사고를 물려준 자를 비선 실세로 호명함으로써 사회질서 자체를 파괴한다. 더 나아가 자기 욕망에 눈먼 자본주의는 좋은 삶에 대한 성찰을 억압하고 세계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해 인간의 삶 전체를 불행의 연속으로 뒤덮는다. ‘더 이상’ 이처럼 살아갈 수 없기에, 사람들은 모여서 촛불을 들었지만, 혁명은 먼저 ‘읽기’로부터 실현되어 있었다.

ⓒ연합뉴스

시스템에 대한 궁금증을 ‘읽기’로 풀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는 사피엔스가 걸어온 궤적 전체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집약해서 보여준다. 인간이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묻고 성찰한다. 저자의 마지막 질문은 ‘행복’에 대한 것이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사피엔스의 문명이 기계(로봇)와 공생하는 단계로 진입하려는 지금,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가치를 깊이 고민하는 것은 가장 필요한 일이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벌인 바둑 대결 이벤트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독자들의 치열한 성찰을 부추겼다.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동아시아)는 “창의성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린 시대”를 선언했다. 이 책에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분석해서 얻은 결론을 과감히 실천할 수 있는 도전 정신” 등이 인간 가치의 새로운 중핵을 이룬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확산되면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려는 읽기도 꾸준히 나타났다. 〈인간은 필요 없다〉(한즈미디어)가 인공지능이 초래할 대량실업을 예측하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새로운현재)은 구글·애플·아마존·테슬라 등의 정보기술 기업이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기존 굴뚝산업을 대체하는지,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만물 인터넷’이 어떻게 산업을 넘어서 사회 전반의 모든 것을 파괴적으로 혁신하는지를 선명히 보여주었다.

과학기술의 힘이 다른 모든 것을 주도하는 사회의 도래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재성찰을 가져온다. 무엇보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에서, 과학의 경이로운 힘을 빌리고자 하는 탐구를 생성한다. 인문적 질문과 과학적 탐구가 서로 교차하는 제3의 문화를 이룩하고, 이를 생각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아주 활발해졌다. 〈김상욱의 과학 공부〉, 김범준의 〈세상물정의 물리학〉,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이상 동아시아) 등에 대한 독서 열풍은 이례적이면서 동시에 선구적이다. 이 책들이 이룩한 성취인 ‘대중의 과학화’는 과학지식의 대중적 보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정모의 말처럼 “‘나를 작동시키는 시스템’과 ‘사회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이 궁금”한 시민들에게 과학적 사고도구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과학에 대한 미계몽을 근본적으로 척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사IN 신선영알파고의 승리는 인간이 기계(로봇)와 공생하는 세상을 예고했다.

인지자동화가 실현된 시대에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정보기술을 통한 산업의 파괴적 혁신이 산업 현장에서 점차 인간을 배제하는 쪽으로 향하면서 사회 전체에서 숙련노동이 증발하고 있다. 동일한 노동에 차별적 임금을 적용하는 파견노동이 퍼져 나가고 비정규직으로 불리는 비숙련노동이 일상화하면서 빈부격차가 급속히 심화되는 중이다. 청년층은 앞날을 꿈꿀 수 없고 노년층은 파산 공포에 시달리는 심각한 세태는 ‘헬조선’이라는 프레임을 당위로 만들고 이에 대한 사회적 읽기를 촉진한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헤이북스), 〈노후 파산〉(다산북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오우아), 〈공부중독〉(위고),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사이행성), 〈대리사회〉(와이즈베리) 등 목록은 끝이 없다. 미래에 대한 절망이 반복되면서 분노가 두껍게 적층되는 사회에서 “쓰레기가 되어버린 삶”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고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아주 뜨거운 것이다. 〈자존감 수업〉(심플라이프)은 이를 자기계발로 풀어낸 책이다.

한편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는 정보의 흐름을 가속화한다. 넘쳐나는 정보량은 인간을 인지적 카오스(선택 장애 또는 결정 장애)에 빠뜨리고, 이를 분석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빅데이터 기술)의 개발을 촉구한다. 필요 정보를 인공지능으로 판별해서 제공하는 ‘큐레이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을 수동적 소비 주체로, 즉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재발명하는 자본의 시도가 진행되는 한편, 선택 장애를 인간 사이의 연대를 통해서 넘어서려는 기획 역시 꾸준히 출현한다. 독립 출판과 독립 서점에 대한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인간이 보이는 취향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갈증이 사회 저변에 격류로서 흐르고 있음을 드러낸다. 〈지적 자본론〉(민음사)은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라는 휴먼 큐레이션 기술을 통해 인간적 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고의 실천을 독촉했으며, 이에 호응하여 독립 서점에 대한 수많은 책이 쏟아져 주목을 받았다.

ⓒ연합뉴스유발 하라리(위)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성찰했다.

그러나 선택 장애를 극복하는 가장 훌륭한 실천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물질적 소유를 줄여 선택 자체를 최소화한다. 삶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얻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자신과 이웃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한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함으로써 ‘단순한 삶’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궁극의 미니멀 라이프〉(즐거운상상),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비즈니스북스) 등은 풍요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분별없는 욕망 자체를 아예 제거함으로써 제한된 시간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생각하지 말라는 자본의 속삭임을 극복하다

초연결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풍경은 사회적 화제가 빠른 속도로 응집하고 소멸하는 ‘하이콘텍스트’ 현상이다. 콘텐츠가 있는 곳에서 콘텍스트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콘텍스트가 있는 곳에서 콘텐츠가 저절로 생성된다. 앎에 대한 갈망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독자들은 책을 읽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은 ‘여성혐오’에 대한 긴급한 사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봄알람), 〈악어 프로젝트〉(푸른지식) 등은 여성에 대한 오랜 혐오가 내재화되어 있는 폭력의 남성적 언어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교정할 것인가에 대한 빠르고 뜨거운 대답으로 무척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독자들의 사랑이 문인과 지망생 사이의, 또는 필자와 편집자 사이의 질 나쁜 관행을 사회적 사건으로 분출시켜서 바로잡을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기자명 장은수 (출판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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